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센강에서 수영을 하긴 하는데… [채정민기자의 봉주르, 파리]

프랑스, 센강서 철인3종 수영, 오픈워터스위밍 계획
대회 전부터 수질에 대한 지적 많아, 비로 인해 악화
훈련 일정도 미뤄지다 일단 철인3종 수영 종목 진행
선수들 주최 측 믿는다지만 수질에 대한 우려 여전

프랑스 파리 센강에서 수영 경기 시설물을 설치하는 모습.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 센강에서 수영 경기 시설물을 설치하는 모습. 채정민 기자

"미쳤습니까? 여기에서 나같으면 수영을 하겠나고요?"

프랑스 파리의 이에나 다리 아래에서 아내, 아이들과 휴식을 취하던 쟝 퓌레(43) 씨가 뱉은 말이다. 이 다리는 센강을 두고 마주한 에펠탑과 트로카데로 광장을 잇는 통로. 프랑스가 이번 올림픽 때 센강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장담해왔기에 센강 주변을 거닐며 만난 파리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기자도 영어를 잘 못하지만 그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휴대전화 번역기의 힘을 빌어 프랑스어로 대화했다.

퓌레 씨는 "센강에서 마음 놓고 수영을 할 수 있다면 좋긴 하다. 우리도 여름에 시원하게 즐기고 싶다. 하지만 이런 물에서 무슨 수영 얘기냐"며 "물 색깔만 봐도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외국 선수들에게 이 물에 뛰어들라고 하는 건 어이없는 일"이라고 했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센강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 모습.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센강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 모습. 채정민 기자

센강에선 수영, 사이클, 마라톤으로 이뤄진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경기 중 수영과 오픈워터스위밍이 열린다. 프랑스는 하수 처리 시설 현대화 등 센강 정화를 위해 15억유로(약 2조2천565억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우려는 잦아들지 않는 형편이다.

자신의 이름을 마리라고 한 20대 여성 교민의 얘기도 비슷했다. 그는 "센강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뜻은 좋다. 다만 당장 뭘 자꾸 보여주려는 욕심이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며 "이번 대회 때뿐 아니라 앞으로도 좋은 수질을 유지할 수 있다면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이 수영하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부근에서 만난 여성 자원봉사자의 말도 같았다. 그는 "맞다. 이곳에서 선수들이 수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라면 경기를 거부하겠다"며 "어렵다는 걸 알면서 왜 자꾸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다만 신분상 이름을 밝히긴 거절했다.

프랑스 파리 센강에 이는 물결.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 센강에 이는 물결. 채정민 기자

센강 수질과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선수들의 훈련 일정이 취소되기도 했다. 개막식이 열린 26일과 27일 파리에 폭우가 쏟아져 센강 수질이 나빠진 탓이다. 비가 많이 오면 오랜 기간 오염된 수로에 쌓여 있던 불순물들이 센강으로 흘러 들어 강물이 더러워지는 현상이 반복된다.

28일 '수영 마라톤'으로 불리는 오픈워터스위밍 종목의 센강 훈련이 중지된 데 이어 29일 철인 3종 참가 선수들의 연습도 미뤄졌다. 더러워진 물에서 수영하다 위장염, 결막염, 피부질환 등을 앓을 수 있어 훈련 일정이 바뀐 것이다. 파리 올림픽조직위원회는 급히 수질을 점검해야 했다.

2024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남자 철인3종 경기 선수들이 31일 2024 프랑스 파리의 센강으로 뛰어들고 있다. 연합뉴스
2024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남자 철인3종 경기 선수들이 31일 2024 프랑스 파리의 센강으로 뛰어들고 있다. 연합뉴스

말도, 탈도 많았던 센강에서의 수영은 현실화했다. 31일(현지 시간) 철인3종 남자 경기가 정상적으로 치러졌고, 선수들은 센강에 뛰어들어 헤엄을 쳤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했으나 일단 선수들은 주최 측을 믿는 모양이다.

철인 3종 남자부 개인전은 30일에서 하루 연기됐다. 이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레오 벨제흐(프랑스)는 "레이스가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고, 수영하는 걸 조금 망설이긴 했다"면서도 "대회 조직위원회를 믿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오늘의 센강이 그렇게까지 더러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은 대회에서 다시 비가 오고 센강 수질 문제가 또 도마 위에 오를지도 모른다. 경기 후 구토하는 선수의 영상은 이미 많이 퍼졌다. 철인3종 혼성 계주 선수들의 수영 훈련도 미뤄졌다. 벨기에 여성 선수 중엔 혼성 계주에 기권하는 선수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자세한 설명은 없으나 수질 문제로 대장균에 감염됐다는 말도 들린다.

아직 센강에서 치를 경기는 남았다. 10㎞를 헤엄치는 오픈워터 스위밍(8∼9일)도 여기서 열릴 예정이다. 철인 3종 경기는 달리기와 사이클로만 치르는 걸 고려할 수도 있다지만 이 종목은 헤엄치는 것 하나다. 이것까지 무사히 치러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파리에서 채정민 기자 cwolf@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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