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무대에서 항일 독립운동 스토리나 독립운동가들의 일대기를 무대화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 일이다. 근대역사에서 독립운동사를 모티브로 하는 작품들은 대체로 알려진 소재로 하거나, 항일 독립운동의 이면을 연극적인 상상으로 재현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연극무대로 재현되는 독립운동사(史)는 역사적인 그날의 사건을 환기하는 정도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무대로 재현하는 정도로 머문다면 연극적으로 역사적인 파동은 적을 법도 한데, 작가와 연출의 상상으로 무대에서 발효되는 100년 전 독립운동의 사건들이 역동적으로 재현되어 그날의 부산 역사를 소환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부산에서 부는 해학과 풍자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2011년 창단된 극단 해풍에 의해 발굴되고 있는 백산 프로젝트<진심>(이상우 작, 연출, 부산북구문화예술회관 대극장)은 경찰서장 하시모토 슈헤이(橋本秀平)를 처단하기 위해 부산경찰서를 폭파한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항일 독립 의열단으로 활동한 박재혁 의사(義士)와 백산 안희제 선생 시공간의 역사적 맥락을 '백산상회'를 모티브로 해 연극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백산 안희제, 박재혁 독립운동가 외에도 구포 농민의 아들 손진석을 허구적으로 설정해 그날의 뜨거운 구국(救國)의 현장을 소환하고 있다.
◆ 백산 프로젝트 <진심>의 역사적 그날의 재현
백산프로젝트<진심>은 공연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 그날의 역사에 마주한 독립운동가로 분한 인물들의 처절한 애국의 진심을 시공간으로 담고 있다. 그만큼 백산 프로젝트의 진심은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을 한정해 극화하기보다는 백산 안희재, 의열단원 박재혁, 구포 농민의 아들 진석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시공간으로 소환해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적 시간의 현장을 작가적 상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극 중 무대는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백산상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대는 항일 독립운동가 백산(白山) 안희제 선생(1885~1943)이 독립 자금을 지원하던 '백산상회'가 목조 형태 분위기로 재현되어 있다. 우측으로는 계단 구조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공간이 보이고 가상의 장소이다. 좌측으로 백산상회 출입문으로 보이는데 그 입구 위로는 일장기가 달려있다. 뒤쪽으로는 백산의 집무실로 설정된 무대 구조로 연극 <진심>의 시간적 시점을 가늠할 수 있도록 설정하고 있다. <진심>의 서사는 프롤로그와 에피소드를 배열해 총 4장으로 구성했다. 암전 상태에 총소리가 세 발 정도로 울리고 일본 경찰 감시를 피하려고 구포의 독립운동가 임봉래( 박경훈 분)와 손진석의 동지인 백인봉(강우혁 분)이 진석을 구포를 떠나보내기 위해 기차를 태우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사가 들리면서 극은 시작된다. 특정할 수 있는 사건은 없다. 3,1만 세 운동 이후 부산 구포 지역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긴박한 그날의 역사적 시간으로 추측할 수 있다.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 하루 전인 9월 13일을 다루고 있는 1장부터 이튿날 사건이 일어난 4장까지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의 시간과 마지막 장면에서는 박재혁의 죽음과 독립운동가가 되어가는 진석, 고국의 독립을 볼 수 없었던 백산의 죽음까지를 담아내고 있으나 시점은 3,1 만세 운동 이듬해인 1920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장은 유카타를 입은 백산과 구포 진석(양민우 분)과의 만남으로 백산에 의해 항일 독립운동가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일본 상인들과 거래하는 백산을 친일파로 오인해 총을 겨누고, 절제할 수 없는 항일 독립에 뜨거운 감정만이 흐르는 진석에게 백산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참는 법을 알려준다. 진석은 대동청년단으로 활동한 길령(김세친 분)이 상해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전달하기 위해 상해로 가는 배에 무사히 올라탈 수 있도록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진석의 독립운동 열망은 고향 구포의 선조 땅이 친일파들에 의해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소유권이 넘어가는 시간 속에서 항일운동의 열망은 커져간다.
