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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이재명, 한동훈, 조국 팬덤과 환각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사랑에 빠진 청춘 남녀들은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더운 날씨도 덥지 않고, 추운 날씨도 춥지 않으며, 시시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낮에 종일 함께 있다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서는 밤새 또 전화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서로에게 취해 있기 때문에 좋은 점만 보이고, 단점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불타는 연애 감정에 취해 바라보는 상대의 모습은 그의 실체(實體)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은 자신의 무지(無知)와 착각(錯覺)과 희망적 사고(思考)가 빚어낸 허상(虛像)이다. 물론 상대가 그럴싸한 말로 만들어 낸 그림자도 거기에 어른거린다.

불행한 것은 불타는 연애 감정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불행한 것은 불타는 감정에 취한 상태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열정(熱情)의 불이 꺼지고 난 뒤 탄식(歎息)하지만, 피해는 이미 어마어마하다. 한때 사랑했던 많은 부부들이 그렇게 서로 '인간성의 밑바닥'을 확인하며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거나 돌아선다. 사랑에 취해 상대의 본질(本質), 피차(彼此) 용인(容認)할 수 없는 차이(差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취한 상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결혼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불타는 열정이 사라진 뒤에도 함께 살아야 할 이유,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결혼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랑에 빠지면 더위도 추위도 모르지만, 열정의 시간은 짧고, 결혼 생활은 길고 험한 여정이니 말이다.

정치인에 대한 열광도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을 '나와 이해관계(利害關係)가 분명한 대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사랑에 빠진 눈'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선거(選擧)는 나를 대신해 일할 사람을 고용(雇用)하는 과정임에도 연애하듯 접근하는 것이다. '이재명 팬덤' '한동훈 팬덤' '조국 팬덤'이 그런 예다.

세간(世間)에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는 얼굴 예쁜 여자도, 몸매 좋은 여자도, 마음씨 고운 여자도 아니다. 낯선 여자다'는 우스개가 있다. 하지만 '낯선 여자'와 결혼하는 바보는 없다. 그러나 유권자 자격으로 정치인을 선택할 때는 그 '바보짓'을 하곤 한다. 신인 정치인, 때 묻지 않은 정치인을 선호하는 것이다.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당원들이 그런 선택을 했다고 본다. 신입 사원을 사장으로 뽑은 격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대해 흠결(欠缺)이 수두룩하다고 지적하는데도 내게는 그 흠결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 눈을 의심해 보는 것이 온당(穩當)하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이재명 후보 일방 독주는 민주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집단 미몽(迷夢)에 빠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개딸들'은 자신들의 열정이 민주주의 발전의 자양분(滋養分)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개딸들'이 전제정치(專制政治) 괴물을 키우고 있다고 우려한다.

정치인에 대한 팬덤은 그 해악(害惡)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연예인 팬덤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쁜 정치는 국가와 사회를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한다면 '사랑에 빠진 눈'이 아니라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정치 현안과 정치인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치 초보에 열광한 국민의힘 전당대회,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묻지 마 이재명 지지', 선거인단 99.9% 찬성으로 조국 대표의 당 대표 연임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집단 환각(幻覺)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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