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뒤집어 충남 조치원에 사는 해문이로 시공간을 옮긴 충청도식 '햄릿'(<조치원 해문이>)을 공연했을 때 배우 출신 이철희의 극작술과 연출이 비상하다고 느꼈다. 희곡 몇 편을 읽고 연극무대로 형상화하는 예술적인 상상의 고뇌가 어느 순간 영특함으로 무대로 쏟아졌다고 하기에는 무대에는 연출과 작가로 많은것들이 담겨 있었다.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는 진지함과 날카로운 풍자의 이철희식 설계도는 서양 연극 품종을 충청도 국산품종으로 개량한 것처럼 보였다. 주인공 해문이를 자처하며 1인 다역(극작, 연출, 배우)을 한 <조치원 해문이>를 공연했을 때 일이다. 누군가 "가벼운 B급 정서의 희곡이고 장난스러운 웃음코드"라며 이철희식 표현 방식과 등장을 대학로 토양에서는 자라날 수 없는 혼종 품종 정도로 인식했다. 그 뒤 이철희는 본격적으로 '충청도 연극시리즈'를 선보였다. 날것의 맛으로 무대의 경계를 허물며 말(馬)의 세계 <에쿠우스>를 닭들의 이야기 <닭쿠우스>로 전복시키는 패러디 연극의 기발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B급 패러디 완결판이라고 수근거려도 원작 <에쿠우스>를 놀이성으로 비틀며 패러디하는 발칙한 연극이었다.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종교적 시선과 숭배, 욕망과 비정상의 광기로 균열된 인간의 자아를 다이사트의 시선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 원작 <에쿠우스>라면, 패러디된 <닭쿠우스>는 추한 욕망과 결핍된 자아를 극복하고 넘어설 수 없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다이다이)을 소년(알란)이 온기로 포옹하는 식으로 패러디된다. 원작은 소년을 중심으로 말의 눈을 찌른 정신 분열의 내면을 추격하지만 웃음으로 무장된 <닭쿠우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의 불안전한 내면을 이철희식 웃음과 놀이로 드러낸다. 이철희 연출이 <조치원 해문이>, <조치원 새가 이르는 곳>, <닭쿠우스>, <맹> 등으로 한국연극 토양에서 충청도식 패러디 연극을 개척했다면,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 이후부터 한국적 정서와 놀이 리듬으로 삶과 죽음, 관조(觀照)하려는 인생을 변화를 보여준다.
도, 개, 걸, 윷, 모로 말판을 내달리는 놀이에는 인간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고, 생사(生死)를 알 수 없는 구음 소리에 우리 몸짓으로 상여꾼이 되고, 윷가락을 던지며 "젠장", "씨부럴" 거리는 충청도 화법에는 희로애락의 인생사가 한 걸음, 두 걸음 내달리는 도, 개, 걸, 윷, 모 윷판의 정서가 담긴다. 지난 5월 여행자극장에서 재공연한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는 전작 공연과는 다르게 공연의 맛을 우러내는 이철희 특유의 놀이성을 절제하고, 희곡의 결대로 삶과 죽음의 말판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초기작품에서 공격받았던 B급 패러디, 혼종 품종의 연극, 가벼운 풍자의 패러디와 놀이성이라는 감각적이고 영민(穎敏)하다는 점이 이철희의 장점이자 무기였다면, 최근에는 연출적 조미료를 덜어내고 희곡을 보완하며 무대에서 보다 충실하려는 작가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 충청도 사투리로 팔도를 누비는 '생거진천 사거용인' 설화의 추천석 편
<진천사는 추천석>은 팔도를 누비는 전국노래자랑처럼 충북 진천 편이다. 그것도 진천 추천연극으로, 공연 마지막에는 살아 돌아온 추천석을 축원하는 동네 잔치판의 분위기에 취해 진천의 덕산막걸리를 한 두 잔 마실 수도 있다. 이철희는 그동안 충남 조치원에서 햄릿과 닮은 해문이를 낳았고, 충남 홍성에서는 닭쿠우스 양계장을 만들었다. 충남 논산으로 달려가 맹진사를 우리 전통 방식을 활용해 소환한 후, 이번에는 '생거진천 사거용인(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힌다)' 라는 진천석의 설화를 희곡으로 옮겨 소동극으로 들고 나왔다. 진천석 소동의 전말은 이렇다. 저승사자가 용인 땅의 추천석을 저승길로 데려와야 하는데. 이름과 생김새, 태어난 연월이 같은 진천 농부 추천석을 데려오면서부터 소동은 시작된다.
