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문화예술도시 명성 지키는 길은

이연정 문화부 기자

지난해 말, 대구에서 열린 한 국제 문화 행사의 개막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문화예술단체장의 축사가 이어지던 중, 잘 흘러가나 싶던 이야기는 어느새 대구시의 문화예술 분야 예산 삭감에 따른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행사 분위기도 어색하게 바뀌었는데, 그것은 시작이었을 뿐. 이어 대구시 측 초청 내빈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해명(?)을 내놓았고, '예산 삭감' 키워드는 이후의 축사에서도 꼬리를 물고 계속 언급됐다. 국내외 예술가와 미술 전문가, 갤러리스트들이 모인 앞에서 행사 본질에 대한 이야기보다 돈 이야기가 앞서는 것을 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편으로 이해는 된다. 그러한 공개적인 행사에서까지 그 이야기가 오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앞서 대구시는 지난해 문화예술단체 보조금을 30%가량 대폭 삭감했고, 올해 또다시 추가로 30%의 예산을 더 줄였다.

가용할 예산이 적어진 단체들은 새로운 시도는커녕, 매년 이어 오던 행사 규모도 줄여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청년미술프로젝트' 행사장은 많은 관람객들로 붐볐지만, 행사 관계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보조금이 줄어든 탓에 엑스코 대관료와 파티션 설치 비용, 작품 운송료만 합해도 전체 예산의 60%를 훌쩍 넘는다는 것. 행사 관계자는 나머지로 홍보비와 인건비 등을 겨우 집행하는 수준이라며, 내년에 보조금이 더 깎이면 장소 대관조차 어렵지 않겠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역 문화예술협회 전반에서는 볼멘소리를 넘어 곡소리가 나온다. 특히 지난해에는 당초 책정한 행사 비용보다 예산이 크게 줄어 급하게 부대 행사 규모를 줄이거나, 하반기에 계약금을 지불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단체, 기관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기도 했다.

심각성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 '지방재정365'에 따르면 2022년 대구 전체 세출결산액에서 행사·축제 경비로 지출되는 비율은 0.16%다. 이는 서울(0.22%), 부산(0.2%), 인천(0.19%) 등 7대 특별·광역시 중 가장 적고, 이들 평균인 0.31%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2022년 결과가 이런데, 2년 연속 연달아 보조금을 삭감했으니 상황은 더욱 심각할 터.

또 지난해까지는 세수 부족으로 비상 재정 체제에 돌입한다는 대구시의 이야기에 예술인들도 어느 정도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자며 이해하는 분위기였으나, 최근에는 박정희 동상 건립에 14억원을 투입한다거나, 110억원을 들여 프러포즈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사업 등이 발표된 이후에는 '지역을 위해 감내한다'는 공감대마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돈을 많이 들인다고 행사 수준이 높아진다고 장담할 수 없고, 그간 부실하게 운영된 행사들은 제대로 진단한 뒤 페널티를 주거나 지원을 줄이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것까지 축소해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지역 예술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그들이 설 자리가 더 이상 줄어들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곧 문화예술도시 대구의 명성을 지키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각자도생으로 내몰기보다,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 지향점을 찾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회가 마련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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