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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시설하우스 한 달 난방비 600만원"…아열대 농가 난방비·유통망 '문턱'

경북, 만감류 외에는 과수·채소 재배 적어…초기 투자 비용 부담
사과 등 작물지도 변동 불가피…지역 특화 작물체계 육성해야

지난 17일 경북 포항 북구 홍해읍에서 바나나 농가를 운영하는 이재철(58)씨 아들 이석호(29)씨가 열매가 맺힌 바나나 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배형욱 기자
지난 17일 경북 포항 북구 홍해읍에서 바나나 농가를 운영하는 이재철(58)씨 아들 이석호(29)씨가 열매가 맺힌 바나나 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배형욱 기자

"겨울철에 3천300㎡(1천평) 규모 시설하우스 한 달 난방비가 600만원씩 들어가다 보니 웬만큼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손대기 어렵습니다."

경북 포항 북구 홍해읍에서 6천600㎡(2천평) 규모 바나나 농가를 운영 중인 이재철(58) 씨는 2021년 아열대 작물 재배에 뛰어들었다. 1년마다 수확을 거둘 수 있고 고도의 재배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이 씨가 바나나를 고른 이유였다.

하지만 난방비와 유통망이 예기치 못한 복병이었다.

그는 "바나나가 후숙 과일이다 보니 애써 키워놓고도 제때 숙성해서 유통하지 못하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만감류 외에는 과수·채소 재배 적어…초기 투자 비용 부담

경북농업기술원에 따르면 경북의 평균 기온은 지난 45년 동안 0.63℃(도) 상승해 아열대 기후로 변화하는 추세다. 포항·경주·영덕·울진 등 4개 시·군은 2022년 이미 아열대 기후에 진입했다. 기후학적으로 월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인 달이 연간 8개월 이상이면 아열대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에 발맞춰 경북도는 2021년 '아열대 작물 육성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아열대농업 육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이듬해 아열대 작물 전문단지 조성지원 사업을 추진해 아열대 작물 재배에 뛰어드는 농가에 시설비용 등 50%(도비 15%·시군비 35%)를 지원 중이다.

하지만 전남 등과 비교해 경북 아열대 작물 재배는 두드러지게 활성화되지는 못한 편이다. 경주산 한라봉(경주봉) 등이 인기를 끌어 과수 중에선 만감류(23㏊)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키위(4.25㏊), 애플망고(2.6㏊), 무화과(2㏊) 등 다른 작물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다. 여주(0.3㏊), 오크라(0.2㏊) 등 아열대 채소는 아예 미미한 수준이다.

농가들은 초기 투자 비용에 따른 리스크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경북의 한 아열대 농가 관계자는 "50% 지원을 받더라도 아열대 작물이 아닌 작물과 비교해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며 "시설을 조성하는 데 4억원이 들면 2억원을 자부담으로 투자해야 하는데 각종 진입장벽을 고려하면 도전하려는 농가들이 많지 않아 보조 비율을 70~80%로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고 했다.

김천의 애플망고 농가 관계자는 "공판장에 출하하면 수입 망고 등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난방비 등 시설 비용으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게 매겨지기 때문에 직거래 고객을 확보하거나 로컬푸드 매장에 납품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판로가 한정적이다"라고 토로했다.

일부 품목은 재배 기술이 보급·확립되지 않아 시행착오가 따르는 경우도 적잖다. 기본적인 작업인 과수 전정 기술부터 수확 마무리 단계인 저장 기술까지 농가들이 발품을 팔아 전수받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경북 구미에 위치한 켄탈로프멜론 재배 농장. 매일신문 DB
경북 구미에 위치한 켄탈로프멜론 재배 농장. 매일신문 DB

◆사과 등 작물지도 변동 불가피…지역 특화 작물체계 육성해야

기후변화로 작물지도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경북이 주산지였던 주요 작물 재배 지형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2024년 맥류, 봄감자, 사과, 배 재배면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북의 올해 사과 재배면적은 1만9천208㏊로 전년 대비 4.2% 줄어들었다.

대구경북 전체 사과 재배 면적은 1993년 3만6천21㏊에서 지난해 기준 2만151㏊로 30년 새 44%까지 감소했다. 2022년 대구경북연구원(지금의 경북연구원)은 2090년쯤엔 경북 대부분 지역에서 현재의 특화작물은 재배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사과는 2030년 이후 영양·봉화를 제외한 경북의 모든 시군에서 재배가 힘들 것으로 예상됐다.

이 같은 변화에 아열대 작물 등 대체과수 생산 기반을 안정화하기 위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농촌진흥청은 17종(과수 9종·채소 8종) 아열대 작목 재배법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지만, 농가에 대한 재정 지원은 자치단체 차원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전체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하고는 있지만 신품종 재배 사업 등은 지자체 중심으로 추진 중 "이라고 설명했다.

경북이 가진 강점을 살려 지역 특화형 아열대 작물 육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도 제기된다. 경북의 발전된 농업 기술과 접목할 경우 수입산 아열대 작물과는 다른 방식의 재배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시군 특성에 맞는 아열대 연구, 유통 등 관련 기반 시설을 종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북도 관계자는 "시장이 형성돼 있는 기존 작목과 달리 아열대 작물은 리스크가 큰 만큼 수익도 높아질 수 있어 농가별 소득도 천차만별인 편"이라며 "전남 등 남부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경적인 여건이 미흡한 면이 있지만 파종·재배 기술 보급 등 농가 수요를 조사해 지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구미에서 재배되는 레드향. 매일신문 DB
구미에서 재배되는 레드향. 매일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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