저승사자의 실수를 알아차린 염라대왕은 추천석을 진천으로 돌려보내지만, 그의 육신은 장례를 지내고 땅에 묻혀버려 혼령은 저승으로 온 용인 선비 추천석의 육신으로 돌아오게 된다. 진천으로 갈 수도 없고 용인에서 살 수도 없는 추천석은 용인부인, 진천부인이 모인 가운데 관가의 재판을 기다리다, 살아서는 광활한 평야가 있는 진천에 살게 하고 죽어서는 용인 땅에 묻히라는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판결을 얻게 된다. <진천사는 추천석>은 설화의 스토리를 유지하되, 이철희만의 방식으로 저승길을 만든다. 염라국 저승사자들은 삼남매처럼 초록색 붙임머리를 붙이고 저승사자, 저승사슴으로 불리는데 막내는 유독 실수를 많이 해 저승사과라고 부른다. 이승에 내려온 이들은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무대는 진천을 거쳐 용인의 무덤가로 변주되기도 하고 이승과 저승세계를 활보하는 배우들은 소도구 몇 개로 장면을 구현하는 연기 감각을 보여주면서도 '생거진천 사거용인' 설화를 전통연희의 리듬을 타고 현대적인 이철희식 마당놀이로 서사의 골격을 무대 위에 세운다. 작가의 B급 유머에 웃는 동안 운명이 뒤바뀐 추천석을 통해 우리 인생사 현재의 삶과 죽음을 성찰시키는 진지한 태도가 전작의 작품들보다 한층 두드러진다.
◆ 테니스 치는 염라대왕과 진천 덕산 막걸리 한사발 마시니, '살아가는게 축제일세'
무대는 객석 앞, 좌, 우 공간 후면으로 이동식 의자를 놓고 배우들과 관객들이 뒤섞여 앉아있도록 했다. 이철희 연극은 때로 강렬한 미장센으로 연극적 일루전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지만 감정을 환기시키는 서사적 장치와 놀이성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사이에서 농익어지는 장면은 마당극 형식을 취하면서도 현대적이고, 표현 방식은 때로는 웹툰처럼 전경화 되고, 짤툰의 영상 이미지처럼 적절한 타이밍으로 웃음이 쉴새 없이 쏟아진다. 그 사이 묵직한 서사 한 편을 던져 놓고 극 중 장면의 균형을 유지하는 감각도 탁월하다. 객석 의자 몇 군데 배우들의 의자임을 표기해두는 방식으로 관객들의 시선이 무대로 향할 때쯤 나오는 극장 안내방송도 희극적이다. 이어지는 장면 변화는 조명과 극 중 인물로 분하는 배우들의 놀이성으로 인지되고 빈공간은 추천석이 진천 평야로 용인 무덤가로, 사바세계로 왕복하게 한다.
첫 장면부터 영혼을 실어 나르는 사공(한철훈 분)이 추천석을 태운 뗏목의 노를 미세한 움직임으로 젖으면서 저승다리로 향하는 길가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감각으로만 장면(場面)을 구현해 내는데도 물결을 타고 흐르는 강가에 뗏목이 되고, "가보세, 가보세, 저승다리 가보세" 하며 흥얼거리는 사공의 소리는 죽음을 위로하는 구음이 된다. 도착한 추천석을 기다리는 것은 폭주족처럼 보이는 저승사자들이다. 장면이 무거워질 수 있는 타이밍에 연출은 저승사자들의 (사)자 돌림 작명놀이로 웃음을 팦콘처럼 튀겨준다. 추천석과 통성명이 끝나고 몸을 좌우로 비틀고, 공을 툭툭쳐대며 테니스로 운동을 하는 염라대왕(백익남 분)이 등장할 즈음 키득대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커진다. 염라대왕과 저승사자들은 영상까지 재생시키며 추천석을 청문회로 유도하고, 진천사는 추천석은 용인의 추천석과 생김새며 점 위치도 다르고 평생 담배를 피워본 일이 없다며 "지발, 전립선 회복에 좋은 또랑 물소리, 피라미들, 빠가살이가 있는 엄마품 같은 진천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며" 생때를 쓴다.
