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에겐 뭐든 아낌없이 내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했던가. 마음으로 낳아 정성으로 키우는 반려동물도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반려동물의 건강을 위해 다양한 영양제도 거금을 들여 사는 것은 예삿일. 산책을 해야 하지만 찌는 듯한 무더위에 산책하다 발바닥 까질까 걱정돼 개모차를 구입하고 반려동물 전용 펜션으로 휴가를 떠나는 세상이다.
반려동물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반려인들도 한숨이 푹푹 나오는 순간이 있다. 바로 병원비다. 건강이 최우선이라지만 수백, 수천만원이 드는 수술비를 마주하면 의연하게 대처하기가 어렵다. 가족과 다름 없으니 얼마가 들던 거금도 턱턱 내는 게 도리 같아서 애써 괜찮은 척 하지만 터무니 없이 비싼 걸 어떡하나.

◆우리 강아지 다치면 내 통장이 운다
대구 북구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A씨는 며칠 전 자신의 반려견과 동물병원을 찾았다가 예상치 못하게 거금을 지출했다. 밥을 먹지도 못하고 이유 없이 아파하는 강아지를 데리고 갔더니 강아지 자궁에 세균성 감염이 되면 나타나는 질환인 '자궁축농증'이란 진단을 받은 것. 청구된 수술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술비만 약 170만원이 나왔기 때문이다.
A씨는 "똑똑하게 비교해 보면서 병원을 선택하면 좀 더 합리적인 곳에서 진료와 수술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는 그건 그림의 떡"이라며 "견주 입장에서 강아지가 아파하는데 수술을 안 시킬 수도 없고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반려견과 반려묘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들은 반려동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정기적으로 예방접종과 의료검진을 받고 있다. 그러나 A씨의 경우처럼 행여라도 급성으로 병에 걸리거나 갑자기 다치기라도 하면 비싼 병원비를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난감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A씨의 강아지가 앓았다는 자궁축농증은 그나마 가벼운 축에 속했다. 그가 자주 가는 반려견 모임에서 만난 다른 견주는 강아지 무릎 연골 수술에 3천만원이 들어서 타고 다니던 외제차를 팔고 경차를 타고 다닌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했다. 같은 시기 무릎이 안 좋아 병원에 갔는데 4만원에 진료를 받았다는 A씨는 '이게 말이 되냐'며 고개를 저었다.
같은 질병이라도 병원마다 진료비도 천차만별이다. 다섯 살 포메라니언 '윌로'를 키우고 있는 김모(29) 씨는 윌로의 슬개골 수술에 약 400만원의 비용을 지불했다. 양쪽 다리 슬개골과 십자인대까지 건드리는 큰 수술이었다. 김 씨는 슬개골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소개받고 간 것이라 타 병원과 수술비를 비교하진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운이 좋게도 다른 병원보다는 비교적 저렴한 수준이었다.
김 씨는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강아지가 아파하지 않도록 성공적으로 수술하기 위해 선택했다"며 "주변에서 하는 말을 대충 들어보니 반려 가구 사이에서 유명한 병원은 같은 수술을 해도 비용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높다고 전해 들었다"고 했다.


