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주 봐줄까?" 주말에 만난 친구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앱을 켜더니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묻는다. "너 임수(壬水) 일주네? 그래서 나랑 잘맞는거였구나 역시!"
#2. "선배 '럭키 키링'이라고 아세요? 못 구해서 난리래요." 스마트폰에 갖다대면 그 날의 운세를 알려준다니…. 신박한데?
#3. "'신들린 연애' 봤어? 솔로 점술가들 나오는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이래." 응? 무당, 퇴귀사들이 지상파 TV에 나온다고?
오마이갓. 이 세 장면 모두 지난 한 주 새, 내가 겪은 일이라니. MZ세대에 한동안 MBTI 열풍이 불더니 이제는 '사·타·점'(사주·타로·신점)이 인기다. 인기라기보단, 그간 음지에서 미신으로 여겨졌던 그것들이 좀 더 대중화되고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자기 분석에 열광하는 MZ들의 취향을 저격한, MBTI 심화편 같기도 하단 말이지. '귀염뽀짝'하고 트렌디한 아이템 시장과 SNS, 유튜브 시장까지 파고드는 '사·타·점'의 매력이 뭔지 파헤쳐봐야겠다.
◆사주? 자기 분석 끝판왕!
지난 18일, 대구 동성로 이른바 '타로골목'에 모인 이, 임, 최, 한 기자. 다들 사주 보는 날이라고 비장한 표정이다. 이것은 취재인가, 궁금증 채우기인가. 우르르 한 가게에 들어서니 사주, 궁합, 타로, 결혼 택일, 신생아 택일 등 다양한 선택지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각자 자리에 앉아 약 20분 간의 상담(?)시간을 가진 뒤 카페에 다시 모였다.
소현= 내 생년월일을 얘기하자마자 역술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 "고집이 세구만~" "네? 고집은 별로 없는데…"라고 반박하는 순간 아차 싶더라. 그분은 이렇게 생각했겠지. '그렇게 대답하시는 게 고집 센 거에요.^^' 근데 그 이후로는 좋은 말, 격려하는 말이 이어졌어. 처음 봤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응원해주는 느낌이랄까. 젊은 친구들이 열광하는 포인트를 알 것 같더라.
연정= 살면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나 나와 맞는 사람의 일주 등을 알게 돼서 좋았어. 지금까지 결혼 안 한 게 신의 한 수라니. 결혼 안하냐고 닦달하는 시대에 이만한 위로가 어딨겠어. 당분간 친구들과 이걸 주제로 얘기를 많이 나눌 것 같아.
소연= 난 인생의 반을 사주와 함께 지내왔을 정도야. 관심이 많아서 이제는 내가 어떤 일주를 타고 났는지, 어떤 살을 갖고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어. 오늘도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풀이를 해주셔서 겸허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번 달에 이동수가 있다는 말에 움찔했지 뭐야. 나 일주일 전에 부서 이동했잖아. 그런 것까지 사주팔자에 나타나있다니.
현정= 오늘은 취재도 취재지만, 최근 삶의 여러 부분에 갑작스런 변화가 많았어서 사주를 꼭 보고싶었어. 불확실한 미래 앞에, 정해진 운명을 귀띔해주는 사주에라도 기대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 근데 정말 놀랍게도, 이번 달에 내가 몸을 담고 있는 근거지에 큰 변화가 있다고 하는거야. 또 지금 이 시기를 잘 적응해나가면 내년에 볕이 든다는 얘기도 덧붙여주셨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라 해도, 심란한 시기에 큰 힘을 얻게 돼 좋았어.
사주 찬양이 아니다. 직접 사주를 보니 내 친구 지은이의 말이 크게 공감됐다.