2장은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 하루 전에 9월 13일의 시간이다. 중국인으로 위장해 백산상회에 온 박재혁을 통해 의열단 동지들이 밀정들한테 잡혀간 이야기와 하시모토 거사를 위한 항일 독립운동을 해야만 하는 절박한 진심의 이야기들이 꺼내진다. 이 장면에서 박재혁 의사가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를 향해 폭탄을 투하하기 전에 " 하시모토 너는 의열단의 원수이다. 의열단과 우리 국민들은 내 나라를 침략한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유언 같았던 말을 백산 앞에서 해 보이는 장면을 작가적 상상으로 표현된다. 백산상회를 근거지로 박재혁과 안희제, 손진석 등이 연결되는 역사적 사실은 없다. 그러나 작가는 두 사람이 부산을 대표하는 항일 독립운동가라는 점, 구포 지역의 3, 1운동과 지역 시민들의 독립운동 정신이 시간적 배경이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극 중 진석의 설정을 통해 시민이 독립운동가가 되어가는 절박한 구국에 대한 진심을 담아내고 있다. 작가적 설정이 독립운동의 역사성을 감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장면을 연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단 해풍의 역사 발굴 프로젝트가 진심으로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 백산 안희제, 독립운동가 박재혁 그리고 구포의 아들 손진석
이어서는 백산이 하시모토 슈헤이(橋本秀平) 부산경찰서장을 향하는 폭파가 성공할 수 있도록 막후에서 노련한 계획을 세우는 백산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장면이 전개된다. 백산은 일본 상인 마코토(최민 분)를 통해 위장계획을 세운다. 일본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요시모토(고명현 분)가 하시모토 경찰서장한테 샤오샹웨라는 고서 상인이 올 것이라고 정보를 흘린다. 고서적을 좋아하는 정보를 입수해 중국상인으로 위장한 후 부산경찰서 폭파를 시도한 역사적 사실을 극중장면으로 맥락화 했다. 이러한 백산의 진심이 드러날 때쯤 진석도 목숨을 바칠 정도로 항일 독립운동가의 열망이 커져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진석의 변화를 3장에서 재혁과 진석(죽임과 죽음)으로 연극적 상상으로 다루고 있는 두 인물의 독립운동에 대한 대립 구도가 흥미로운데, 부산경찰서 폭파 하루 전 백산과 폭파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백산상회 직원으로 대동청년단으로 활동한 길령과 하시모토 처단을 위한 실행을 연습하는 장면을 극중극으로 표현한 것이 그렇다.
4장부터는 부산경찰서 폭파 당일의 시점인데. 무대는 부산경찰서 폭파 장면을 소리와 길령을 통해서 성공 소식을 전달한다. 일본 상인(요시모토, 마코토)을 매수해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파를 성공시킨 백산은 진석을 향해 "군대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장만 해서는 안 된다. (중략) 우리는 세계 곳곳으로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어서 싸워나가게 될 거다. 니가 만주로 가거든 거기가 대한민국이다." 부산경찰서 미완의 폭파 뒤, 구포의 진석이 백산과 박재혁을 통해서 고국의 독립을 위해 진심으로 항일 독립운동가로 성장해 가는 것으로 극은 정리된다. 진석의 설정은 동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애국'의 메시지이다. 마지막 장면은 일본 상인으로 위장해 살았던 마코토인 한국명 정진과 백산 안희제의 대화다. 하시모토가 폭파 당일 죽지는 못했어도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며, 박재혁 의사가 사형 집행되기 전 보름 동안 물도 마시지 않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역사적 사실들이 대화를 통해 밝혀진다. 죽음을 암시하듯 백산이 무대에 혼자 있는 것으로 처리되고 마지막 장면은 백산상회 내부 일장기는 태극기로 변주된다.
