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인 22일 오후. 이날 오후 3시 찾은 대구 중구 북성로 쪽방촌 길목. 좁디좁은 골목 사이로 6채의 여인숙이 빽빽하게 몰려있었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데도 열기가 미처 빠져나갈 틈이 없어 체감 온도는 35도 이상으로 치솟는 듯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쪽방촌 주민들은 연신 얼굴과 목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고 있었다.
대구에는 긴 장마가 끝나고 오전부터 폭염특보가 발효되면서 낮 최고 35도까지 오르는 등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됐다. 냉방시설이 없는 곳이 수두룩한 쪽방촌 주민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불볕더위와 씨름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북성로 쪽방촌 골목 안쪽에 위치한 2층짜리 A여인숙은 내부의 열기를 빼려고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여인숙 입구 쪽 작은 평상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쪽방촌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이 건물에는 2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벽걸이형 에어컨이 설치돼있는 방은 세 곳 뿐이다. 대구시 지원을 받아 지난해 설치됐는데 거동이 불편하거나 질병이 있는 거주민 우선으로 선정됐다. 전선 노후화 문제로 3대 이상의 에어컨은 설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건물에서 4년째 살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김모(45) 씨는 "대구시에서 지난해 에어컨을 설치해줘서 올해 여름은 그나마 버티기 좋다"고 말했다. 다만 김씨는 "전기요금이 부담 돼서 정말 더운날 하루 딱 20분만 틀고 있다"고 했다.
에어컨을 설치하지 못한 쪽방촌 주민들은 더 뜨거운 무더위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다. 에어컨이 한 대도 없는 인근 B여인숙은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후텁지근한 열기가 복도를 에워쌌다. 주민 곽모(53) 씨는 3.3㎡ 남짓한 방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무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언제 샀을지 모를 오래된 선풍기는 날개마다 새까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땀을 식히고자 곽씨가 선풍기 바람을 세게 틀어도 환기가 안 되는 좁은 방에서는 뜨거운 바람만 나왔다. 곽씨는 "밖에 나갈 힘조차 없을 정도로 덥다"며 "얼마전부터 열대야가 시작돼서 새벽에도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앞서 대구시는 지난해부터 에어컨 설치와 전기료 지원 등 대책을 내놓은 바 있지만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는 쪽방촌 주민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 쪽방촌 거주 인원은 593명, 여관 22동, 여인숙 43동으로 파악된다. 이중에서 올해까지 183세대(31%)에 에어컨을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대구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쪽방 건물은 일제시대 전후로 지어진 노후 건물이 많아 전력 용량 감당이 안 돼 설치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 수두룩하다"고 설명했다. 또 "개별 소유주가 있기 때문에 건물주 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장애물이 된다"고 덧붙였다.
김외철 대구시 복지정책과장은 "지난해 96가구에 대해 에어컨 설치를 했고 올해도 15가구 대상으로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며 "에어컨 설치 사업 외에도 냉방이 되는 임시주거공간, 냉방용품 지원을 통해 쪽방 주민 안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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