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회 배지 들이밀며 쿠팡 새벽배송 막아 세운 야당 의원들…의결 안 거치고 사전 협의도 안해

국민들 "국회 문은 걸어 잠그면서 뭐하는 짓? 육아용품 배송 늦어 진땀"

쿠팡 배송차량들이 대치전이 벌어지는 동안 캠프에 입차 하지 못해 업무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쿠팡 배송차량들이 대치전이 벌어지는 동안 캠프에 입차 하지 못해 업무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퇴근시간이 더 늦어지게 됐다"고 하소연 했다. 사진. 독자제보

야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쿠팡 자회사가 운영하는 물류배송 사업장을 기습방문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기업측과 방문 일정을 조율했거나 소관 상임위원회 의결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 2020년부터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는 '스피드게이트'를 설치하는 등 보안 단속이 철저한 상황에서 물류업계 일각에선 "내로남불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환경노동위원회·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위원단 소속 김주영·박홍배·이용우·박해철 의원 등 야당 의원 9명은 민주노총 택배노조 관계자들과 새벽 3시쯤 경기도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남양주 2캠프 입장을 시도했다. 이날 캠프 정문 앞에선 사업장에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과 쿠팡측의 대치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택배노조측은 사업장 앞에서 미신고 불법 집회를 벌였다. 쿠팡 배송차량들도 대치전이 벌어지는 동안 캠프에 입차하지 못하는 등 차질이 빚어졌다.

쿠팡측은 통행로에 작업자들이 움직이는 등 안전하지 못하다고 맞섰다.

반면 국회의원들은 "문을 닫고 몇 시까지 버틸 거냐" "노동자들이 왜 계속 사망하는지 분류 작업을 파악할 책무가 있다"며 입장을 요구했다. 야당 의원들은 '국회의원이 와서 현장을 점검하겠다는데도 가로막고 되돌려 보내고 있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기자회견을 끝으로 철수했다.

이번 야당 의원들의 쿠팡측 사업장 방문은 환노위 의결을 거치지 않은데다 쿠팡측과 사전 협의되지 않은 것으로 논란이 증폭될 전망이다.

민주당 내 기구로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노총과 정책적 연대를 강조하며 출범한 '노동존중실천단'이 방문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오후 야당 환노위측은 "새벽 로켓배송 준비 현장의 노동환경을 직접 확인하려 한다"며 언론사에 취재 협조 공문을 보냈다.

남양주 캠프는 지난 5월 말 배송기사로 일하다 숨진 정모씨가 근무했던 곳이다. 그동안 야당과 노조는 정씨 사망에 대해 과로사 의혹을 제기하면서 기자회견을 잇따라 열었고 이날 사업장 방문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야당과 택배노조의 입장이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상식에 맞지 않다"는 물류업계 입장과 부딪혔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 캠프에서 철수한 뒤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과 분류노동자 직접고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정씨는 CLS가 업무를 위탁한 배송업체 소속으로 쿠팡이나 CLS와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는 상황이다. CLS측은 "택배 기사의 업무 시간과 업무량은 배송업체와 기사 간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며 "택배 기사의 업무가 과도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 표준계약서에 명시된 주 작업 일수와 작업 시간에 따라 관리해 줄 것을 배송업체에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간 사업장 방문은 상임위 의결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통상적 관례지만, 소관 위원회인 환노위,국토위 논의가 전혀 없었다"며 "해당 사업장에 심각한 불법이 확인돼 국정감사 기간에 진행되는 것이 통상적 관례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했다.

택배사업장은 상시 감독권을 가진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가 관계부처가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시정을 요청하고 있다. 쿠팡측은 야당 의원들의 기습 방문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쿠팡에 택배기사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노조원을 확보하려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이번 방문의 배경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노총 지도부 출신으로 22대 국회에 입성한 박해철 의원(전 한국노총 부위원장), 박홍배 의원(전국금융노조 위원장) 등이 이번 사업장 방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 정치권 인사는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한 제1야당이 특정 노조와 연계해 민간기업과 협의도 없이 사업장을 기습 방문하는 것은 기업들을 일방적으로 죄악시하는 행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물류업계에서도 "국회는 출입을 제한하는 보안조치를 강화하면서 국회의원이면 민간기업 방문은 협의 없는 기습통보로 가능한 것이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회는 지난 2020년 국회의원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의원회관 층별로 스피드게이트를 설치해 외부 출입을 막고, 허가를 받은 인원만 출입을 허용했다. 당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국민의 자유로운 출입을 보장하는 '열린 국회'여야 하지 않나"는 목소리를 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배지를 달고 사기업 문을 마음대로 벌컥 벌컥 열어도 되는 거냐?"며 "말도 안되는 행동으로 기업들을 위축 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선물을 가지고 오는 방문이라도 이런 식이라면 환영 받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벽배송으로 육아용품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던 정모(31)씨는 "급하게 아침에 사용할 것을 주문 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배송이 늦어져 진땀을 흘렸다"며 "육아에 도움을 줄게 아니라면 해라도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출산 저출산 이야기 하는데 출산을 두렵지 않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쿠팡 새벽배송이다"며 "정부에서 쿠팡을 압박할 생각이라면 쿠팡 새벽배송을 뛰어넘는 사회 서비스를 내어놓고 육아를 방해하라"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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