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 여염집 일상사만 못한 시절이다. 지난 7월 19일 국회 법제사법위를 손에 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대통령 탄핵청문회가 열렸다. 7월 26일에는 2차 청문회가 예고되어 있다. 검찰총장과 대통령실장을 비롯해서 전·현직 장차관, 장성, 대통령 부인과 장모까지 법사위가 부른 증인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모욕 주기나 탄핵 명분 쌓기가 아니라면 이틀간 수십 명을 줄줄이 불러 세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탄핵청문회에 앞서 민주당은 4명의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대개 이재명 전 대표의 비리 의혹을 수사한 검사들이다. 민주당이 탄핵 속도전에 열을 올리는 속내가 들여다보이는 대목이다.
탄핵청문회의 명분은 143만여 명이 참여한 국민동의청원이다. 이 수치를 근거로 집권당의 항의를 뿌리친 채 야당끼리 합심한 탄핵청문회가 개최되었다. 이번 탄핵청문회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우선 여야 합의 없이 청문회라는 대통령 탄핵의 예비 절차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2004년 야당 연합이 주도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는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다.
반면 2016년 여야가 합의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는 헌재에서 인용되었다. 아울러 두 사례는 '정파 간 정쟁'(2004년)과 '국회의 합의'(2016년)라는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냈다. 탄핵청문회는 앞으로 탄핵을 정파 간 정쟁 거리로 제도화할 것이다.
다음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에 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특히 해병대 수사단장 외압 이슈는 대단히 논쟁적이어서 명확한 수사 결과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의혹이 가시지 않을 경우 신임 집권당 대표가 동의한 특검을 시행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청원을 빌미로 탄핵청문회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자명해 보인다. 가을에 접어들면 야당 전 대표의 명운을 가를 재판 결과가 하나둘씩 나오기 때문이다. 정치가 망가져도 사법부의 시계는 돌아가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탄핵청문회가 청원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원법 6조는 '감사·수사·재판·행정심판·조정·중재 등 다른 법령에 의한 조사·불복·구제 절차가 진행 중인 사항'에 대한 청원의 처리를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탄핵청문회가 필요 불가결한 절차라면 마땅히 법리 검토와 여야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야 합의가 불가할 경우 적어도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같은 방식을 통해 제도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순리이다. 국회는 이견을 가진 정파들이 합의하는 헌법기관으로 법률적 모호성 위에 정략을 추구하는 것은 금기해야 한다.
탄핵은 집권 중의 정부를 합법적으로 해체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이다. 이러한 엄중한 의미와 권력 공백기의 쟁투를 전제하면 탄핵의 사유는 명약관화해야 한다. 그런데 탄핵 사유에서 부당성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대통령이 전쟁 위기를 조장하며 평화통일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어떻게 탄핵 사유가 될 수 있을까?
핵무기와 각종 도발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을 눈앞에 두고 자국의 대통령을 전쟁 위기의 원인으로 탄핵하자는 주장은 오히려 국회와 국민이 탄핵해야 할 반국가적 사고이다. 이런 논리라면 '반국가 집단과 내통하여 국가안보를 위협한 전임 정부도 탄핵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성립할 것이다.
정부가 보수 또는 진보 이념에 기초하여 정책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헌법이 위임한 권리이다. 따라서 정부가 국익을 근본적으로 위해하지 않는 이상 정치적 반대를 탄핵으로 비약시키는 행위는 배척해야 한다.
100만 명을 넘은 대통령 탄핵 청원과 50%대에 달하는 탄핵 찬성 여론조사 결과는 거대한 민심 이반의 지표이다.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되고 심대한 권력 남용이 확인되면 대통령 리더십을 넘어 대통령 제도가 파열될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경책하고 과오를 바로잡는 것은 순전히 대통령과 정부의 몫이다. 그럼에도 수치를 앞세운 정략적 탄핵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국회 심의 요건을 충족한 민주당 해산과 정청래 국회의원 제명 청원도 청문회에 부칠 것인가? 지난 21대 국회는 국민동의청원 117건 중 104건을 임기 만료로 폐기했다. 이 중에는 146만 명이 동의한 문재인 대통령 탄핵 청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 국회에 필요한 것은 정치의 사법화가 아니라 이러한 정파적 욕구의 절제와 합의의 정치 문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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