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터뷰] 대구 불로중 마칭밴드 "교장쌤이랑 밴드, 다들 깜짝"…50년 나이 차 무색 '완벽 하모니 '

일어서서 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대구경북 유일, 축제 초청받기도
지난해 전국 관악경연대회 동상…교장 선생님 매일 연습 동료 같아
단톡방 문화생활 공지 자주 올려…교문 등교 음악회 신청곡도 받아

지난 22일 대구 불로중학교의 음악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무게감 있고 웅장한 연주가 심장을 쿵쿵 울린다. 30여명의 학생들은 저마다 악기를 들고 음악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 사이로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가 유독 눈에 띈다. 바로 불로중 마칭밴드의 최고령 단원 현영철(61·앞줄 가운데) 교장이다.
지난 22일 대구 불로중학교의 음악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무게감 있고 웅장한 연주가 심장을 쿵쿵 울린다. 30여명의 학생들은 저마다 악기를 들고 음악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 사이로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가 유독 눈에 띈다. 바로 불로중 마칭밴드의 최고령 단원 현영철(61·앞줄 가운데) 교장이다.

지난 22일 대구 불로중학교의 음악실. 40여명의 학생들이 저마다 악기를 들고 줄지어 섰다. 그런데 그 사이로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와 주름진 얼굴. 바로 불로중 마칭밴드의 최고령 단원 현영철(61) 교장이다. 막내 단원과 나이 차이는 무려 50살. 그럼에도 이들은 언제나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해당 인터뷰는 불로중 마칭밴드 40여명 단원 중 김윤영(13) 양지성(14) 정아연(14) 학생과 진행했습니다.

-국내에서 마칭밴드는 다소 생소하다. 밴드 소개부터 부탁한다.

▶다들 오케스트라는 알아도 마칭밴드를 한다고 하면 잘 모르더라. 대구경북에서 유일하고 전국에도 몇개 밖에 없는 걸로 안다. 쉽게 설명하면 마칭밴드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일어서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군악대를 생각하면 조금 더 쉽겠다. 대열을 맞춰 행진하며 관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동선 연습도 해야하고, 일어서서 악기를 연주하는 데에도 익숙해 져야하기에 앉아서 연주하는 것 보다 몇배의 연습량이 요구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행사에 초청되는 경우도 꽤 많다. 지역 축제나 개막식 등 전국으로 다닌 것 같다. 작년에 출전한 전국 관악경연대회에서는 동상도 탔다. 내년에는 일본과 자매결연을 맺는다고 하더라. 불로중 마칭 밴드는 재작년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시면서 창단됐고 벌써 3년째다. 조용하던 학교가 음악 소리로 시끌벅적 해졌다.

-학교 분위기가 확 바뀌었겠다. 불로중은 지역에서도 소외되는 학교이지 않나.

▶아무래도 변두리 지역인만큼 처음 입학했을 때보다 학생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작년에는 무려 25%나 급감했다고 한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항상 불로중이 살아남는 방법은 특성화가 답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악기 하나, 운동 하나는 꼭 배워가게 해주겠다고 하셨다. 클라리넷을 전공하시고, 학생 오케스트라 사업을 오래 해오신 덕분에 마칭 밴드도 빠르게 안정화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음악실도 리모델링하고, 악기도 100여대가 마련됐다.

-불로중까지 인터뷰를 오게 된건 사실 교장선생님 때문이다. 마칭 밴드도 마칭 밴드지만 이곳의 밴드는 교장선생님이 단원이라고 들었다. 사실 교장선생님은 어려운 존재가 아닌가. 지도교사가 아닌, 밴드 단원으로 함께 연습하기 불편하지 않은가. 솔직하게 이야기 해달라.

▶물론 처음에는 불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친할아버지와 교장선생님 나이가 비슷하다.(웃음) 초등학교 때도 그렇고 교장선생님을 가까이서 뵐 일이 잘 없다. 하지만 밴드 활동을 하고 단원 대 단원으로 매일 연습을 같이하니 이제는 동료처럼 느껴진다. 교장 선생님께 악기에 대해 많이 배우기도 한다.

그럴 때는 선배 같다. 등교 전에 연습을 하는데 항상 제일 먼저 나와 계신다. 일찍 나오다보니 아침을 잘 못 먹고 오는데 토스트나 두유를 준비해 주시기도 한다. 교장선생님과 공연이나 영화를 보러도 간다. 단톡방(카톡)이 있는데 거기에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공지를 자주 올리신다.

그럴 때면 시간맞는 친구들과 함께 외부활동을 나간다. 교장선생님은 어떻게 보면 학교의 대빵 아닌가. 하지만 밴드 활동을 할 때는 그냥 또래 같다. 지도 선생님에게 잔소리도 많이 들으신다. 그럴 때마다 친근함을 느낀다.

