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美 대선과 트럼프 리스크, K-배터리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미국 대통령 선거판이 요동(搖動)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사건에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트럼프 대세론'에 힘이 실리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非常)이 걸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 수입 자동차 추가 관세 등 '미국 우선주의' 공약이 현실화하기 때문이다.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업종은 배터리 산업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트럼프 리스크'가 아시아 배터리 제조업체들을 불확실성 속으로 몰아붙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산업연구원도 한국 배터리 업체가 IRA 효과로 미국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투자 위축과 실적 악화를 피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IRA는 미국이 글로벌 전기차·배터리 생산의 중심지가 되겠다는 목표에서 시행됐다. 미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때마다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면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까지 주어진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미국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42.4%로, 일본(40.7%)을 추월(追越)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현지 공급망을 구축하고 제조 공장 건설에 주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으로 IRA 지원 규모까지 축소된다면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최악의 경우 보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2차전지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대구경북 산업계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지역 배터리 소재 기업의 실적이 악화된 상황에서 '트럼프 리스크'까지 닥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高調)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정책은 관세 인상이다. 그는 미국보다 관세가 낮은 나라들에 일률적으로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자동차에 대해 최대 200% 관세를 부과하는 등 '관세 폭탄'을 공언(公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 공약이 현실화하면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상대국에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대미(對美) 무역수지는 287억달러 흑자를 내며 2022년 기준 연간 흑자 규모를 뛰어넘었다. 전 품목에 10% 관세가 부과되면 지역 수출입 업계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달 미국은 대구 지역의 최대 수출국이었다. 경북 기업의 대미 수출액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 비중을 차지했다.

정부는 트럼프 리스크 대처 방안을 선제적으로 모색(摸索)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미 트럼프 행정부를 경험한 적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협상을 통해 성과를 과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앞으로 명분을 실어 주고 이익을 취하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다.

즉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그의 포퓰리즘적 스타일로 시장의 변동성은 커지고 특정 국가와 산업이 피해를 입는 현상도 반복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과 행동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정부는 실리를 추구하는 냉철한 자세로 배터리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IRA 폐지가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손해라는 것을 현지에 알려야 한다. 한국 기업의 배터리 투자가 중단되면 생산기지가 들어선 곳은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서로 공생(共生)하고 번영(繁榮)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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