"MBTI와 비슷한 것 같아. 너는 이런 성향이야, 이런 걸 잘해 라고 말해주는 게 달콤하게 느껴지잖아. 또 내 스스로 이해되지 않던 나의 모습도 내가 잘못하거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타고난 팔자라고 생각하면 묘한 해방감이 있더라고. 사회 생활하다가 누군가와 지독히 안 맞는 경우에도 아 그 사람과는 궁합이 안 맞아서 그러네, 하면서 좀 내려놔지기도 해."
◆'샤머니즘 소비' 열풍
우리는 오프라인으로 사주를 봤지만,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고수들은 손가락 몇 번 까딱거림으로 편리하게 '사·타·점'을 본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앱, 전화, 메일, 챗봇 구독 서비스 등 다양한 비대면 수단도 많아졌다.
이 모씨(31·직장인)는 최근 메일을 주고 받는 방식의 비대면 사주를 봤다. "대면하는 사주 풀이는 대화로 풀어나가기 때문에 글로 간직할 수가 없는데, 메일 사주는 저장해둘 수 있다는 점이 좋다"는 게 이 씨의 얘기다.
그런가 하면 직접 사주를 공부하는 MZ도 늘어나는 추세다. 위의 이 씨는 "원리가 궁금해 실제로 명리학을 공부해본 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제 사주를 볼 때 깊이 공부한 명리학자인지 아닌지 분간도 되고, 명리학자도 계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앞서 본 메일 사주도 나의 취향에 맞는 명리학자의 이론으로 공부한 분으로 골랐다"고 말했다.
이제는 운도 템빨. 이른바 '샤머니즘 아이템'도 인기다. 정수현(25) 씨는 최근 지인에게 '럭키 키링'을 선물 받았다. 정 씨는 "스마트폰에 갖다대면 그 날의 운세가 뜬다"며 "요즘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아, 배송에만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타·점' 대중화, 걱정은 넣어둬
이렇듯 기성세대의 전유물이자 미신으로 여겨졌던 '사·타·점'은 점차 벽이 허물어지는 추세다.
최근 방영 중인 SBS 예능 '신들린 연애'는 무당과 퇴귀사, 타로사 등 젊은 점술가들이 나오는 연애프로그램이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셀프 타로점을 보고, 축원을 해주는 등 지상파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장면들이 인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그런가하면 실제 무속인들이 나오는 티빙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샤먼:귀신전', 유플러스 모바일 티비 드라마 '타로: 일곱 장의 이야기' 등 신점과 타로 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용한 점집, 사주 필수 질문리스트, 사주 관련 지식 등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고, 유튜브에도 '사·타·점' 관련 영상이 넘쳐난다. 유튜브 통계 분석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국내 타로 관련 채널은 1천100여 개에 달한다. 이 중 '타로마스터 정회도'의 경우 채널 구독자 수가 49만명에 육박한다.
이 모든 현상들을, 너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의존하기보다 즐기고,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MZ니까! 그들에게는 '사·타·점'이 소소한 위로이자 재미인 셈. 마지막으로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김 모씨(35)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한다. 퇴직하고 40년은 더 살아야 할 가능성이 생기면서 대체 뭐 해먹고 살아가야하나 싶다. 또 AI가 등장한 이후 모든 것이 생각을 뛰어넘는 이 시대에, 5천년 역사의 통계학이라는 사주가 인생의 방향성이라도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흥미를 갖게 됐다."
송 모씨(33) "취업부터 사회초년생, 결혼, 출산 등 인생의 여러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었다. 그 때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혹은 재미로 사주를 봤던 것 같다. 인생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언제부터 풀릴거다'라는 말을 용기 삼아, 동력 삼아 살아가는 것 같다."
정소현 씨(28) "사주 앱 등을 이용해 오늘의 '행운의 색'이나 운세 점수를 매일 가볍게 확인한다. 하루를 시작할 때는 '오늘은 뭘 유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하루가 끝난 뒤에는 '아, 이 얘기였나보다'라고 하며 자책을 줄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 한다. 나쁜 운세는 미신으로, 좋은 운세는 운명처럼 받아들이려는 자기합리화 경향도 생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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