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채정민기자의 봉주르, 파리] 파리는 화장실과 '분투' 중

노상 방뇨와 악취로 악명 높은 파리
칸막이 없는 간이 소변기도 등장해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한쪽 길가에 줄을 이어 설치된 소변기. 뒤로 문이 달린 간이 화장실도 보인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한쪽 길가에 줄을 이어 설치된 소변기. 뒤로 문이 달린 간이 화장실도 보인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실감한다. 쉽게 찾을 수 있는 화장실이 없어 갑작스런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가 난감할 때가 있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돈을 내는 게 아깝기도 하다. 노상에 설치된 무료 화장실은 적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프랑스 출신 방송인 파비안 씨가 파리를 찾아 길거리에 줄을 지어 설치된 간이 화장실을 모습을 공개해 놀라움을 안긴 바 있다. 길가에 칸막이가 없는 남성 전용 소변기가 설치된 건 낯설었다. 그 옆엔 문이 달린 화장실도 함께 배치됐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한쪽 길가에 줄을 이어 설치된 소변기. 뒤로 문이 달린 간이 화장실도 보인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한쪽 길가에 줄을 이어 설치된 소변기. 뒤로 문이 달린 간이 화장실도 보인다. 채정민 기자

사실 파리는 오래 전부터 노상 방뇨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지역. 실제 기자가 5~6년 전 파리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큰 길가에서도 나무에 대고 소변을 보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샤크레 쾨르 성당 한쪽 구석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엔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 때문에 파리시도 팔을 걷어붙였다. 노상 방뇨와 악취로 악명 높은 도시 이미지를 바꾸려고 파리시는 올림픽을 앞두고 간이 화장실을 집중적으로 설치했다. 지난 4월부터 센강 인근에 간이 화장실 900개와 간이 소변기 500개 등을 배치하는 한편 무료 화장실을 정비하는 등 관련 환경 개선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내부.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내부. 채정민 기자

실제 모습이 궁금했다. 센강 인근을 걸어 돌아다니며 '문제(?)의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 루브르 박물관 한쪽, 센강과 인접한 곳에 줄을 지어 간이 화장실이 설치돼 있었다. 얼핏 봐도 소변기가 20여 개, 문이 달린 변기가 80여 개는 돼 보였다. 소변기는 여러 명이 둘러 서서 볼일을 처리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많이 걸어 아픈 다리도 잠시 쉬게 할 겸, 화장실 건너편 센강 쪽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상황을 지켜봤다. 차와 자전거가 왔다 갔다 하고 , 사람들도 걸어서 옆을 지나가는데 누가 저기서 소변을 볼까 싶었다. 그런데 실제 드문드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드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냥 가서 대뜸 물어보면 짜증을 낼 것 같았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한쪽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여성이 길을 지나가는데 칸막이가 없는 소변기에서 볼일을 보는 남성이 보인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한쪽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여성이 길을 지나가는데 칸막이가 없는 소변기에서 볼일을 보는 남성이 보인다. 채정민 기자

이럴 땐 함께하는 게 상책. 얼굴에 철판을 깔고 20대 동양 남성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서양 남성 사이에 섰다(사실 기자도 좀 급했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은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가기 힘들었고, 달랑 소변을 해결하는 데 돈을 쓰긴 아까웠다). 다들 차림새를 보아 하니 관광객. 동병상련을 느낀 덕분인지, 옆에서 같은 일(?)을 치른 기자가 괜찮느냐고 물으니 말이 잘 안 통해도 스스럼없이 얘기해준다.

서양인 남성은 "이상하긴 해도 급하니 이용했다. 문이 달린 화장실은 오히려 냄새가 더 심하고 더러울 것 같아 못 들어가겠다"면서 "화장실을 찾기 어려운데 차라리 잘 됐다. 사용하지 못하겠다며 친구가 놀리지만 자신도 급하면 나처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양인 남성은 "처음엔 고민을 좀 했다. 그래도 일행과 함께 쓰니 덜 민망하다"며 "파리에 달리 아는 사람도 없으니 빨리 처리하고 떠나면 그만"이라고 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한쪽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칸막이가 없는 소변기에서 볼일을 보는 남성들이 보인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한쪽에 설치된 간이 화장실. 칸막이가 없는 소변기에서 볼일을 보는 남성들이 보인다. 채정민 기자

상대들도 궁금했는지 기자가 했던 질문을 되돌려줬다. "Are you OK(당신은 괜찮소)?" 기자의 대답도 비슷했다. "Sure, no problem. This is Paris(물론, 문제 없소. 여긴 파리잖소)." 그리고 한 마디 더. "긴급 사태니까(It's an emergency)." 다들 마주 보며 멋쩍게 웃었다. 마지막 금상첨화 하나. 엄지손가락을 힘차게 치켜 세웠다(2016 리우 올림픽 당시 익힌 노하우다. 좋든, 애매하든 어떤 상황에서든 이걸로 '만사형통').

지하철이나 공원 등에 공공 화장실이 잘 갖춰져 있다면 이처럼 낯선 풍경을 마주할 일도 없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관광 명소답게 많은 이들이 파리를 찾을 것이다. 그때도 파리가 이런 화장실을 계속 운영할지 궁금하다. 파리에서 채정민 기자 cwolf@imaeil.com

프랑스 파리 도심에 있는 무료 공공 화장실. 줄이 길게 이어진 경우가 많아 제때 사용하기 쉽지는 않다. 오른쪽엔 수도꼭지가 달려 있어 물을 마시는 이들이 있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 도심에 있는 무료 공공 화장실. 줄이 길게 이어진 경우가 많아 제때 사용하기 쉽지는 않다. 오른쪽엔 수도꼭지가 달려 있어 물을 마시는 이들이 있다. 채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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