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이 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1878년 11월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나 59년 4개월 후인 1938년 3월 옥사(獄死)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필자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반일(反日) 시위가 전국을 뒤덮던 1982년 8월 도산 선생을 새롭게 만났다. 일본을 이기고 넘어서자는 극일(克日) 운동으로 비화하던 무렵이었다.
대학 1학년이던 필자는 광복절 직전 한 월간지에 실린 도산 선생 평전을 꼼꼼히 읽으면서 죄송스러움과 가슴 벅차오름을 느꼈다. 특히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라는 선생의 말씀에 뜨거운 감정이 솟구쳤다. 긴장된 시국 상황에 젊은 감수성이 겹쳤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대한 사회에 주인(主人) 되는 이가 얼마나 됩니까?… 자기의 지성(知性)으로 자기 민족을 건지어 낼 구체적 방법과 계획을 세우고 그 방침과 계획대로 자기의 몸이 죽는 데까지 노력하는 자가 그 민족사회의 책임을 중히 알고 일하는 주인이외다"라는 구절도 열아홉 청년의 혼을 뒤흔들었다.
42년이 흐른 지금, 필자가 그때의 다짐과 감동에 얼마나 부응하는 삶을 살았는지 되묻는다면 부끄러운 점이 많다. 하지만 도산 선생이 강조하신 '무실역행(務實力行)'과 "개인은 민족을 위하여 일함으로써 인류와 하늘[天]에 대한 의무를 수행한다"는 그의 삶의 자세를 잊지 않고 닮으려 애써 왔다고는 말할 수 있다.
장남(長男)의 이름까지 '조국을 반드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뜻을 담아 필립(必立)으로 지은 도산 선생의 염원 덕분인지 대한민국도 장족의 발전을 했다. 1982년 2천달러이던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해 3만6천달러대로 수직 상승했다. 2023년 미국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에 한국은 18개가 포함됐다. 근래에 주춤하지만 스포츠와 영화·드라마·가요 등에서도 한국은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최선두권으로 약진했다.
선생의 유훈(遺訓)에 비추어 볼 때 미흡한 분야도 많다. 그가 우리 민족을 쇠퇴케 하고 우리로 하여금 망국 국민의 수치를 받게 한 근본 원인이라 질타한 거짓말과 거짓 행실이 대표적이다. 도산 선생은 "갑신정변 이래로 만민공동회, 독립협회 등 여러 결사 운동이 3년의 명맥을 지탱한 게 없는 주요 이유는 '거짓말' 때문이다"고 했다.
그런데 거짓말로 인한 한국의 사기 범죄 건수는 2011년 22만 건에서 2020년 35만 건으로 10년 새 60% 늘었다. OECD 회원국 중 한국의 사기 범죄율이 1위이며, 14세 이상 국민 100명당 1명꼴로 매년 사기를 당한다는 통계도 있다. 17세기 조선에 왔던 네덜란드 선원 하멜은 '표류기'에서 "조선인들은 남을 속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잘한 일로 여긴다"고 했다.
지금도 정당 대표부터 국회의원, 대기업 CEO, 승부 조작에 가담한 스포츠 선수, 사실 확인 없이 선동에 나서는 연예인들까지 국민 상대 거짓말 행각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한 경제전문지는 2016년 6월 한국 경찰청 통계를 인용해 "한국에서 사기죄로 기소된 사람은 양국의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일본보다 165배 많다"고 밝혔다.
100여 년 전 도산 선생은 "죽더라도 거짓말하지 말고 정직하자"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외쳤건만, 우리는 가장 기본인 '거짓말 안 하기'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암흑 같았던 일제강점기에 그는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암흑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비운(悲運)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자"며 동포들을 격려했다.
7가지 병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사랑하는 동포들이 많은 괴로움을 당하니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는 유언을 남기고 떠난 도산 선생께 우리는 언제 '과업 완수 보고'를 올려 드릴 수 있을까.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김건희 특검법, 대통령 거부로 재표결 시 이탈표 더 늘 것" 박주민이 내다본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