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경북 경주시에는 하루 강수량 90.8㎜의 많은 비가 쏟아졌다. 그 바람에 형산강과 10m남짓 떨어진 유림지하차도가 침수됐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왕복 2차로의 통행이 제한됐고, 오후 1시 18분까지 진입이 전면 통제됐다. 지하차도 옆 하천 둔치 산책로는 오후 3시가 넘도록 물에 잠겨 있었다.
박종화 경주시 황성동 37통장은 "인근 논으로 일하러 갈 때 유림지하차도를 지나는데 여름마다 침수로 인해 진입 통제를 겪는다"며 "경주 시내를 오가는 주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까지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장마철도 기록적인 폭우가 이어지는 가운데, 과거 다수의 인명피해를 낳은 지하차도 침수 사고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특정 지역에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비가 내리면서 하천 인근의 지하 공간이 침수되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바로 '지하차도'다.
지난해 7월 집중호우로 청주시 인근 미호강의 수위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강물이 임시 제방을 무너뜨리고 인근 궁평2지하차도로 흘러 들어가면서 1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0년 7월에는 부산의 초량제1지하차도도 갑작스러운 폭우에 침수돼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커지는 우려와 달리 비가 많이 내려 지하차도 내 수위가 높아지면 자동으로 차량의 진입을 막는 '자동진입차단시설'의 설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대구 지하차도 中 자동진입차단시설 설치 '0'
올해 역시 기록적인 폭우가 대구경북을 휩쓸며 지역의 지하차도 곳곳의 통행이 제한됐다.
17일 대구경찰청과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경북에선 이달 1일부터 16일 오후 5시까지 지하차도 21개가 침수 우려로 통제됐다. 대구에서도 지난 10일 상동교 아래 지하차도 일부 구간(50m)이 통제됐다. 전날인 9일 수성구 가천지하차도와 안심교 하부 지하차도 역시 운행이 중지됐다.
각 시도에서 한병도 의원실에 제출한 지하차도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지난 6월 10일 기준 지자체가 관리하는 지하차도는 전국에 모두 1천18개가 있다. 이 가운데 49.6%(505개)가 500m 이내에 하천이 존재한다. 67.6%(688개)는 침수 피해 우려가 특히 큰 U자형(진‧출입구보다 터널구간이 낮은 형태) 지하차도였다.
대구는 하천 근처에 있는 지하차도 비율이 높고, 경북은 U자형 지하차도의 비율이 높았다.
대구시가 관리하는 지하차도는 모두 48개로, 북구 11개, 서구·동구 각각 8개, 수성구 5개 등의 순으로 많았다. 이 중 62.5%(30개)가 하천 500m 이내에 있고, U자형 지하차도는 64.6%(31개)였다. 하천 500m 이내며 U자형은 절반(24개)에 달했다.
경북도가 관리하는 지하차도는 69개에 달하는데, 경주가 14개로 가장 많고 이어 ▷경산 11개 ▷김천 10개 ▷칠곡 8개 순이었다. 이 가운데 42.0%(29개)가 500m 이내에 하천이 있고, 58.0%(40개)는 U자형이다. 하천 500m 이내며 U자형은 24.6%(17개)였다.
대구경북의 지하차도 절반 이상이 하천 가까이 있어 침수 위험이 있지만, 자동진입차단시설 설치는 아직 지지부진하다. 지하차도 수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질 경우 자동으로 진입을 막는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
경북의 경우 69개 중 10.1%(7개)에 자동진입차단시설이 설치됐고, 대구엔 아직 설치가 완료된 곳이 하나도 없다.
대구시 도로과 관계자는 "하천 500m 이내에 있으면서도 자연적으로 배수가 안 되는 지하차도 24개를 선정했고, 이 가운데 지난해 12월 예산을 받아 서변지하차도에 우선적으로 자동진입차단시설을 설치해 이달 말쯤 완공할 예정이다. 지난달 6월 특별교부세를 확보해 2개 지하차도에 추가로 설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단도 중요하지만, 내부 고립에도 대비해야
전문가들은 자동진입차단시설 설치만큼이나 지하차도 안에서 고립되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내부에 고립됐을 경우를 대비해 만든 비상시설(비상사다리 등)은 대구경북 지하차도에 전무한 실정이다.
경북도 도로철도과 관계자는 "현재 경북도에서 관리 중인 69개 지하차도 가운데 사다리 등 피난 대피 시설물이 설치돼 있는 곳은 없다"며 "다만, 경산시에서 피난 대피 시설물 설치를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 또한 같은 상황으로, 지난 2월 '지하차도 배수시설 적정성 검토 및 개선 용역'에 착수해 현재 비상사다리를 포함해 어떤 시설을 설치할지 검토하는 단계다.
다른 지역 사례로는, 지난 6월 전북도가 전주 시내 3개 지하차도에 침수 발생 시 지하차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U자형 사다리', 물살에 떠밀리지 않고 탈출하도록 돕는 '핸드레일' 등을 설치했다. 전북도는 향후 순차적으로 다른 지하차도에도 시설을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정영훈 경북대 건설방재공학부 교수는 "신천대로처럼 바로 옆에 하천을 끼고 있는 지하차도는 자동진입차단시설 등을 설치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침수 시 지하차도 안에 있는 차들을 구할 방법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며 "내부에서 탈출할 수 있는 대피로 같은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없는 상황이다. 하다못해 침수 발생 시 잡고 버틸 수 있는 손잡이나 사다리 같은 시설이라도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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