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0시쯤 찾은 대구 동구 평광동 사과 단지.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홍옥'(미국에서 들여온 사과 품종) 사과나무가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은 지구온난화로 작물 생육선이 북상하면서 대구에 얼마 남지 않은 사과 농가다.
35년 동안 이곳에서 사과 농사를 지어온 강영모(79) 씨는 이날도 오전 5시부터 과수원에 나와 한창 나무를 손질했다. 쨍쨍한 햇볕 아래 강 씨는 관자놀이에 맺힌 땀을 손으로 연방 훔쳐냈다.
그는 "낮 1시부터 3시까지는 일을 못 할 정도로 덥기에 덜 더운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시작한다. 오후에는 3시부터 7시 30분까지 일한다. 요즘에는 늦은 저녁까지도 더위가 사그라지지 않아 너무 힘들다"며 "달려드는 벌레 때문에 긴 상의와 하의를 입어야 하는데, 농약을 칠 땐 그 위에 우비까지 착용한다. 작업 후에는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른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에 39℃까지 올라간 날이 4일 정도 지속되자 사과 출하량이 평소보다 35% 정도 줄었다. 사과가 햇빛에 썩는 걸 막으려면 열 방지 코팅 약을 쳐야 하는데 약값이 만만찮다"며 "습도까지 높아져 벌레가 자주 생겨 약을 더 자주 뿌려야 해 돈이 갑절로 든다"고 하소연했다.
대구 지역에서 폭염이 잦아지고 습도까지 높아진 가운데 바람이 줄고 있어 '대프리카'(대구와 아프리카의 합성어)의 악명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60년 뒤 대구 폭염일수 32.4→75.5일 증가
대구의 여름이 갈수록 빨라지고 길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기상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구의 6월 평균기온이 평년(1991~2020년) 23.2도였으나 올해는 24.6도로, 1.4도 더 높아졌다. 6월 평균최고기온 또한 올해는 평년(28.6도)보다 더 높은 30.4도를 기록했다. 이미 6월부터 30도가 넘는 한여름 날씨를 보인 것이다.
특히 10년 단위 평균값을 보면 5월과 6월의 기온 상승이 눈에 띈다. 1950년대 대구의 5월 평균기온은 17.7도에서 계속 높아져 2010년대에는 20.2도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6월 평균기온도 21.3도에서 23.6도로 상승했다. 대구의 여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여기에 9월 늦더위까지 강해지고 있다. 9월 평균기온은 1950년대 20.4도에서 2010년대 22.1도까지 높아졌다. 최근 3년(2021~2023년) 평균기온은 22.5도를 기록했다. 이는 6월 더위와 맞먹는 수준이다. 여름이 끝나는 시점도 늦춰지고 있는 셈이다.
한여름의 더위도 더 극심해졌다. 대구의 연간 폭염일수(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의 수)가 평년 27.0일에서 최근 3년 31.7일로 늘었다. 이는 전국의 특별‧광역시 7곳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은 수다. 최근 3년 기준으로 내륙 지역인 대전(22.7일)과 광주(17.7일), 서울(15.7일) 등이 뒤를 이었다. 바닷가 도시인 울산(7.7일)과 부산(4.3일), 인천(4.3일) 등은 대구의 14~24% 수준에 그쳤다.
강도는 물론 길이도 길어지고 있다. 대구의 5월과 6월 폭염일수는 평년 0.6일과 3.1일이었는데, 최근 3년은 1.7일과 5.3일로 모두 늘었다. 특히 올해 6월의 경우 대구의 폭염일수는 8일을 기록했다. 평년은 물론 최근 3년 수치를 웃돌았고, 대전(6일)‧서울(4일)‧광주(3일) 등 다른 대도시들보다 많았다.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지난해 12월 발행된 기상청의 '지역 기후변화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SSP2-4.5 시나리오'(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정책이 중간 단계로 실현된 경우를 가정)를 적용했을 때 대구의 21세기 중반기(2041~2060년) 연간 폭염일수는 59.3일이다. 이는 현재(2000~2019년) 32.4일보다 26.9일이 많아진 수치다. 21세기 후반기(2081~2100년)가 되면 75.5일로, 현재보다 2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열대야 일수(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날)는 현재 12.7일에서 21세기 중반기와 후반기에 각각 45.3일, 58.9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최대 일 최고기온은 현재 37.3도에서 중반기 41.3도, 후반기 42.5도로 4~5도 가량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21세기 전반기(2021~2040년)부터 대구 내 일부 지역에서 아열대 기후(월 평균기온이 10도 이상인 달이 8개월 이상 지속되고,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이 18도 이하)가 나타나기 시작해 중반기에는 모든 지역이 아열대 기후에 속하게 된다는 전망도 잇따랐다.
기상청은 "아열대 기후의 확장이 빠르게 진행돼 21세기 중반기에 경기 해안과 경상남도 지역으로 확장되며, 후반기엔 대구와 경북 남부 지역을 비롯한 우리나라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소중한 '바람'은 약해지는 중… 습도는 증가
반면, 더위를 식혀줄 단비 같은 여름철 바람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대구 평균풍속의 10년 단위 평균값을 살펴보면, 6월의 경우 1950년대 3.2㎧에서 2010년대 2.3㎧로 약해졌다. 같은 기간 7월 3.2→2.0㎧, 8월 3.0→2.1㎧로 각각 줄었다.
평년과 비교해도 감소세는 뚜렷했다. 대구의 평년 평균풍속은 6월 2.4㎧, 7월 2.3㎧, 8월 2.3㎧였으나, 최근 3년은 각각 2.3㎧, 2.0㎧, 1.8㎧로 모두 동월 대비 감소했다. 평년 대비 최근 3년 최대풍속 역시 6월 8.1→7.3㎧, 7월 8.4→7.1㎧, 8월 8.5→7.8㎧로 각각 약화됐다.
그런가 하면 분지 지형 특성상 바닷가보다 낮은 편이었던 습도는 과거에 비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습도란 공기 중 수증기가 들어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대구의 평균습도는 평년값으로 6월 63.7%, 7월 72.2%, 8월 72.1%였는데, 최근 3년은 각각 67.0%, 74.7%, 77.0%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5월과 9월도 56.0→58.3%와 70.4→77.7%로, 특히 9월의 평균습도가 크게 높아졌다. 습도 증가는 체감온도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대구의 여름철(5~9월) 체감온도 평균은 2014년 28.3도에서 지난해 29.0도로 올라갔다.
이는 결국 지구의 평균온도가 상승하는 '지구온난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해동 계명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고위도와 중위도 지역의 기압 차가 줄어들고, 이로 인해 바람이 약해지는 것"이라며 "대구는 특히 분지여서 원래 바람이 약한 곳인데, 지구온난화까지 겹쳐 바람이 더 줄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9월 습도가 높아진 것 역시 지구온난화로 가을 강수량이 많아져서다. 특히 태풍 발생 시기가 점점 늦춰져 가을에 태풍이 잦아졌다"며 "해수 온도가 높아질수록 수증기량이 많아진다. 이 탓에 수증기를 빨아들여 태풍이 세진다. 특히 해수 온도가 높아진 가을에 발생하는 태풍의 위력이 강하고, 농작물과 인명 등의 피해를 안긴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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