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지금을 이겨내는 힘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삶은 달리기와 흡사하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지만 그 속내는 제각각이다. 출발선에 마주한 모습만 보더라도 누구는 달리기에 적합한 모양을 갖추고 있지만, 몇몇은 상황과 맞지 않는 엉성한 태도로 시작을 기다린다. 대학에서 여러 학생들을 바라볼 때의 난감한 심정과 닮았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의 표정이 흔들린다. 3분의 2 정도는 집중하며 열심이지만 한두 명은 아예 달리는 경기장을 벗어나 버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학생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달리다가 되돌아가는 법은 없다"고, 삶이 꼭 그렇게 닮았음을 강조한다. 설령 앞길에 웅덩이가 있어 넘어지고 엉망진창이 될지언정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가야 한다고 외친다.

각자의 보폭대로 달리면서 앞을 바라보라고 수시로 확인한다. 가급적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찬찬히 나아가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누군가와 비교하는 순간, 내가 정성을 들인 모든 일상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좌절감에 주의를 주는 셈이다.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격이다. 내가 지나온 과정에서 깨달은 마음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던 참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았다.

독서클럽 활동이다. 6년 전, 처음으로 대학에서 주최한 독서클럽 경진대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였다. 처음에는 선뜻 나서는 학생이 없었지만 팀을 구성해서 좋아하는 도서를 선택하고, 작가의 일생에 대해 토의하면서 학생들은 어느새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다가왔다. 주로 주인공의 삶을 각자의 일상과 접목해 토론하고 그날 이야기에 대한 소감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가까워졌다.

학생들이 활동에 적응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들에게 직접 수필을 쓰게 할 마음을 먹었다. 먼저 본인의 일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소재나 기억에 남는 사건 등과 관련된 사진을 가져오게 했다. 사진과 얽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툴지만 그들만의 진솔한 내용이 담긴 글쓰기를 시도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필에 대한 지식을 나누며 퇴고 과정을 거쳤다. 한 학기가 마무리 될 즈음,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짧은 수필 한 편을 마주하고 나서야 환하게 웃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학생들과 독서클럽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힘들지 않은 청춘이 없다. 달리기 출발선상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와 마주했던 그들을 지레 걱정했던 나를 떠올린다. 독서클럽 활동을 통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일상을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다고 고민 정도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엿보면서 글쓰기를 통해 지금을 이겨낼 힘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선로에서 달리다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뛰면서 지금을 살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 중에 넘어질 때마다 이겨낼 힘을 아는 이는 몇 명일까.

삶은 언제나 앞을 향한다. 힘든 과정에서도 등 뒤에서 바람이 불면 속도감이 붙어 달리기가 수월해진다. 난 이 바람을 운(運)이라고 말한다. 멈춰 있으면 바람을 느끼기 어렵지만 달리면 바람이 나를 휘감는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앞을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지금을 이겨내는 힘, 글쓰기와 함께 행운의 바람을 만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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