방사선과 직원들이 등장해 추천석의 폐 엑스레이 사진도 찍을때쯤 무대는 코믹웹툰 처럼 장면은 전경화된다. 염라대왕은 추천석의 혼을 원육신(元肉身)에 돌려놓으라며 사공을 불러 배를 띄우라고 한다. 무대는 배우들의 소리와 소도구로 대취타를 연주하고 무덤의 육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진천의 추천석은 부인과 혼례를 앞둔 딸이 사는 이승의 미련을 남겨두고, 사공은 이승의 미련으로 구천을 떠돌 수 없다며 저승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장수들이 칼을 씻던 세금천을 돌아 떠나는 길에도 이승에 미련이 남아 자신의 무덤을 보고 절망하는 진천의 추천석을 염라대왕이 이승으로 되돌려 보낼 방법이란 용인사는 부동산업자 진천석을 저승으로 데려와 그의 육신에 진천의 추천석의 혼을 넣어 돌려보내는 방법뿐이다.
◆ 부동산 업자 용인 추천석 "가보세, 저승다리 가보세"
용인의 추천석은 서민들을 갈취해 부를 누리는 캐릭터다. 그가 서당이 인접한 교육 효과, 백 보 안쪽으로 포졸들이 쫙 갈려있는 안전한 주변 환경, 대형시장까지 인접해 있고 숲세권까지 더해져 앞으로 5년만 있으면 집값 상승효과를 볼 수 있다며 영끌해서 집사라고 부추기는 장면에서는 대한민국의 빌라왕 사태와 부동산 공화국이 되어가는 한국 사회를 기발한 설정과 대사로 환기시키는 이철희식 풍자가 극 중 장면으로 살아난다. 진천과 용인의 추천석으로 선악으로 대비되는 1인 2역을 하는 배우 조영규의 안정적인 연기로 염라대왕, 집주인으로 가장한 저승사자와 주변 인물들이 살아난다. 빌라왕같은 용인의 추천석이 가는 길은 저승길이다. 그가 저승길에 도착하면 무대는 염라국의 테니스장이다. 염라대왕은 진천의 추천석과 테니스를 치고 추천석은 "염형, 염형"하며 "대간허다"라는 충청도 언어로 두 사람 사이의 공감대를 만든다. 염라대왕은 치고 받는 공사이에 타인에 대한 이해가 발현된다며 반드시 테니스를 치라고 하고, 앞으로는 "대간"하지 말라며 그를 용인의 추천석의 육신으로 돌려보낸다.
상여꾼의 소리가 들리고, 관짝에서 추천석의 소리가 들릴 때 가족들은 아버지와 남편이 살아돌아 왔다며 천지신명을 찾고 용인 추천석은 "누구..세유?" 한마디로 초상집을 웃음으로 뒤집어 놓는다. 용인 추천석의 육신에 진천 영혼이 살아있으니 2막부터는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 진천으로 돌아가는 추천석과 그를 미행하는 아들이 그려지고 진천 가는 길가에는 임꺽정도 나타나고 도적떼도 만난다. 산 넘어가면 해설사가 등장해 진천군 초평면 신통리 용동마을 임꺽정의 굴이라며 용동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임꺽정과 부하들이 추천석과 인사하는 장면을 구현해 놓았다며 관객들한테 포토타임을 가지게 하면서 '진천 임꺽정 구비문화'를 이철희 방식으로 섞어놓는다. 삶과 죽음을 지나는 무거운 장면에서 감정을 깨고 웃음으로 환기시켜내는 절묘한 타이밍을 이철희만큼 감각적으로 연출하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진천 추천석의 딸(윤슬기 분)은 걸죽한 충청도 사투리로 아버지가 없는 딸이라고 동네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면 안 되기에 단단해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날렵한 무예를 보여준다. 49제를 지내고 길상사 절에서 돌아온 부인과 만나는 장면은 <진천사는 추천석>의 하이라이트다.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을 확인하는 절차가 짠하면서도 웃음이 터진다. "이개놈아! 대체 누군디 남이 동네까지 와서 나늘 희롱한다는 말이야" 라는 부인 말에 추천석은 논 한 마지기 사서 모내기를 할 때 부르던 풍년가 소리를 들려주고, 가난하면서도 잡초가 할퀸 자국처럼 상해버린 두 손과 논 한 마지기라도 있어서 행복했던 시절로 플레시백하여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비로소 부인과 딸은 죽음으로 생이별한 진천 추천석이 타인의 육신으로 영혼이 돌아온 것을 알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육신은 용인이요, 혼은 진천사람인 추천석이 어느 가족과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소유권 재판이다.
