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신화에서 이야기하듯 땅이 어머니라면 바다는 아버지다. 어머니가 포용의 상징이라면 아버지는 태어나 처음 부딧치는 도전의 상징이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나 바다로 향한다. 보금자리가 필요하던 아이의 시기를 지나면 사람은 무한히 펼쳐진 바다로 도전을 떠난다.
땅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발판에 의지해 바다로 향하는 모험.
그래서 경북 포항 앞 바다의 기질은 늘 역동적이고, 하루하루가 눈부시다.
◆2, 3m 보드로 느끼는 바다
작은 보드를 하나 들고 바다를 주시한다. 딱 적당한 높이의 파도가 멀리서 보이면 득달같이 모래사장을 질주한다. 배 밑에 보드를 깔고 미끄러지듯 해안을 벗어나다가 단번에 일어서야 한다. 자꾸 해안가로 떠미는 파도를 이겨내고 사선으로 긴 해안선을 빗겨탄다. 금세 넘어져 코로, 입으로 짠 바닷물을 한껏 들이키기 일상이지만, 발목에 맨 줄을 당겨 다시 판때기를 옆구리에 끼고 바다를 바라본다. 서핑이야말로 맨몸으로 바다에 도전하는 낭만의 스포츠다.
서퍼보드는 크게 롱보드와 숏보드로 구분한다. 7ft(피트·1ft=30.48㎝) 가량을 숏보드, 9ft 이상을 롱보드라 부른다. 중간에 미드렝스나 펀보드 등 더 세세한 구분이 있지만, 가장 대중적인 보드가 위의 두 가지이다. 익숙한 단위로 환산했을 때 2, 3m가 고작인 셈이다. 이 작은 보드에 의지해 바다에 도전하는 스포츠가 바로 서핑이다.
사실 해외에 비해 비교적 파도가 잔잔한 한국에서는 서핑을 즐길 곳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전국을 통틀어 서핑 명소라고 불리는 곳은 있었다. 옛날에는 경북 포항, 부산, 강원 양양, 제주 서귀포가 엎치락뒷치락하며 3대 서핑 명소라 불렸지만 지금은 4곳 모두 각자의 특색으로 매력을 뽐낸다.
포항은 양질의 파도와 수온으로 사시사철 서핑을 즐기기 좋다. 낮은 높이로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는 호주의 그것과 비슷하다. 한겨울에도 수온이 영상 4, 5도 이상을 유지하는 덕분에 오히려 바닷물 속에서 더 따뜻함을 느낀다.
서핑객이 꾸준히 몰려들며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용한리에는 지난 2020년 사업비 20억원을 들여 '용한 서퍼비치'가 조성됐다. 장비보관실·탈의실·샤워실·휴게시설 등이 갖춰진 서퍼들의 편의공간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2016년부터 각종 서핑 관련 대회가 이어지고 있으며, 2018년부터는 국가대표 선발전 중 하나인 메이어스컵도 이 곳에서 치뤄진다.
용한 서퍼비치는 환동해포항서핑클럽이 위탁 운영하고 있으며, 평일과 주말에 나눠 초보자들을 위한 강습을 제공한다. 한 번 등록하면 월 4회를 교육받는다.
특히, 유·청소년의 경우 각 1개월 과정의 입문·초급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전문선수 준비를 위한 심화과정도 배울 수 있다.
용한리 해변이 잦은 파도로 중·상급자 이상 코스라면 월포해수욕장 부근은 상대적으로 입문자용에 걸맞다. 파도의 높이는 어느 정도 있지만 속도가 느긋해 초보자가 도전해 볼만 하다.
2000년 이후 서서히 유행을 타고 포항 바닷가가 서핑 명소로 각광받으며 현재 북구 흥해읍 용한리에서 청하면 월포리로 이어지는 해안가에는 서핑 강습 ·렌탈업체가 15개 이상 자리 잡았다. 본격적으로 배우기 힘들다면 이곳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 잠깐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친척뻘인 관계지만, 윈드서핑과 SUP(스탠드업 패들보딩)도 놓칠 수 없다.
윈드서핑은 요트의 돛과 서핑보드를 결합한 스포츠로 요트보다 빠른 스피드가 강점이다.