◆ 역사성의 재현과 오류
부산항일 독립운동 역사인 백산 안희제 선생과 하시모토를 슈헤이(橋本秀平) 부산경찰서장에게 폭탄을 투척한 뒤 사형선고 후 단식(斷食)으로 옥사를 하신 항일독립 의열단원이었던 부산의 독립운동가 박재혁 선생의 특정한 사건과 시점을 모티브로 한 극단 해풍의 백산 프로젝트<진심> 은 극을 사건 중심으로 확장하는 구조보다는 부산 독립운동의 역사적 진심을 담아내려는 서사성이 강조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가적 시각으로는 역사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의 활동과 특정 사건을 허구와 병치해 재현하는 것보다는 극 중 인물 손진석을 설정해 항일 독립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진심의 내면들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도에서 백산 프로젝트의 <진심>은 진석이 독립운동가로 변화되는 시간이 중심적으로 전달된다. 이러한 점에서는 백산 프로젝트가 부산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그 시대를 조명함으로써 박제된 역사를 현재성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백산과 박재혁 그리고 부산 구포의 뜨거운 애국성을 환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극단 해풍이 부산북구문화회괸 상주단체로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과 실재인물을 극화해 재현하는 것은 오류가 따른다.
독립운동의 사건이나 실제 인물들은 그 역사적 행동에 진심이 내포되어 있다. 연극은 이러한 역사적 행동을 극적으로 부각하고 형상화하는 것이다. 여기에 작가의 허구성이 실제 역사적 사건들로 결합하여 현실로 착시(錯視)할 정도로 극적인 구조를 드러내면 연극은 생동하는 무대로 표현된다. 이런 면에서 진석을 중심으로 애국에 대한 진심으로 독립운동가가 되어가는 내면의 변화에는 공감을 하나 작품은 이 지점에서 극적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설명적인 장면으로만 펼쳐 보였다. 작품이 극 중 인물들의 독립운동 과정의 진심을 드러내는 서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그렇다. 하시모토를 거사하기 위한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도, 백산 안희제 선생의 활약도, 진석의 진심도 입체적인 무대로 파동 시키지는 못한 아쉬움이 있다. 두 번째는 배우들의 역할성이다.
극이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배우들의 지역 말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지역 말이든, 표준어든 무대 언어는 극중인물로 발화되어야 한다. 인물로 정제되지 못한 배우의 언어가 대사의 감정에만 의존된다면 장면으로 모이는 서사의 극적인 힘은 무대에서 나약해질 수 밖에 없고 장면과 장면의 리듬들이 균형적으로 구조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배우는 절제가 중요하고 한마디의 말에도 인물로 분해야 한다. 특히 백산과 주변 인물들의 말투와 진석의 장면들이 그렇다. 작가와 연출의 시선이 분리되지 못해 무대에서 불협화음으로 발생되는 오류다.
역사의 인물을 동시대로 소환할 때는 평면적 서사라도 연출적으로 미학적인 극적 구조로 장면을 연결해야 한다. 서사를 무대로 풀어내는 연출의 시선으로 극을 촘촘히 쌓아 올리지 못하면 시공간의 특징만 부각될 수 있는 평면적인 재현의 오류를 보일 수 있다. 작가적 시선과 연출적인 시각 사이에서 객관적인 명확한 선 긋기가 필요한 것이다. 극단 해풍의 백산 프로젝트<진심> 이 부산 항일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을 소환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그날의 진심을 재현하고자 하는 창작자들의 노력에는 충분히 공감을 하나 연극적으로 정보전달만 한 측면이 있다. 극 중 인물들이 진심의 애국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무대로 파동 되는 감각적인 연출성을 드러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극단 해풍이 지역 극단으로 지역 역사 소재를 상주단체로, 활발하게 레파토리로 발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서사와 극적 장치들의 오류를 냉정하게 분석해 작가적인 설정에 함몰된 것은 아닌지 날카로운 진단이 필요해 보인다. 역사 재현에 있어 <진심>에 담긴 오류들을 발견해 좀 더 완성된 무대를 부산 극단 해풍을 통해 기대한다. 연극은 의미로만 전달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길 바란다.
