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 홀로 교통사고' 많은 농촌…도시보다 위험도도 더 높다

경북 차량 단독사고 711건 중 36%가 군 지역서 발생
이륜차·원동기 비중 높고 고령 운전자 많아 화 키워

소형 굴삭기 전도로 사망사고가 일어난 청송군 안덕면. 경북소방본부 제공
소형 굴삭기 전도로 사망사고가 일어난 청송군 안덕면. 경북소방본부 제공
경북은 농촌인 군 지역의 차량 단독사고 비중이 특히 높은 곳이다. 열악한 도로환경 탓에 도로 이탈과 전도전복, 공작물 충돌 사례가 많았다. 사진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북 고령군의 한 마을. 박상구 기자
경북은 농촌인 군 지역의 차량 단독사고 비중이 특히 높은 곳이다. 열악한 도로환경 탓에 도로 이탈과 전도전복, 공작물 충돌 사례가 많았다. 사진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북 고령군의 한 마을. 박상구 기자

경북은 농촌인 군 지역의 차량 단독사고 비중이 유난히 높다. 운전자가 주행 중 도로 바깥으로 추락하거나, 각종 구조물에 부딪힌다. 또 혼자서 차량이 뒤집히는 등 열악한 도로 상황으로 인한 사고가 많은 편이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에서 발생한 차량 단독사고 711건 중 군 지역이 36.0%를 차지했다. '차 대 차', '차 대 사람' 등 다른 사고유형의 경우 군 지역 비중은 각각 19.6%, 16.4%에 그쳤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경북의 차량 단독 사고지점 중 사망자가 나온 현장들을 방문해 도로 상황과 주민들의 증언을 살폈다.

◆급커브 못 버티고 '쾅'…군의 차량 단독사고 비중, 시의 '두 배'

경북 군 지역의 교통사고 건수가 두드러진 것은 차량 단독사고가 유독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북 군 지역에서 발생한 전체 사고 중 차량 단독사고 비중은 11.9%로 시 지역 5.3%보다 두 배 이상 컸다.

특히 군 지역 단독사고 중 각종 구조물과 부딪힌 경우가 가장 많았다. 지난해 단독사고 256건 중 44.5%인 114건이 공작물과 충돌하면서 일어났다. 사고 조사 결과 충돌로 기록되지만 높은 굴곡도를 버티지 못하고 도로에서 이탈하거나 울퉁불퉁한 노면 탓에 중심을 잃으면서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경북 예천군 지보면의 한 농촌 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2022년 10월 15일 오전 11시쯤 오토바이 운전자 A씨가 도로 가장자리에 놓인 공작물에 들이받아 목숨을 잃은 곳이다.

사고지점은 마을 앞 주요 도로에 농로가 곁가지처럼 나 있는 곳이었다. 가드레일이 없어 무심코 운전하다가는 논으로 떨어지기 쉬운 도로 구조였다. 실제로 사고 당시 A씨는 도로 가장자리를 벗어나 흙길로 빠지던 중 갑작스레 솟은 농로에 충돌했다.

지난해 2월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한 마을 모습. 당시 사고차량은 급커브 구간을 버티지 못하고 도로에서 튕겨나가 길가 낚시가게에 충돌했다. 박상구 기자
지난해 2월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한 마을 모습. 당시 사고차량은 급커브 구간을 버티지 못하고 도로에서 튕겨나가 길가 낚시가게에 충돌했다. 박상구 기자

지난해 2월 17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한 해안가 마을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해수욕장을 끼고 식당과 민박집이 밀집한 이 마을에서 한 승용차가 급커브 구간을 버티지 못하고 길가 낚시 가게에 충돌하면서 운전자와 동승자가 숨졌다.

당시 사고 차량은 커브가 끝나는 지점에서 도로 가장자리 턱에 부딪혀 근처 가게로 튕겨 나갔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가게 옆 벽에 덕지덕지 발린 시멘트가 당시 참담했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지난해 2월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한 마을 모습. 당시 사고차량은 급커브 구간을 버티지 못하고 도로에서 튕겨나가 길가 낚시가게에 충돌했다. 박상구 기자
지난해 2월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한 마을 모습. 당시 사고차량은 급커브 구간을 버티지 못하고 도로에서 튕겨나가 길가 낚시가게에 충돌했다. 박상구 기자

주민들은 사고 직후 마을을 지나는 차가 또 덮칠까 싶어 가게 앞을 지나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가게 주인은 "한창 자고 있던 새벽 5시쯤 쿵 소리를 듣고 나가보니 가게가 엉망이 돼 있고 사고가 나 있었다. 가게 옆 돌벽이 무너졌고 가게 앞 물건과 수족관이 다 깨졌다"며 "아직도 쿵 소리만 들으면 잠이 깨고 식은땀이 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진현 영덕경찰서 교통조사계 조사관은 "군도의 경우 워낙 꼬불꼬불하다 보니 사고가 많다"며 "군 지역 도로가 국도보다 낙후된 곳이 많은 편이다. 애초에 국도보다 폭이 좁고 단독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도로 이탈에 전도·전복까지…아슬아슬 시골길