불로중 마칭밴드는 젊은 대학생 지도 교사들이 있다. 학생들은 젊은 선생님에게 악기를 배워서 좋고, 대학생들은 공연 실적과 봉사활동 점수를 받아서 좋다. 마을교육공동체 차원으로 불로중에서 아이디어를 냈다는 해당 사업은 대구에서 유일한 시스템이다.
불로중 마칭밴드는 젊은 대학생 지도 교사들이 있다. 학생들은 젊은 선생님에게 악기를 배워서 좋고, 대학생들은 공연 실적과 봉사활동 점수를 받아서 좋다. 마을교육공동체 차원으로 불로중에서 아이디어를 냈다는 해당 사업은 대구에서 유일한 시스템이다.

-지도 교사들도 다 젊은 것 같더라. 숫자도 꽤 되는 것 같던데.

▶밴드 단원이 35명 정도인데 선생님이 30명이나 된다. 거의 1대 1 수업이다. 대학생(계명대학교·영남대학교 음대 재학생) 언니 오빠들인데 교생 선생님 같고 너무 좋다. 지도 선생님들은 우리를 가르치며 공연 실적이나 봉사활동 점수를 받아 간다고 한다. 마을교육공동체 차원으로 우리 학교에서 아이디어를 냈고 대구에서 이런 시스템은 유일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인 것 같다. 또 이런 경험을 하다보면 진로를 찾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부모님도 항상 말씀하신다. '음악 가르치려고 하면 학원비가 얼만데,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쳐 주니 너무 좋다'고 하신다. 초등학교 때는 오케스트라 존재도 몰랐다. 불로중에 입학을 안 했더라면 학교는 공부만 하러 오는 곳이었을 지도 모른다. 여기에 와서 많은 악기들을 배울 수 있었고, 내게 뭐가 맞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 볼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 같다.

실제로 한 친구는 밴드활동을 하면서 본인이 절대음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더라. 이후 그 친구는 음악 쪽으로 진로를 선택하려고 하고 있다. 학교에서 음악 관련 진로진학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다더라. 또한 밴드 활동을 함에 있어 아이디어도 내고 학생들끼리 무언가를 해보게끔 경험을 시켜주시기도 한다.

대구 불로중에는 학생 자치가 잘 이뤄진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학급 음악회 모습.
대구 불로중에는 학생 자치가 잘 이뤄진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학급 음악회 모습.

-학생 자치가 잘 이루어 진다는 말로 해석해도 되겠나. 사례를 들어보고 싶다.

▶밴드 운영에 있어 많은 것을 직접 해볼 수 있도록 해주신다. 예를 들자면 학급 음악회도 우리가 기획해서 직접 연다. 노래 선곡부터 멤버 구성까지 모두다 우리가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무대는 마치고 나면 유달리 뿌듯하고 재밌다. 밴드 초기 악기 선택에 있어서도 자율성을 주신다.

덕분에 우리 밴드에는 '억지로' 무언가를 하는 학생들이 없다. 그래서 합주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그리고 학생 한 명당 악기 하나만 다루는 게 아니다. 나의 주악기는 트럼펫인데, 클라리넷이나 색소폰을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신다.

대구 불로중에는 종종 등굣길 음악회가 열린다. 불로중 마칭밴드의 웅장하고 힘 있는 연주는 학생들의 등굣길에 힘을 북돋아준다.
대구 불로중에는 종종 등굣길 음악회가 열린다. 불로중 마칭밴드의 웅장하고 힘 있는 연주는 학생들의 등굣길에 힘을 북돋아준다.

-등굣길 음악회도 화제인 것 같더라. 친구들이 등교할 맛 나겠다.

▶친구들이 등교할 때 힘을 주기 위해 교문에서 음악회를 연다. 웅장하고 힘 있는 음악을 많이 다루다보니 축 처지는 등굣길에 딱 맞는 음악회다. 우리가 바쁜 날엔 교장 선생님 혼자서 공연도 하신다. 이때는 신청곡도 받는데 아이브, 뉴진스, 악동뮤지션 등 요즘 노래들을 연주해주신다. 교장선생님께 "쌤 이 노래 아세요?" 라고 물었더니 "당연히 모르지. 악보 보고 그냥 연주하는거란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노래니까 나도 배워봐야지" 라고 하시더라. 웃기면서도 가슴이 조금 뭉클했다.

음악실을 나오자 불로중의 풍경이 새삼 다르게 보인다. 교내 복도엔 현대미술 갤러리가 펼쳐졌고, 방치됐던 테라스 공간은 학생들의 쉼터로 꾸며졌다. 운동장도 시끌시끌.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독려한 끝에 교내 양궁부는 전국 1등을 했고, 플라이볼은 대구 우승을 했다.

교육을 향한 교직원들의 진심이 만들어낸 변화가 아닐까. 교장실보다 음악실이 더 편하다는 현영철 교장은 말한다. "우리 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공부 말고도 뭐 하나는 꼭 배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잘 커나갈 수 있도록 여러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