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빗물이 새벽 거리를 적시던 날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김미옥 수필가
김미옥 수필가

눈물이 소리를 삼켰다. 어둠 속에서 어깨만 들썩일 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감정봇짐이 터져 베갯머리가 흥건하다. 깨달음을 갈망하며 가끔 속을 털어내듯 울음의 의식을 치르며 새벽을 맞는다. 반백년하고도 절반을 살아온 나는 삶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빗물이 거리를 적시던 어느 날 새벽이다. 지친 마음이 녹초가 되어 잠들기도 잠시 창문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생각의 동굴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온갖 지난 사연이 나를 휘감는다. 돌이켜보면 늘 무언가를 쫓다가 주저앉고 다시 숨고르기를 반복하며 과정을 지나왔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라 했던가. 이십대는 채우지도 않고 계단을 오르려던 막무가내 심정이었다. 삼십대가 되면서 가정을 이루고 어른이라는 기분도 잠시, 처지를 원망하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우여곡절 끝에 일자리를 만들고 다시 줄을 세워보니 사십대의 초라한 내가 서있었다. 현실과 이상의 틈 사이에서 나를 외치며 얼마나 힘들게 자신을 바라봤던가. 어느새 오십대 절반을 지나며 예순을 바라보고 있다.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나이든 채 지난 시절 속에 머문 느낌으로 후회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이런 나의 고민을 다소 해소시켜 준 것 중 하나가 글쓰기다. 수필을 마주한 후, 삶은 끊임없이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가도록 훈련시켰다. 나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어루만지며 깊은 이해로 어우러질 때 마음의 근력도 점차 단단해졌다. 이후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음악이나 미술, 문학과 함께 일상을 다독이며 나를 깨우치려 한다.

만약 힘든 당신에게 지금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대답할 수 있는가. 여러 가지가 떠올라 머뭇거린다면 그것은 아직 숨구멍이 남아있다는 뜻일 게다. 끊임없이 불평과 불만이 계속 이어진다면 아래로 곤두박질 칠 일 밖에 남아있지 않다. 바닥을 치고 싶지 않다면 넋두리는 거둬야 한다. 단 하나의 소원이 나를 감싸며 눈물을 쏟아내게 할 때 이제 다시 일어날 기운을 찾게 될 것이다. 다양한 삶이다. 살면서 어려운 상황과 맞닥뜨릴 때마다 주저앉을 수는 없다. 스스로 가치를 느끼는 일을 찾아 마음을 담고 생각을 다듬어야 한다.

덤으로 살고 있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 즈음에 퇴직을 맞으셨고 시어머니는 사십대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보다 배움이 적고 삶의 폭도 넓지 않았지만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며 후손을 남기셨다. 이만큼 살다보니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높은 지위를 가졌다고 삶이 남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다. 일상이 깨어있어야 한다. 스스로 답을 얻으면 나의 에너지는 나보다 남을 위하고 우리를 위해서 움직이게 한다. 그 기운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힘이 내 주위를 감싸며 긍정 울타리 안에 머물게 된다.

빗소리는 더 거칠게 바닥을 치고 있다. 새벽이지만 밖은 깜깜하다. 어둠 속에서 간간이 자동차가 빗길을 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힘차다. 내가 삶에서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산다는 게 그저 지치고 힘들다는 생각으로 오열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다시 새롭게 기지개를 펼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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