군 지역의 차량 단독사고의 경우 '전도‧전복'과 '도로 외 이탈' 비중이 높은 편이다. 지난해 경북 군 지역 단독사고 256건 중 전도‧전복 비율은 20.7%에 달한다. 이는 경북 평균(15.4%)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또 도로 외 이탈 비율도 16.8%로, 경북 평균(12.0%)을 웃돈다.

전도‧전복과 도로 외 이탈 사고를 보면, 좁은 도로와 높은 굴곡도, 가드레일 등 안전시설 미비 등 열악한 도로 상황이 화를 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로 외 이탈과 전도‧전복 유형의 경우 차량 추락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아 인명 피해 가능성이 큰 편이다.

2022년 오토바이 추락사고가 발생한 청도군 청도읍 평양1리의 도로 모습. 도로 폭이 좁은 데다 굴곡도가 심하고 가드레일조차 없어 추락 위험이 큰 곳이다. 박상구 기자.
2022년 오토바이 추락사고가 발생한 청도군 청도읍 평양1리의 도로 모습. 도로 폭이 좁은 데다 굴곡도가 심하고 가드레일조차 없어 추락 위험이 큰 곳이다. 박상구 기자.

지난달 청도군 청도읍 평양1리의 한 왕복 2차선 도로에 가봤다. 이곳은 2022년 9월 29일 73세 여성 B씨가 늦은 밤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도로 밖 개울로 추락해 숨진 지점이다.

이곳 주민들은 사고가 난 지 2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당시 일을 또렷이 기억했다. 주민들은 "B씨가 저녁에 마을 친구 집에 방문했다가 오후 11시쯤 집으로 오는 길에 화를 당했다"고 말했다.

당시 차가 없던 B씨는 집에 있던 아들의 오토바이를 타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가 몰던 오토바이가 도로에 진입하지 못하고 개울 아래로 떨어졌고, 사고가 난 지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 날 오전 3시쯤에야 발견됐다. 당시 모친을 찾아 나선 아들이 B씨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마을 주민 C씨는 "몇 년 전에도 소형 화물차가 급커브 구간에서 도로 밖으로 떨어진 적이 있는데 다행히 도로 밖 비닐하우스 위로 추락하면서 사망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며 "차량 교행이 아슬아슬할 정도로 길이 좁은데 급커브 구간이 있어 차들이 위험하다. 자전거나 오토바이, 원동기가 다니면 딱 맞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승용차 대신 이륜차·원동기…고령 운전자 사고도 多

도로를 벗어나고 차량이 뒤집히는 등 군 지역 교통사고는 열악한 도로 상황과 더불어 높은 연령대와 이륜차‧원동기 등 농촌 특징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해 경북의 지방도와 군도의 차량 단독사고에서 가해 차량이 승용차인 경우가 43.3%로, 경북 전체 승용차 비율(64.2%)보다 한참 낮았다.

대신 지방도‧군도의 이륜차와 원동기 비율은 각각 20.2%, 5.8%로, 경북 전체의 이륜차(7.2%), 원동기(1.1%)보다 훨씬 높았다. 또한 농기계와 사륜오토바이의 사고 비율도 지방도‧군도가 경북 평균보다 두 배 이상 컸다.

고령의 운전자의 단독사고가 지방도‧군도에서 특히 많았다. 지난해 지방도‧군도의 단독사고 208건 중 운전자가 60대가 28.4%, 70대 이상이 25.0%를 각각 기록했다. 경북 전체 사고에서 60대(24.7%)와 70대 이상(14.0%)이 차지한 비율보다 높았다.

사고 발생 시각도 농촌의 생활양식이 고스란히 드러낸다. 경북 지방도‧군도의 단독사고 중 오후 2~4시에 발생한 경우가 전체의 15.9%로 가장 많았다. 특히 농촌 일을 시작하는 오전 4~6시에 발생한 사고 비율이 3.8%로 경북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반면, 도심 퇴근 시간 때인 오후 6~8시(경북 평균 13.2%)의 경우 지방도‧군도는 6.7%에 그쳤다.

임근환 경북경찰청 교통관리계 경사는 "경북은 대부분 산악지형이다. 특히 군 지역은 도로 여건이 열악한 데다 험한 지형까지 더해져 단독사고가 빈번하고 피해 규모도 큰 편"이라며 "또 운전자 연령대가 높다 보니 인지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오토바이나 자전거, 전동휠체어 등의 이용도 많은 점도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