◆ 두 연극 배우의 <라스트 씨어터 맨>
<라스트 씨어터 맨>( 작, 정상미 연출 김경빈, 대학로 드림시어터, 극단 은행나무)은 연극배우를 위한 작품이다. '다시, 느티나무' 소극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폐관 극장의 '라스트 씨어터 맨'(Last Theater Man)로 분한 두명의 배우가 극 중 인물들이다. 60대 초반의 극중인물 성종(박상종 분)은 30년 전 느티나무 극장 개관 공연 오셀로에서 이아고 역을 한 후 대표 작품이 없어도 연극을 섬기며 살아가는 배우다. 건물 경비를 하는 70대의 영식(이영석 분)도 오셀로 작품 대사만큼은 줄줄이 기억해 내는 것을 보면 연극으로 살아온 인생이다. 무명 배우 성종은 무대 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사무엘베게트의'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습하는 장면도 스쳐 가고 도둑으로 오인한 영석과 소동을 벌이는 장면에서 웃음이 짠하게 터진다. 연극을 하던 선배의 죽음, 무명 배우로 살아온 성종의 시시콜콜한 과거 시절 추억들이 쌓여갈 때쯤 영식의 제안으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극중극까지 더해진다. 돌아보면. 이 극 중 배경이 되고 있는 '다시, 느티나무' 극장은 1994년 극단 은행나무을 창단하면서 노란 매표소 지붕의 은행나무 소극장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라스트 씨어터 맨>은 연극현장의 현실을 두 배우의 연기로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공연이다.
무대는 조명 설치 작업을 위한 사다리도 보이고, 그 사이로 의상과 소품, 대소 도구들로 뒤엉켜 있다. 극장에서 공연을 앞두고 셋업 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성종이 오셀로를 공연하던 30년 전이나 경비로 극장을 지켜온 영석이 60, 70대를 넘겨도 연극 제작 환경은 달라질 수 없는 현실 그대로다. 연출은 첫 장면부터 <라스트 씨어터 맨> 공연을 하루 앞두고 있는 극장 분위기이다. 30대 초반의 서아( 김서아 분)와 용식( 김용식 분)을 통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들이 그려진다. 용식은 음향 오퍼를 왕복하고 서아는 분무기로 극장 내부로 분사시키며 먼지로 쌓인 소품들을 정리하면서 연극배우 인생의 신세 한탄들이 쏟아진다.
극단에 들어왔어도 배우로 무대에 서는 날보다 조연출, 조명, 음향, 의상까지 챙겨가며 막내 일을 해야 하는 웃픈 두 사람의 대화가 섞이고 실제 연출을 호명하며 "연출한다는 놈은 책도 안 읽고 대본도 안 봐"라는 대사에 객석을 키득거리게 만든다. 성종이 무대 제작팀 알바를 하기위해 소품들을 들고 극장으로 들어올 때쯤 <라스트 씨어터 맨>의 등장으로 극은 시작된다. 두 사람은 인터넷 검색을 하고는 "대선배인 선생님도 알바 하신다. 우리의 미래가 맞다"라며 연극배우 인생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향하는 것은 연습 후에 김치 쫄면을 먹으면서 연극을 하기 위해 달려가는 알바의 현장이다.
무명 배우 성종의 무대 팀 아르바이트는 현실의 삶보다는 연극배우의 인생이 되어준 마지막 무대를 지키기 위한 간절함이다. 소극장이 탕후루 체인점으로 바뀌고, 상업자본에 극장이 사라져도 성종이 할 수 있는 것은 연극 무대를 지키는 일이다. 경비원 영석과 성종은 좀도둑으로 오해해 분장실로, 무대 소품 뒤로 몸을 숨기는 해프닝이 일어나면서도 두 사람 인생과 삶은 연극으로 맞닿아져 무대는 두 사람의 추억 장소로 변주된다. 기억은 30년 전 개관 공연을 하던 오셀로의 시절로 되돌아간다. "이 극장도 지난 30년 동안 다섯 번이나 바뀌었는데, 최근에 건물주가 바뀌면서 극장이랑 재계약 할 의사가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대요. 이 비싼 대학로 땅에 허름한 소극장을 끼고 있어봤자 손해만 본다고 생각한 거겠죠." 소극장 건물에서 극장을 지켜온 영식이 할 수 있는 것은 자본에 의해 사라져가고 맛집, 페스트푸드점, 빙설과 커피숍으로 공간이 활용되어 건물 주인들의 월세 수입만 늘어가는 소극장이 없는 건물들을 지키는 것뿐이다.
