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사과와 책임 정신

홍진옥 전 인제대 교수

홍진옥 전 인제대 교수
홍진옥 전 인제대 교수

확인은 책임 정신의 일부이다. 미국 전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명패 뒤에 "나는 미주리에서 왔어요"라는 문구가 있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은 말로만은 믿지 못하겠으니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결단이라고 생각했고, 그 결단을 내리기 전에 거듭된 확인을 거친 뒤에 심사숙고하여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 결정을 내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미군의 참전을 지시해 한국의 공산화를 막았다. 그러나 만약 트루먼 대통령이 결정을 번복했다면 한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대한민국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은 상사의 결재는 충분한 확인 과정과 심사숙고를 거친 뒤에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상사의 확인이 이렇게 중요한데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나 국군 최고 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해병대 초동수사 기록 작성자인 박정훈 대령에게 사건 현장에 대한 확인과 현장 정황 파악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경북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사건 당일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현장 부하 6명의 진술은 반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누가 입수 명령을 내렸는지, 왜 윤 대통령이 격노했는지, 왜 윤 대통령 격노 이후 갑자기 경북경찰청에 이첩하려던 해병대 조사 서류를 보류하라고 지시를 내렸는지, 분명하게 밝히거나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국민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사과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상대방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많다고 한다. 그러나 상사의 결정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란 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올바른 상사이다.

채 상병 사건 조사는 사건 관련자 모두에게 현장 확인 진술을 듣고 난 뒤에 수사 기록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한데, 사건 현장에 있었던 현장 부하들의 진술을 확인하는 과정이 빠져 있다. 바로 이런 수사상의 오류에 대해 이 전 장관이 청문회에서 진술하기를 "좀 더 확인해 보기 위해서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하는 데서 드러난다.

두 번째 오류는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서류를 다시 가져왔을 때, 이때라도 사건 진상 재확인을 하기 위해 초동수사 기록 작성자인 박정훈 대령과 사건 당일 입수 명령에 따랐던 당시 예천 지역 수색 부대 책임자, 채 상병 소속 부대장 등 현장 지휘관 6명을 불러서 사건 내용을 확인해야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방부 재검토위원회에 초동수사 기록을 넘길 때 사건 현장 지휘관의 진술 확인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고, 그 결과 현장 지휘관들의 증언과 현장 정황이 경찰청 발표에 반영되지 않았다.

사건 진상 확인을 못 한 것도 이 전 장관이고, 결재 보류 지시를 한 것도 이 전 장관이기 때문에, 이 전 장관은 확인 부족으로 인한 결재 보류 지시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고 사과를 하는 책임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상사의 판단이 부하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인은 상사의 자격 조건이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에서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상사가 확인도 안 하고 '책임 회피'하는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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