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모든 것들을 반영하는 듯한 거대한 거울 위로 구름이 떠간다. 장마가 그치고 비를 덜어낸 구름이 한결 가볍다. 산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어릴 적 여름 방학에 보았던 구름과 똑같은 구름이다. 하늘의 흰 구름을 보면 저 높은 세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존재의 경쾌함을 느낀다. 뭉게구름은 극소화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풍요와 상승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인간은 자연에 정신을 반영하고 투사하여 의미와 상징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과정이 깊고 입체적인 세계를 만든다. 이런 주체는 삶을 풍요롭게 가꿀 줄 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기와 꿈'에서 말했다. 세계에 대한 시적 인식은 이성적 인식에 선행한다. 세계는 진실하기에 앞서 먼저 미적이고, 검증되기에 앞서 감탄을 받는다. 바슐라르의 명제를 생각하면 세계는 존재하기 위해서 아름답게 존재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한 먼 그곳에/ 그리움도 흘러가라 파란 싹이 트고/ 꽃들은 곱게 피어 날 오라 부르네/ 행복이 깃든 그곳에 그리움도 흘러가라/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이 가슴 깊이 불타고/ 영원한 나의 사랑 전할 곳 길은 멀어도/ 즐거움이 넘치는 나라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내 마음도 따라가라/ 그대를 만날 때까지 내 사랑도 흘러가라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은 대학 시절 교정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노래다. 최무룡, 김지미가 주연한 홍성기 감독의 영화 '길은 멀어도(1960)'의 주제가로, 촉망받는 작곡가와 소프라노의 곡절이 많은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최근까지도 이 곡이 한국 영화의 주제가인 줄은 미처 몰랐다. 최무룡이 이 곡을 작곡한 젊은 작곡가로, 김지미가 소프라노로 나와 주제가를 부른다.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에 걸맞게 당대 최고의 작곡가 김동진이 주제가를 맡았다. 발표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가곡이다. 김용호의 시와 김동진의 음악이 조화롭고,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었으며, 너머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감수성을 담고 있어 시대를 초월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
미 자체인 자연을 모방하고 자연의 모습에 인간의 감성을 담는다는 점에서 예술은 매우 종교적이다. 어느 신학자는 예술은 종교의 전경이고 종교는 예술의 후경이라고 했다. 음악은 영원이라는 시간의 저수지에서 흘러나오는 순간순간을 표현한다. 그러기에 음악만큼 자연과 인간의 교감, 감각과 지성의 영역을 동시에 아우르는 예술은 없는 것 같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은 권태로운 일상을 전환하고 존재의 가능성을 예감하는 노래이다. 헤세는 정처 없이 떠도는 흰 구름을 사랑한다고 썼다. 프랑스의 어느 시인은 스스로를 '호주머니에 구멍이 난 구름'이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구름을 통해 자기 초월을 이루려 한다. 굳이 시인이 아니더라도 구름의 다양한 형태와 느린 움직임, 부드러움은 우리 속에 감춰진 동질적인 것들을 들춰내 감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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