매일신문

[기고] 성불산 지명, 문화재 명칭 아직 왜곡

권영시 시인(보각국사비명 따라 일연一然의 생애를 걷다 저자)

권영시 시인
권영시 시인

전국 어느 마을이나 도시 할 것 없이 산의 위치를 놓고 통상 어렵지 않게 부르는 것이 앞산·뒷산·남산이다. 산의 명칭이 아니라 생활권이 똑같아 쉽사리 부르는 대명사일 뿐이다. 대구 도심 앞에 자리한 앞산 역시 그러하다. 앞산의 본래 지명은 성불산이다.

오래전부터 '성불산'과 '성불산 고성'을 두고 산 이름과 문화재 명칭을 바로잡도록 언론에 여러 차례 기고했다. '앞산의 옛 이름 되찾기' '팔공산 금오산처럼 성불산도 되찾자' '대덕산성이란 문화재 명칭을 보면서' '성불산 고성 이름 찾아야' 등의 제목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도대체 대덕산과 대덕산성은 어디서 따온 명칭일까 의아하기 짝이 없다. 이에 성불산 지명과 고성이 분명하게 기록된 고문헌을 내세워 한 번 더 실마리를 풀어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구도호부 고적 조에 '성불산 고성은 수성현에서 서쪽 10리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는 3천5십1자(尺)이며, 지금은 폐하였다'고 했다. 수성현에서 서쪽으로 10리에 있는 산이 성불산이다. 곧 앞산이다. 『여지도서』 대구도호부 산천 조에 '성불산은 부에서 남으로 10리에 있다. 관기안산으로 비슬산에서 맥을 이어왔다'며 더 자세하게 기록됐다. 관기안산은 대구부 관아의 기반이 되는 산이다. 관아는 경상감영을 가리킨다.

대구부에서 발행한 『대구읍지』 산천 조에도 성불산은 『여지도서』와 똑같이 기록됐고, 고적 조에도 '성불산 고성은 수성현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고 했다.

가장 가까운 근대 문헌을 하나만 더 들겠다. 바로 영남을 가리키는 『교남지』이다. 일제강점기인 소화 15년(1940년) 3월 12일 정원호가 발행했다. 거기 대구부 산천 조에도 '성불산은 부에서 남으로 10리에 있고 비슬산에서 이어 왔다. 관기안산으로 옛 성지가 있다. 석축의 둘레는 3천5십1장(丈)이다'고 기록해 산 이름과 산성을 한데 묶고 석축의 둘레까지 나타냈다. 게다가 고문헌마다 산성을 1자(尺)까지 쟀다면 정확한 실측이다. 그렇다. 성불산은 『교남지』에 이르기까지 무려 400여 년 이상 모든 문헌에서 성불산과 성불산 고성을 그대로 나타냈다.

대구광역시에서는 대구부에서 발행한 『대구읍지』를 1997년 1월 30일 편역 발행했다. 『대구읍지』조차 성불산과 고성을 분명하게 나타냈지만, 『교남지』를 발행하고도 채 50년도 안 된 1988년 5월 30일 문화재를 기념물로 지정한 대구광역시는 '대덕산성'이라 했다.

대구광역시 홈페이지에 게재된 2024년 1월 10일 현재 대구광역시 문화재 현황에 따르면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고문헌실에 소장된 『대구읍지』는 2010년 1월 20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여태껏 기관장이 바뀌어도 아직도 대덕산과 대덕산성은 그대로다.

전국의 산성은 이미 복원이 대세다. 필자가 들른 수도권만 해도 서울의 한양도성, 북한산성, 인천 계양산성과 강화 정족산성 및 강화도성,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이, 지방은 부산 금정산성, 광주 무진고성, 청주 상당산성, 경북 칠곡 가산산성과 경주 명활산성 및 관문성이 그 대열에 가세했다.

성불산 고성은 안일사에서 동쪽 전망대·케이블카 능선·정상·서쪽 주 능선·다시 북쪽 능선·안일사까지다. 주변엔 일부 성축도 확인되며, 뭉개진 성돌과 와편도 수습된다. 옛 이름을 두고도 엄청난 오류가 콘크리트처럼 굳어지면 크나큰 왜곡이다. 지명 개정에 이어 훗날 안일사 입구든 정상이든 부분적인 복원도 염두에 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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