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그는 13살 터울 나는 큰 형의 손을 잡고 처음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큰 형의 서울대 스승이었던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소장을 만난 것도 그 때다. 앞으로 뭐가 되고 싶냐는 최 소장의 질문에 그는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10년 가량이 흐른 대학교 2학년 때, 그는 다시 최 소장 앞에 앉았다.
"사학과에 진학하고 군대도 다녀왔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때였어요. 소장님을 다시 찾아뵀는데 빛이 켜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승부를 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으로 돌아온 지 3일 만에 짐 보따리를 싸서 간송에 들어갔습니다."
1991년, 백인산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준비단장이 30여 년간 간송미술관에 몸담게 된 첫 시작이었다. 그는 앞서 40년간 간송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탐구해온 최 소장과 미술관 내 연구소에서 동고동락하며 한국 미술연구의 초석을 탄탄히 쌓아왔다.
말이 미술관이고 연구지, 간송사(寺)에서의 수도생활이었다. 지금도 일명 '간송학당'은 종교적 수행 못지않은 엄격한 학문 수행을 해온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큰 스님의 시자처럼 삼시세끼 밥하고 빨래하며 같이 공부했습니다. 단순히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닌 실천하는 공부를 할 것을 강조하셨는데, 나무 하나 못 키우고, 자기 먹을 밥 하나 못 짓는 사람이 세상 이치를 어떻게 알겠냐는거죠. 무엇보다 공부란 건 세상을 이롭게 해야한다고 말씀하셨죠."
무엇보다 그가 연구에 빠져들게 된 가장 큰 매력은,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 것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컸던 '간송 전형필' 인물 그 자체였다.
그는 "간송이 문화유산을 지켜낸 컬렉터로 잘 알려져있지만, 막연히 옛 것을 파고드는 조선시대 선비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며 "한문과 시·서·화부터 영어, 일본어까지 섭렵한, 신·구 학문을 다 아우른 최고의 엘리트 중 한 명이었다. 또 음악과 스포츠 등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문화유산의 진위와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도 수준급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예술가 후원에 앞장섰던 간송의 면모를 강조했다. 한국전쟁 이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예술가와 학자들에게 생활비를 보태줬던 것. 간송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이후 빚쟁이들이 찾아왔는데, 그제서야 주변인들은 간송이 자신만 바라보고 예술 활동을 하던 이들을 두고볼 수 없어 빚까지 내 도와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흩어져버린 문화유산들을 거금으로 다시 사들여야 해 재정 압박이 있었을텐데도, 궁색한 내색을 한번도 비치지 않고 오히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학회 결성과 동인지 발간을 하며 재정적인 몫을 다 감당하셨죠. 일반적인 컬렉터와는 여러 측면에서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간송에게는 '거짓이 없는 역사 자료인 문화유산을 통해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증명해보이겠다'는 신념이 확실했다.
백 준비단장은 "미술품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지표다. 좋은 문화예술이 꽃피었다는 것은 정치, 사회, 경제 등의 저변이 탄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결코 다른 나라에 뒤쳐지지 않는 역사와 문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간송 선생은 문화유산의 멸실이 단순히 아름다운 미술품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역사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는 것이라 생각하셨어요. 문화유산을 잘 지켜내는 것은 곧 선조들의 역사와 전통을 후손들에게 온전히 전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고금(古今)의 다리 역할을 자처했던 거죠."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준 간송의 삶과, 간송이 남긴 것들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했다.
그는 "경제성을 좇을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K-컬처와 달리, 문화유산은 우리의 분명한 정체성과 차별성을 보여주는 신선하고 강력한 의외의 무기"라며 "문화유산은 우리나라가 진정한 문화 강국임을 실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원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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