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완장(腕章)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동네 건달 종술은 '졸부(猝富)' 최 사장이 사용료를 내고 점유권을 얻은 저수지의 감시원으로 발탁된다. 종술은 '완장(腕章)'을 차고 권력의 단맛에 빠져든다.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를 새겨 직접 만든 감시원 완장으로 권력을 한껏 휘두른다.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는 도시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하고,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 부자(父子)를 폭행하기도 한다. 저수지를 떠나 면소재지가 있는 읍내로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른 채 활보한다.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막아서며 패악을 부리다 감시원 자리에서 쫓겨난다. 해고에도 아랑곳 않고 버티다 수리조합 직원, 경찰과도 충돌한다. 종술은 결국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 주는 술집 작부(酌婦) 부월과 함께 저수지를 버리고 마을을 떠난다. 작가 윤흥길의 장편소설 '완장'(1983년, 현대문학 펴냄)은 한국전쟁 이후 팽배했던 정치권력의 폭력성과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선망(羨望)을 비판하고 있다.

정청래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위원장 '완장'을 찼다. 정 위원장은 지난달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 도중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에게 10분간 퇴장 명령을 내렸다. 증언을 거부하고 불성실한 답변을 반복했다는 이유에서다. 정 위원장은 국회법을 들어 동료 의원들에 대해서도 의사진행을 심각하게 방해할 경우 언제든지 퇴장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여당 의원들은 격노했고, 민주당 강성 팬덤(fandom)은 환호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영부인 김건희 여사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간의 문자가 논란이 되고 있다. "브이(대통령)랑 통화하시거나 만나시는 건 어떨지요."(1월 15일) "두 분이서 식사라도 하시면서 오해를 푸셨으면 합니다."(1월 25일) 김 여사는 총선 직후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한 위원장과 대통령을 화해시키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했다고 진 교수는 주장했다. 김 여사가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과의 만남을 주선(周旋)하는 역할에 나섰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과의 만남은 당사자가 직접 하거나 최소한 정무수석 이상의 공직자가 주선하는 것이 온당(穩當)해 보인다. 김 여사에게 누가, 어떤 완장을 채워줬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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