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저지대 지역, 하천 근처가 아니더라도 지형적·구조적 조건에 따라 내부로 물이 유입될 수 있는 반지하주택 등도 집중호우 시 위험한 공간들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로 형산강 지류인 냉천이 범람해 인근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되면서 주민 7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가 포항에서 발생했다. 앞서 같은 해 8월 집중호우로 서울 신림동 반지하주택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올해 여름 역시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집중호우로 전남 완도읍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흙탕물이 밀려와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차량 10여 대가 침수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물 폭탄 맞은 대구, 저지대 초토화
강하게 발달한 장마 전선의 영향으로 대구에선 지난 9일 하루 강수량이 191.3㎜에 달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이는 역대 7월 대구 하루 강수량 가운데 203.2㎜를 기록한 1948년 7월 30일 다음으로 많은 기록이다. 폭우 여파로 다음 날인 10일 오전부터 금호강 물이 빠르게 불어나면서 주변 저지대 시설과 상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 12일 오전 10시 30분쯤 찾은 수성구 고모동에 있는 수성파크골프장은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으로 가득했다. 골프장에 설치된 펜스들이 모두 쓰러져있고, 공원 관리 직원들이 열심히 가꾼 댑싸리(높이 68~150cm 자라는 1년초)도 물살이 들이닥친 방향으로 누운 모습이었다.
수성파크골프장에선 지난 10일 오전 10시 반부터 폭우로 금호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수성구청 소속 골프장 관리 담당 기간제 직원들이 관리소 등으로 활용하는 컨테이너에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오전 11시 13분쯤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이 헬기까지 투입해 1시간 50분 만에 구조에 성공하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아찔한 상황으로 번질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수성구청 소속 직원은 "사고 당일 오전에 봤을 땐 그 전날보다 수위가 더 낮아서 이런 사고가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다"며 "여기가 강 옆이다 보니 지난해 여름에도 3번 정도 침수가 있긴 했는데, 넘칠 듯 말 듯 찰랑찰랑한 수준이었지, 이렇게 피해가 크진 않았다"고 말했다.
금호강 물이 급속도로 늘어나며 대구 동구 효목동 동촌유원지 일대에서도 지난 10일 건물 12개가 강물에 잠기는 등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 재난문자가 이미 침수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 도착해 피해 방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동촌유원지에서 7년째 식당을 운영해 온 A씨는 "저녁부터 장사를 시작하기 때문에 사고 당일 오전엔 집에 있었다. 그러다 오전 11시쯤 가게에 도착한 식자재 배달 기사로부터 '가게가 물에 잠겼다'는 연락을 받아 피해 사실을 알게 됐고, 그전까진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안전 안내 문자는 당일 11시 42분에 왔는데, 그땐 이미 침수가 상당 부분 진행돼 대처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동구청 안전총괄과 관계자는 "현장에 설치된 폐쇄회로TV를 통해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날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워낙 급하게 물이 불어났던 상황이었고, 이를 인지했을 때 문자를 바로 송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구 반지하주택 108곳, 물막이판 설치 안 돼
16일 오전 찾은 대구 남구 봉덕동에 있는 한 반지하 다가구주택. 이곳에서 3년째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정모(54) 씨는 오는 18일부터 다시 장마가 시작될 전망이라는 말에 한숨을 쉬었다.
정 씨는 "반지하는 하수구 냄새가 심해서 평소엔 현관문과 창문을 열어 놓고 지내는데 장마가 시작되면 그럴 수 없어 굉장히 답답하다"며 "지난 9일부터 10일 이틀간은 빗물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너무 크고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비가 많이 오면서 창문 옆 배관에서 물이 터져 나오기도 해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발생한 신림동 반지하주택 참사를 계기로 대구시도 같은 해 시내 반지하주택 9천125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주거 용도로 사용되는 1천112곳의 1천241가구 중 침수가 우려되는 178곳의 203가구를 확정했다.
침수 우려 반지하 가구는 서구와 남구가 각각 51가구로 가장 많았고, 이어 ▷동구 37가구 ▷달서구 31가구 ▷수성구 21가구 ▷달성군 10가구 ▷중구·북구 각각 1가구 순이었으며 군위군엔 없었다.
대구시는 침수 우려 반지하주택 178곳을 대상으로 침수방지시설(물막이 차수판)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건물 소유주의 동의를 얻지 못해 39.3%에 불과한 70곳에 대해서만 설치를 완료했다. 구‧군별로 보면 ▷서구 25곳 ▷남구 14곳 ▷동구 13곳 ▷달성군 9곳 ▷달서구 6곳 ▷수성구 3곳에 물막이 차수판을 설치했고, 중구와 북구에는 설치된 곳이 없다.
대구시 건축과 관계자는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려면 집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침수를 겪은 적이 별로 없어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임대를 놓는 데 지장이 생긴다고 생각해 동의하지 않는 소유주들이 많다. 강제로 설치할 수 없다"며 "창문에 차수막을 설치하면 창문을 잘 열지 못해 답답할 것 같아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환경안전연구실 선임연구원은 "침수 등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사유재산권과 충돌하면서 대비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기후 문제가 점점 심각해짐에 따라 집중호우 등으로 발생하는 참사들이 어쩌다 발생한 불운의 사고가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했다.
한편, 지하주차장의 경우 대구시에서 지난 6월 말까지 하천 인근 또는 하천 최고 수위보다 낮은 지대에 있는 등 침수 위험이 있는 공동주택(아파트) 내 지하주차장 22곳에 대해 물막이판을 설치했다.
지난 10일 금호강이 범람하면서 대구 동구 동촌유원지에 있는 지하주차장이 침수됐던 것처럼, 공동주택이 아닌 상가 지하주차장 역시 침수 위험이 있지만 이에 대한 현황 파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구시 자연재난과 관계자는 "하천 인근 지하주차장에 대해 현황 조사를 진행한 적은 없다. 현황을 파악하면 좋겠지만 피해 복구에 투입할 행정력조차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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