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돛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성은 요트보다 못하지만 물에 대한 저항이 적어 극한의 스피드를 선사한다.
최대 시속이 무려 100㎞에 달할 정도이니, 육지의 200㎞와 맞먹는 체감속도가 덮쳐 온다.
SUP 종목은 서핑 보드와 카누의 패들(노)을 결합한 스포츠이다. 보드 위에 일어서서 노를 저어 앞으로 나가는 종목이다. 속도는 느리지만 딩기요트와 윈드서핑에 비해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
◆해양레저스포츠의 끝판왕, 요트
흔히들 하는 오해가 요트는 부자의 스포츠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트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무궁무진하다. 노를 저어가는 전통 보트와 돛으로만 움직이는 배, 호화 유람선까지 알면 알수록 양파같은 얼굴이 가득한 녀석이다.
환동해 중심도시를 꿈꾸는 포항에서는 최근 각종 요트대회 및 교육 프로그램이 이어지며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포항에서는 초보자를 위한 딩기요트 교육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약 3년간 무려 3천명에 가까운 인원이 강습을 받은 것으로 집계된다.
딩기요트란 엔진과 선실없이 오직 돛으로만 질주하는 1~3인용 작은 보트를 말한다.
엔진이 없기에 잔잔한 날에는 바다 위에서 낭만을 즐기고, 바람이 강한 날에는 짜릿한 질주를 즐길 수 있다.
요트에 관한 주요 행사로는 지난 2022년부터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일원에서 '환동해컵 국제요트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3회째인 올해 대회는 9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열릴 예정이다.
지난 대회의 경우 8개국·45개팀·146명이 참가하며 세계적인 선수들의 각축전이 펼쳐졌다. 세부 종목은 ▷킬보트 부문 J70·J24 ▷딩기요트 부문 LDC2000 일반·선수부 등 총 4종목이다. 킬보트는 딩기요트보다 조금 크며 바닥에 킬이라 불리는 무게추 역할의 날개가 달린 요트이다.
지난 6월에는 같은 장소에서 '2024 포항시장배 세일링 챔피언십 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몰려든 동호인 선수단 100여명이 참여한 요트·윈드서핑·카이트보딩·윙포일 세일링 통합대회이다.
무엇보다 올해부터는 동북아시아 최대 규모 요트대회인 '2024년 원동컵(Far East) 국제세일링대회 인쇼어 경기'가 포항에서 첫 개최된다.
올해 7회째를 맞은 원동컵은 중국 칭다오 체육문화유한회사에서 주관하는 국제 행사이다.
중국 칭다오시에서 출발해 한국을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돌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 아무런 동력도 없이, 오직 바람과 돛으로만 움직이는 극한의 항해이다.
원동컵은 3번의 오프쇼어(넓은 바다를 건너는 장거리) 경기와 각 도시에서 개최하는 인쇼어(해안에서 펼치는 단거리) 경기로 구성된다. 이 중 인쇼어 경기가 오는 9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일원에서 펼쳐진다.
포항 경기 유치를 기념해 올해 원동컵에는 포항시 대표팀도 출전하기로 했다. 14명의 선수들이 서로에게 의지한 채 긴 항해를 떠나며 포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해양스포츠 교육의 메카
본격적인 해양레저스포츠의 세계로 뛰어들고 싶다면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에 위치한 '포항해양스포츠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려 보자.
이 곳에서는 체험 프로그램과 교육 프로그램을 병행하며 누구나 쉽게 해양레저스포츠를 접할 수 있도록 꾸려져 있다.
프로그램은 크게 딩기요트·윈드서핑·SUP 세 종목으로 나뉘는데, 먼저 딩기요트는 전문 강사가 조종하는 장비에 체험자가 탑승하는 간접 체험과 전문교육이 구분돼 있다.
SUP 체험은 해양스포츠 종목 중 접근성이 가장 좋은 덕분에 당일 간단한 교육을 수료한 뒤 곧바로 직접 조종까지 가능하다.
교육을 모두 수료하면 '세일링 클럽 육성교실'이라는 별도 프로그램에 참여해 포항시가 보유한 시설과 장비를 이용하고, 체육회 전문 강사진의 안전관리를 받으며 안전한 동호회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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