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全黨大會)'가 아니라 '분당대회(分黨大會)'를 치르고 있는 국민의힘은 도대체 어떤 정당인지 가늠하고자 책장에 꽂혀 있던 낡은 정치학 원론 책을 꺼내 들었다.
정치학자들은 정당의 변천사를 간부정당-대중정당-포괄정당-선거전문가정당 순으로 정리한다.
간부정당은 19세기 '보통선거'가 자리 잡기 전, 기득권을 가진 상류층을 중심으로 한 모임 형태의 결사체다. 1948년 군정 종식 후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로 제헌 국회를 구성한 대한민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중정당은 노동자·농민·중간층을 포함한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조직된 정당이다. 유명인이나 특수 이익단체의 대표자뿐 아니라 입당 의사를 가지고 있는 일반 시민도 참여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는 이념 정당과 달리 사무노동자와 자영업자 등 중간층의 지지를 흡수하고 개량적 정책과 노선을 추구한다.
포괄정당은 복지국가 등장 이후 계급적 균열구조가 약화되고 환경과 인권 등 탈계급적 이슈가 떠오르면서 모든 계층에 지지를 호소하는 중도통합형 정치집단이다.
선거전문가정당은 방대한 조직과 당원을 거느리지 않고 선거운동과 관련된 여론조사 전문가, 선거 전략 전문가, 변호사, 회계사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정당의 형태다.
국내 정당들은 대중·포괄·선거전문가정당의 특징을 모두 보여 주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전국 단위 선거가 다가오면 대부분의 정당들은 선거전문가정당 성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다만 그러다가도 당내 권력 재편이 이뤄지는 전당대회에 즈음해서는 다시 대중정당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당권 경쟁자들 사이 상호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상대의 약점을 서슴없이 폭로해 대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진행 중이다.
국정에 대한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여당 대표 후보들이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영부인의 개인적인 문자 메시지를 두고 이전투구(泥田鬪狗)까지 벌이는 촌극이 연출되고 있다.
귀를 닫은 채 일단 당부터 장악하겠다는 권력욕만 보인다.
당과 당원들은 뒷전이다. 오직 나의 정치 행로를 닦겠다는 당내 간판급 중진들의 이기적인 셈법만 작동 중이다.
이런 참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국민의힘은 정치학자들이 규정한 정당의 범주 가운데 어디에 해당될까!
국민의힘이 대중정당이라면 당권 주자들은 당의 노선을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을 것이다. 전당대회는 정권 재창출로 가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장(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포괄정당이라면 전당대회에서 지지층의 중도 확장을 위한 아이디어 경쟁이 치열했을 것이다. 불과 석 달 전 총선 참패의 쓴맛을 본 정당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국민의힘이 선거전문가정당이라면 야당만 이롭게 하는 볼썽사나운 상호 비방전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폭(自爆) 전당대회의 최대 수혜자는 경쟁 정당이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 가운데 한 명인 윤상현 국회의원은 최근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을 더 이상 이익집단이 아니라 좀 더 자유민주주의 우파 이념에 충실한 이념 정당, 가치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아직 이익집단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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