◆펫보험 다양하지만 "도움 안 돼"
큰 수술이 아니라도 정기적이고 소소하게 지출할 수밖에 없는 병원비는 반려가구인들의 걱정거리다. 지난해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행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동물 양육비는 월평균 21만6천원이었는데 이 중 병원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였다.
반려견과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들이 '펫보험'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다. 9살 푸들을 키우고 있는 20대 최모 씨도 펫보험에 가입할까 고민 중이다. 최 씨는 "강아지가 복숭아씨를 삼켜서 응급병원 갔었는데 심야시간이라 초음파, 내시경, 입원 등 다 해서 한번에 200만원이 나오더라"며 "가족이니까 전혀 아깝진 않았지만 이제 나이도 나이인지라 병원 갈 일도 많고 지출이 클 텐데 지금이라도 펫보험을 들어야 하나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펫보험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발표한 '반려동물보험 활성화를 위한 선결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펫보험 가입 건수는 10만9천88건이다. 지난해 7만1천896건에서 51.7% 늘어 전년 대비 성장률이 높다. 반려 가구 확대에 맞춰 지난해 기준 11개 보험사에서 펫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고, 개 뿐만 아니라 고양이 전용 상품도 출시되고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규모는 그리 커지지 않아 활성화됐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앞서 농경연이 밝힌 펫보험 가입 건수를 국내 반려동물 수와 비교하면 더 잘 보인다. 국내 반려동물이 799만마리로 추정되니 가입률은 1.4%에 그치는 정도다.
활성화의 걸림돌은 금액에 비해 낮은 보장 수준, 협소한 보장 범위 등이다. 펫보험료는 대략 적게는 월 4만~5만원, 많게는 8만~9만원선이다. 반려동물은 생후 10년 이상 고령이 되면 병이 많아지는데 10살 이상이면 보험 가입조차 불가능한 상품도 다수다.
보장 범위도 좁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무조건 해야 된다는 중성화도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대표적인 수술이다. 반려묘와 반려견을 모두 키우고 있는 B씨는 자신의 반려견 중성화 수술에 40만원 가량 들었다. 수술 가격은 지역마다, 병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암컷의 경우 두 배 정도 더 비싸다. B씨는 중성화 수술에만 순수하게 200만원 정도의 수술비를 지출한 것.
중성화 수술 외에도 제왕절개, 치과 치료, 예방접종, 점기검진 등 반려동물 치료비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씨는 "펫보험에 가입하려고 여러 상품을 찾아봤지만 매달 들어가는 돈에 비해 정작 필요한 수술에서는 보장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서 포기했다"고 전했다.

◆끝까지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반려인이 반려동물의 마지막까지 무리없이 키울 수 있도록 반려동물 병원비 부담금을 경감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 제도를 펼치는 것은 중요하다. 어느 반려인의 말마따나 비싼 치료비를 감당 못하면 반려동물을 버릴 수도 있고 유기동물이 많아지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펫보험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표준 진료코드나 수가기준이 마련돼있지 않아 병원마다 진료비가 들쑥날쑥한 탓에 예측이 어렵다. 무엇보다 합리적인 보험 설계가 이뤄지기가 힘들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손해율이 높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체감 보장률이 낮아지는 문제로 이어진다.
각종 펫보험을 손쉽게 비교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반려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 보험사 간 상품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최근 카카오페이는 최근 업계 최초로 '펫보험 비교' 서비스를 출시했다.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 3개사 펫보험의 보장 내용과 보험료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성년기부터 건강관리에 공을 들이는 반려인을 위해 스타트업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 출시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일상생활 속에서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반려동물용 '스마트 기기'다. 반려동물이 먹은 사료량을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 사료 그릇이나 배설량 측정이 가능한 스마트 화장실, 위치 추적기와 심박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목걸이 등이다.
정부도 동물병원에 진료비를 게시하도록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수의사법을 개정해 올해 1월부터 동물병원 진료비 사전 게시는 현행 수의사 2인 이상에서 모든 병원으로 확대시켰다.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소비자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진찰, 상담, 입원, 백신접종 5종, X-ray 검사 등 11종에 대해 게시해야 한다.
서울시, 경기도 등 지자체들도 반려동물 복지 강화를 위해 나서는 중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반료동물 치료비로 연간 20만원에서 40만원 정도의 금액을 지원해주거나 반려동물 공공진료센터 등을 개소해 진료비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반려 가구인들은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더 많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반려인은 "비싼 치료비를 감당 못하면 반려동물을 버릴 수도 있다"며 "이런 식으로 유기 동물이 많아지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도 피할 수 없다"고 전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