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는 두류공원 야구장이 있던 자리에 약 56,200평방미터(㎡)나 되는 큰 광장을 만들었다. 대구시와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가 숙의한 끝에 '2‧28자유광장'이라 명명했고 지난 3일 광장의 이름을 새긴 문(門) 모양의 화강암 기념물을 광장 입구에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했다.
광장 우측에 난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1990년에 세운 '2‧28민주운동기념탑'도 있다. 1962년에 명덕로터리에 세워진 '2‧28학생의거기념탑'의 모양을 본뜨고 크기를 1.5배로 키운 것이다. 2‧28기념탑과 2‧28광장을 둘러보고 64년 전 선배들이 수호하려고 애썼던 민주주의의 뜻을 음미해 봄직하다.
제헌국회가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을 공포한 이후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많은 희생을 치러왔다. 그럼에도 작금(昨今)의 현실에선 민주주의가 도리어 퇴행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민주주의가 극심한 이념 대립 때문에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기둥이 조화를 이뤄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자유를 지나치게 보장하면 평등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고,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잡는 것이 정의이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찰, 검찰, 사법부 등과 같은 사정기관을 설치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정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법을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해야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는 주춤한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반칙과 부정을 일삼고 특권을 누려도 눈을 감거나, 조사하는 데 시간을 끌거나, 조사 결과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것을 미루고 있다. 축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전반전에 일어난 반칙을 후반전 중반이 돼도 판정을 내리지 않는 격이다.
도대체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이념의 대립으로 국회와 국민들이 두 쪽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정기관이 일을 제때 제대로 해도 한편으로부터 욕을 먹고, 일을 미뤄도 그 반대편으로부터 욕을 먹는다. 그래서 덩치 큰 정당들과 그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정의의 실현이 지연되는 동안 반칙과 부정을 저질렀거나 특권을 누렸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은 도리어 지지자들을 향해 '그랜드스탠딩'을 한다. 그랜드스탠딩이란 '지지자들을 의식해 과도한, 때로는 극심한 언행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국회에서 상대를 향해 삿대질하고 고함을 지르는 일이 다반사이니 지켜보는 국민들은 현기증이 나고 가치(價値)마저 전도(顚倒)될 지경이다.
공(公)과 사(私)를, 법과 정치를 구분하지 못하고, 부정과 반칙을 일삼는 자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 군림하니 이것이 불평등의 표본이다. 권력 있는 사람들이 방종(放縱)하는 동안 보통시민들은 기본권마저 지키기가 버겁다. 이념 대립이 정의의 실현을 지연시키고, 지연된 정의가 불평등을 초래하며, 불평등이 마침내 자유를 침해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이념의 대립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우선은 사정기관이 자신의 직(職)에서 소신껏 빠른 결정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직분에 걸맞게 처신하는 것,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장기적으로는, 진영(陣營)의 이념을 떠나 사안(事案)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애쓰고, 분별력을 기르며, 공공선(公共善)을 좇는 중도층의 비율을 키울 필요가 있다. 건강한 중도층의 확대는 첨예한 이념 대립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용(中庸)을 지키며,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겠다.
전북대 강준만 명예교수는 반대 진영의 사람들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고 끊임없이 소통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경북대 노동일 명예교수는 분열과 대립을 넘어 상생(相生)의 길로 나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소통을 통해 상생을 도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인 정호승도 소통과 상생을 읊고 있다. 그의 시 '창문'의 첫째 연이다. "창문은 닫으면 창이 아니라 벽이다/ 창문은 닫으면 문이 아니라 벽이다/ 창문이 창이 되기 위해서는/ 창과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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