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가성비’의 저주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옷을 싸게 사서 빠르게 소비하는 세상이다. 글로벌 의류업체들이 대량 생산에 뛰어들고 있다. 예전에 패션 브랜드가 매년 2~5종의 신제품을 제작했다면,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브랜드는 연간 수십 종의 신제품을 생산한다. 패스트 패션은 최신 유행을 반영하면서 저가(低價) 의류를 짧은 기간에 대량 생산·판매하는 업종을 말한다. 즉 더 싼 비용으로 더 많이 만들어, 더 많이 소비하도록 한다.

의류산업 역사에서 최악의 사건이 있었다.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의 사비르 공단 내 '라나 플라자' 의류 공장 붕괴 참사다. 무려 1천200여 명이 숨졌고, 2천500여 명이 다쳤다. 사고 발생 전날 봉제(縫製) 노동자들은 불법 증축 건물에서 일하기를 거부했다. 벽에 생긴 균열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장주들은 작업을 다그쳤다. 대형 참사(慘事) 후에도 패스트 패션 산업은 달라진 게 없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며, 겨우 생계를 이을 정도의 돈을 받고 있다. 반면, 패스트 패션 기업들은 계속 성장세다.

경기 화성 리튬전지 공장 화재 참사(6월 24일)로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대부분(18명)이 외국인 노동자였다. 이들은 인력 공급 업체가 파견한 일용직(日傭職)이었다. 일감이 몰릴 때마다 싼값에 짧게 고용되는 사람들이다.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졌을지 의문이 든다.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이 국내 산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어 안전교육을 하거나, 외국어 안전표지판을 설치한 곳은 드물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812명 중 외국인은 85명(10.5%)이었다. 전체 취업자 중 외국인 비율(3.2%)을 감안하면,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 비율은 내국인보다 3배나 높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일하는 곳이 내국인이 꺼리는 힘들고 위험한 업종이고, 그들을 위한 안전 대책이 부실해서 그렇다.

'안전'에는 '돈'이 든다. 안전한 설비 구축, 안전 교육, 안전 점검, 충분한 휴식은 생산 단가와 맞물려 있다. 보통의 소비자들은 '가성비(價性比·가격 대비 성능) 좋은 제품'을 선호한다. 가성비를 높이려면 생산 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다. 사악한 노동환경이 발붙이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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