진지한 재판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재판장은 다이나믹하다. 저승에서 테니스를 즐기는 염라대왕으로 분한 백익남 배우가 충청도 사투리를 쓰며 사또로 등장하고 진천의 아내(곽성은 분)와 딸(윤슬기 분)과 용인 아내(한철훈 분)와 아들(정홍구 분)이 등장해 진천석을 용인과 진천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며 최후 변론에 등장한다. 이방과 배심원(이강민 분)은 스포츠경기 심판복장으로 등장하고 사공으로 분했던 한철훈 배우가 용인 아내 역할을 하면서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는 재판장 무대는 희비극의 파티장 같다. 아내 역할을 남성 배우가 하게 한 것은 성별을 뒤집어 서민을 갈취해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는 추악한 인간들의 탐욕과 욕망을 희화적인 캐릭터로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육신은 묻고 혼은 저승으로 보내달라는 딸의 간청에 사또는 임금이 정사를 보는 경복궁 눈치를 보면서도 진천에서 살되 죽어서는 용인에 묻히라는 판결을 내리고 진천 딸과 용인의 아들이 결혼하는 것으로 공연은 마무리된다.
◆ 이철희식 조미료, 배우들의 놀이성
이철희의 신작 <진천사는 추천석>(극단 코너스톤, 여행자극장)도 <맹>과 <그, 윷놀이>에 이어 날 선 풍자와 유머러스한 놀이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작가적 서사에 충실해 보이는 작품이다. 더한다면, 이철희 연극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풍자의 놀이성을 확장하게 시켜 주는 조미료다. 놀이는 경기(무대운영방식) 규칙이 깨지면 균열이 생기도 아수라장이 된다. 배우들은 이철희의 신호를 규칙대로 무대에서 지켜내면서도 즉흥성과 날것의 무기로 장면을 넘쳐나게 하는 조미료다. 그런 면에서, 염라와 사또로 분한 백인남은 능청스러운 연기로 테니스를 치며 건강을 챙기는 염라대왕 캐릭터를 넘치지 않게 전달해 주었고, 진천 딸 윤슬기는 작은 체구에도 정확한 화술과 감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정홍구는 무대에서 집중과 몰입감이 좋은 배우다.
사공과 용인부인 한철훈은 긴 머리를 특징으로 캐릭터를 살려내면서도 두 손으로 뱃길을 만들고 몸의 움직임으로 뗏목의 이 동항로를 표현하면서도 산자도, 죽은 자도 아니면서도 이승에 미련이 남아 구천을 떠도는 자의 인간의 향기가 연기로 보여주었고, '사'로 돌림자를 쓰는 저승사자 (황영희, 심완준, 권경민)들도 역할이 튈 수 있는 데도 이철희식 게임의 규칙을 지키면서도 삼남매의 앙상블을 유쾌하게 보여주었다. 곽성은, 이강민 배우도 감각적인 배우들이지만 진천, 용인의 추천석으로 분한 조영규는 인간의 선과 악, 내면의 대비감을 무게감 있는 연기로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주인공 설화를 진지한 태도로 접근해 주었다. 아쉬운 것은 등장인물로 들어가는 집중과 몰입 사이에 극 중 역할에서 배우의 놀이성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이철희식으로 더 놀아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고, 이철희 연극이 더는 무거워지지 않았으면 하기는 바람이다. 형식은 유지하되, 연출적인 운영 방법의 변화를 좀 더 주면 어떨까 한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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