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 속 호모에스테티쿠스] <40> 욘 포세의 ‘3부작’: 부유하는 것들의 아름다움

이경규 계명대 교수

피오르 사진. 클립아트 제공
피오르 사진. 클립아트 제공
이경규 교수
이경규 교수

욘 포세(Jon Fosse, 1959∼)는 입센 이후 가장 유명한 노르웨이 작가다. 2023년에는 노벨상까지 받아 전 세계에 문명(文名)을 떨쳤다. 포세는 희곡·소설·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엄청난 창작열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문학을 독서로 접하기에는 아무래도 소설이 좋을 것이다. 2014년에 나온 '3부작'이 포세의 대표작 중의 하나다. 세 개의 중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의 이야기"라고 할 만큼 인간 보편적인 관심사를 다루고 있다.

인간 보편적인 주제라면 사랑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다. '3부작'은 아슬레(Asle)와 알리다(Alida)라는 남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배경은 노르웨이 서남부의 베르겐 지역이고 시대는 전화도 안 나오는 것을 보면 19세기쯤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베르겐 대신 벼리빈이라는 옛 명칭이 나온다. 아슬레는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불귀의 객이 된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17세에 천애의 고아가 된 소년이고 동갑인 알리다도 어머니와 언니가 있지만 어머니의 극심한 언니 편애로 고아나 다름없는 소녀다.

이 가련한 남녀는 뒬리야의 어느 농가 결혼식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아버지를 돕던 아슬레와 농가의 하녀로 일하던 알리다가 눈이 맞은 것이다. 알리다는 아슬레의 연주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떠올리며 쉽게 마음을 연다. 아슬레의 부계는 대대로 연주가이듯이 음악은 이 소설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리고 가난한 연인들의 삶은 힘겹고 막막하다. 결혼도 못 한 처지인데 아이까지 가져 사람들의 눈총은 따갑기만 하다. 그럴수록 사랑은 더 강해지고 생존의 의지는 절박해진다.

먹고 살기 위해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는 사이 아슬레는 몇 차례 살인까지 하게 되고 그 죄과로 몇 년 뒤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러나 알리다는 이 모든 일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한다. 어린 아들(시그발)과 살길이 막막해진 알리다는 어느 부유한 집의 가정부로 들어갔다가 집주인과 결혼한다. 그와 딸 한 명(알레스)을 낳아 키운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제1부와 제2부다. 제3부는 많은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이 딸이 어머니 알리다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이 소설을 두고, 결국 수많은 러브스토리 중의 하나일 뿐이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매력은 스토리에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방식과 노르웨이의 독특한 분위기에 있다. 번역으로 25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소설은(홍재웅 譯) 처음부터 끝까지 쉼표만 있고 마침표는 하나도 없다. 마침표가 없으므로 한 문장이라고 할 수도 없다. 소설 전체가 시작도 끝도 없이 굽이쳐 흐르는 물결 같다. 이것은 음악적 원리이기도 하지만 노르웨이 풍경의 특징인 바다와 피오르의 구도와 닮았다. 2만 5천km가 넘는 해안선과 깊고 아득한 물길의 피오르가 태고의 신비를 자아내듯 소설이 그렇다.

소설은 삶과 죽음의 경계도 지워 유동적으로 만든다. 여러 사람이 죽지만 죽음의 현장은 나오지 않는다. 어디론가 사라졌다거나 보이지 않는다는 말로 대신한다. 바다에 나갔다가 사라진 아슬레의 아버지, 벼리빈에서 사라진 산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 시그발, 바닷속으로 걸어간 알리다 등이 그렇다. 심지어 아슬레가 살인죄로 교수형을 당했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인 알리다에게는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는다. 후에 알리다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만 자신은 평생 아슬레의 연인이라고 생각한다. 아슬레는 바다가 되어 자기 곁에 있고 바람이 되어 자기 안에 있다고 느낀다. 어느 날 아슬레가 하늘에 나타나 말한다.

나는 당신 안에도 그리고 아기 시그발 안에도 존재하고 있어, 라고 말하자 알리다는 그래 당신은 존재하고 있어, 앞으로 늘 그럴 거야, 라고 말한다(p. 231)

'3부작'은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이지만 서술의 흐름이 차례대로 이어지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심지어 미래까지 끼어든다. 마지막에는 긴 세월이 지나고 할머니가 된 딸(알레스)이 죽은 어머니 알리다를 만난다. 딸은 어머니를 데리고 바다로 들어간다. 거기서 알리다는 아슬레를 만나 파도와 하나가 된다. 그 모습이 신비하고 몽환적이다.

그런 다음 그녀는 파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모든 추위는 따스함이고, 모든 바다는 아슬레다, 그녀가 더 깊이 걸어가자 뒬리야에서 아슬레가 처음으로 춤판의 연주를 했던,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 날 밤처럼 아슬레가 그녀를 감싼다 세상에는 오직 아슬레와 알리다뿐이다 그리고 파도가 알리다를 넘어온다 그리고 알레스가 파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녀는 계속해서 걷고, 깊이 더 깊이 들어간다 그러자 파도가 그녀의 잿빛 머리를 넘어온다(p. 259)

이것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바다와 음악과 삶과 죽음이 하나의 유동체로서 사랑 속에 뒤엉켜있다. 포세 자신은 주제나 메시지를 표명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에게 노벨상을 준 한림원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 Giving voice to the unsayable" 공로를 높이 샀다. 이것은 음악적 원리로 과연 어떤 색깔의 목소리가 들릴지는 각자 책을 펴고 들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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