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중에 특기할 것은 김정희 여사(24세)는 남편 정남묵 중위가 ○○전선에서 장렬한 전사를 한 뒤 따라 가족 5명의 식구도 잊고 지원해 왔는데 이는 전 민족의 가화라 할 것이며 또한 41세의 노부인까지도 혈기에 넘쳐 지원하는 등 사실이 허다한데 이로 미루어 대한 여성의 각성 현저함은 물론 제2, 제3의 논개와 계월향이 얼마든지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매일신문 전신 대구매일신문 1950년 8월 27일 자)
제2의 논개와 계월향은 누구인가. 논개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 '평양의 논개'로 불린 계월향은 평양성을 함락한 왜장을 죽이게 한 후 자결했다. 둘 다 국난 앞에서 신분의 귀천을 떠나 침략자를 응징하려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400년이 지나 논개와 계월향의 이름이 6‧25전쟁으로 다시 등장했다. 논개와 계월향은 한둘이 아니었다. 전사한 남편의 뒤를 이어 전쟁터에 나온 부녀자도 있었다. 41세의 노부인까지 나섰다. 마흔이 넘은 여성을 노부인으로 부른 데서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알 수 있다.
전쟁 직후 후퇴했던 군은 7~8월이 되자 전세를 뒤집는 총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연합군의 지원에 아랑곳없이 병력 부족이 심각했다. 부상자와 전사자가 속출한 때문이었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 의용군 모집에 나선 이유였다. 군 정훈국은 8월 하순을 기준으로 700여 명의 여성이 지원했다고 발표했다. 여학생, 가정주부 등의 지원을 두고는 민족의 가화(佳話)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가화'는 아름답고 좋은 이야기라는 의미다.
부녀자에 대한 이런 칭찬과는 달리 시국 인식에 대한 우려의 소리도 나왔다. 전쟁 부상자를 치료하는 병원의 상황을 보도하는 신문 기사였다. 당시 병원의 대다수 부상군인은 피 묻은 군복을 입고 시멘트 바닥에 모포 한 장을 깔고 누워있는 게 전부였다. 세탁이 되지 않으니 피 묻은 군복을 그대로 입고 있어야 했다. 신문은 여성들이 꽃을 들고 위문 방문만 할 게 아니라 군복 세탁을 주문했다. 또 간호사 부족도 여성들이 지원해서 채워 주길 바랐다. 이 같은 걱정은 기우였음이 신문의 다른 보도로 드러났다.
'고등간호학교 출신의 여자는 그 실력에 따라 소요의 군사훈련을 마친 후 간호장교를 기용하여 육해공군의 각 병원에 배속시켰으며 웅변과 문필에 능한 여성은 정훈장교로 기용하여 적진을 향해 마이크를 통해 정훈 공작을 담당케 하였다. 고요한 달밤에 낭랑한 음성으로 청아한 음파를 보낼 때 사면초가 격으로 전의를 상실하여 38선을 넘어온 투항자 수백 명을 보고 있으니 이는 여성만이 능히 할 수 있는 심리전의 승리를 말함인 것이다.' (대구매일 1951년 3월 24일 자)
여자 의용군은 한 달 정도의 훈련을 마치고 전쟁이 난 그해 10월 육군본부에 처음으로 배치되었다. 이듬해 2월에는 제2기 수료생이 전선에 배치되는 등 여자 의용군 지원이 이어졌다. 고등간호학교 출신의 여자는 간호장교로 육해공군의 각 병원에 배치됐다. 시인들이 홍보전을 벌였듯 웅변과 문필에 능한 여성은 정훈장교로 기용하여 적진을 향해 마이크로 선전 활동을 담당토록 했다. 선무방송의 성과도 나타났다. 여성 정훈장교의 낭랑한 목소리를 듣고 38선을 넘어온 투항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니 말이다.
애초 여성의 군인 모집은 반대 여론이 적잖았다. 보병에 여성 채용을 단행하자 반발이 더 커졌다. 여군이 전투를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여군 훈련에 소요되는 경비를 남자 군인의 훈련에 충당해야 강한 군대가 된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경리‧보급‧후생‧간호병 등으로 배치된 여군은 남자 군인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또 남자 군인이 전출된 자리를 맡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고와 군기 문란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논개와 계월향마저 등장시킨 여자 의용군 배치는 성공적이었단 자평이 나왔다. 당시 국방장관은 "대한의 여성도 세계 어느 나라의 여성에게도 지지 않은 수준"이라며 "앞으로 남자들에 지지 않게 제반사에 실천력을 가질 것이며 조금이라도 남자의 압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내가 거들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압제와 거듦의 기준이 바뀌고 있거나 바뀌고 말았다.
박창원 경북대 역사문화아카이브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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