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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56>모든 장르를 다 잘 그린 중에서도 풍속화가 최고

미술사 연구자

김홍도(1745~1806?),
김홍도(1745~1806?), '주막', 종이에 담채, 33.8×27.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볏짚으로 지붕을 엮은 초가집 주막이다. 가게 왼쪽은 부뚜막 위에 그릇들이 쌓여있는 주방이고 오른쪽은 손님들이 식사하는 자리다. 주모 뒤로 방문도 보이지만 춥지 않은 계절이라 지붕과 기둥만 있을 뿐 벽이 없는 야외석에 요즘말로 혼밥인 두 손님이 있다.

안쪽의 손님은 곰방대를 입에 문 것으로 보아 식사를 마치고 이제 밥값을 치르려는 중이다. 등에 짐이 가득해 장날에 맞춰 물건을 팔러가는 도붓장수인 보부상이다. 콧수염 턱수염이 제법 자랐는데 아직 더벅머리인 노총각이다.

패랭이를 쓴 앞쪽의 손님은 넓적한 돌 위에 앉아 그릇을 기울이며 숟가락으로 마지막 국물까지 맛있게 먹고 있다. 그릇이 하나인 것으로 보아 밥 따로, 국 따로가 아니라 국에 밥을 말아 내놓는 국밥이다. 조선시대엔 탕반(湯飯)이라고 했다.

주모는 손잡이가 긴 국자인 술구기로 오지 술독에서 술을 한 사발 퍼내고 있다. 두 손님 중 한 분이 한 잔 들이키려 주문한 모양이다. 술그릇, 밥그릇이 무척 커다란 것이 인상적이다. 고달픈 나그네들이 끼니를 해결한 주막에서는 밥, 술, 떡을 다 팔았다.

주모의 어린 아들도 등장한다. 김홍도는 허리춤에 찬 주머니를 끄르며 배꼽을 드러낸 모습이며, 국밥을 깨끗이 싹 비우는 광경뿐만 아니라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칭얼대는 아이까지 빠트리지 않았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인간미 넘친다.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면 외부자의 관찰이 아니라 그려지는 대상에 대한 공감의 마음이 느껴진다.

'주막'은 옛적으로 돌아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사람들을 지켜보는 듯한 구수한 재미와 서정적 정취가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파노라마가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은 김홍도의 시선이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화가라고 하는 것 같다.

'주막'은 주변이 살짝 묘사되어 있지만 '무동', '서당', '씨름' 등이 함께 들어있는 '단원 풍속도첩' 25점에는 대부분 배경 없이 사건만 그려져 있다. '단원 풍속도첩'의 그림들은 인물의 생동감 있는 표정과 동작, 한눈에 들어오는 구도, 수더분한 필선의 운율, 슴슴한 담채 등으로 각각의 장면을 정겹게 전달한다.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은 김홍도의 솜씨를 모든 장르의 그림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한 중에서도 우리나라 인물과 풍속에 가장 뛰어나다고 했다.

강세황은 "더욱 풍속을 그리는데 능하여 사람이 하루하루 생활하는 모든 것과 길거리, 나루터, 가게, 점포, 시험장, 극장 같은 것도 한 번 붓을 대면 손뼉을 치며 신기하다고 부르짖지 않는 사람이 없다. 세상에서 말하는 김사능(김홍도) 풍속화가 이것이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김홍도의 풍속화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그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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