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료공백 장기화에 1·2차 의료기관들도 '아우성'

큰 병 발견되도 전원시킬 병원 못 찾아…2차의료기관도 "병상 다 찼다"
시민들 "아프지 말아야" 농담섞인 반응 나오기도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로비에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로비에 '의사 선생님, 우리곁을 지켜주세요' 문구가 적힌 소원 쪽지가 부착돼 눈길을 끌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대구 시내 소아청소년과 의원 A원장은 최근 가슴을 쓸어내린 일이 하나 있었다. 한 환아의 혈액검사에서 간기능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 정밀한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가 있는 상급종합병원에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대기자가 너무 많아 바로 검사받을 수 없었다. 자칫 빨리 고칠 수 있는 병을 키우는 것 아닌가 고민하던 A원장은 자신이 아는 다른 개원의들에게 상황을 토로했고 재검사를 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재검사 결과 간기능 수치는 정상으로 나타났다.

A원장은 "환아 부모들에게 '만약 의료공백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걱정을 훨씬 짧게 했을텐데'라는 미안함이 들었다"며 "운이 좋아서 걱정을 덜어드리긴 했지만 동네 의원에서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의료진들도 매우 당황할테고 치료시기를 놓칠 가능성도 높아질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전공의 사직과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 상황이 반 년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동네 의원'으로 대표되는 1차 의료기관과 '종합병원'으로 대표되는 2차 의료기관의 고민 또한 깊어지고 있다. 이들 병·의원은 상급종합병원에 가야 할 심각한 질병으로 진단한 환자를 보낼 병원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또 종합병원들은 밀려오는 환자로 인해 병상이 모자랄 지경이다.

의료공백 상황이 길어지면서 동네 의원들이 하는 가장 큰 걱정은 의원의 진료 범위를 넘어서는 질병이 발견됐을 때 보낼 수 있는 상급 의료기관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상급종합병원은 초진 환자가 오면 접수를 받는다 하더라도 진료를 언제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다.

2차 의료기관인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으로 보내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미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환자들로 가득차있기 때문이다. 대구 시내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병상가동률이 100%가 된 지는 오래됐고 입원실이 없어 수술이나 치료 이후에도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응급수술에 밀려 예약된 수술이 밀리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노년층을 중심으로 의료기관을 찾는 발걸음이 줄어들었다는 게 의료계 현장의 목소리다.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디를 가도 규모가 큰 병원은 환자로 가득찼고, 대기도 길어지는 중"이라며 "그만큼 환자의 불편함이 늘어나는 상황이라 노년층 환자를 중심으로 '요새는 병원가면 치료 못 받기 때문에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고 말했다.

병·의원 원장들은 의료공백이 어느정도 극복돼도 의료공백 이전과 같은 의료역량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대구 대학병원 교수 출신 개원의는 "전문의 중심 병원이 돼서 의료진이 줄어들면 결국 기다려야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문제 아니냐"며 "설령 의료공백이 극복된다 해도 예전처럼 '큰 병'이 발견됐을 때 바로 치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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