◆ 다시, 느티나무극장
그럼에도, 성종한테 '다시, 느티나무'극장은 배우로 평생을 살아가게 하는 젊은 시절 배우의 꿈을 키워낸 곳이면서도 무명 배우로 절절한 사연이 많은 무대다. '느티나무 극장'이 오래전에 사라지고 연극을 섬기고 살았던 형을 추모하기 위해 '다시 느티나무' 극장을 10년 전에 다시 세웠으면서도 사라지는 것은 관객들의 관심과 배우들의 추억들이다. "극장이 30년이나 자리를 지켜왔지만, 이젠 관심도 없고…. 극장이랑 같이 여러 사람들의 추억도 사라지네요. 극장 없어지고 탕후룩이라니…."두 사람 대화로 쏟아질 때쯤 1991년 학전소극장을 개관한 뒤 개관 33주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학전 소극장이 스쳐 간다. 돈을 몽땅 털어 넣고 극장을 세우고 연극인들한테 최소한의 대관료로 대관을 해줘도 그 대관료를 떼어먹고 달아나도 연극만 하고 살아온 배우 인생은 영석의 대사처럼 " 난 극장 특유의 케케묵은 냄새하고 서늘한 공기가 좋아요.(중략) 여기서 공연된 수백 편의 연극은 관객들의 가슴에 오롯이 남아 있을 거예요…. 그 믿음으로 연극을 하는 거잖아요. "영석도 30년을 경비로 극장을 지켜오며 연극인이 된 지 오래다. 60대에 초등학교 다니던 딸이 있어도 연극을 하면서 살아가는 행복한 성종이고, 영식의 소리로 전달되는 30년 전 그때의 오셀로 대사를 외우는 영식은 영락없이 주인공을 하던 배우이다.
오셀로에서 이아고를 했던 성종의 추억이 무대로 쌓여 갈 때쯤, 이후 작품에서 움직이는 나무 역할을 하면서도 공로상을 탄 얘기며, 그저 그런 역할만 들어오는 무명의 연극배우로 살아온 지난날의 추억도, 현재의 삶도 힘들 법도 한데 성종은 60대에 대사 외우는 속도가 예전만 못해도 데스데모나의 아버지인 부라반쇼 역할을 맡았다며 후배들한테 어설픈 모습 안 보이려고 죽기 살기로 연습하는데도 대사를 까먹는 악몽을 꾸는 천상 연극배우 성종이다. 무대는 가스버너, 냄비, 생수가 올려지고 라면을 먹어가면서도 유명 배우는 되지 않았어도 극장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은 선배하고 한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약속을 지키고 싶은 성종의 마음 빛들이 들추어진다. 그런 만큼, <라스트 씨어터 맨>의 하이라이트는 에스트라공으로 분한 영석과 블라디미르 성종이 극중극으로 표현되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장면으로 <라스트 시어터 맨>의 마지막 연기가 진행된다. 두 사람의 기다림은 연극배우의 희망으로 직진하는 연극인의 인생 아닐까.
영석의 존재는 은행나무 극장처럼 느티나무 극장을 만들고 사라져간 성종의 선배이면서도 여전히 허구로 지어지는 환영의 세계를 다양한 극중인물의 삶으로 무대를 지키며 살아가는 연극배우들이다. <라스트 씨어터 맨>은 은행나무 극장을 모티브로 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두 배우를 위한 연극이면서도 대한민국 연극배우들을 위한 공연이다. 이 작품은 텍스트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극 중 장면의 의미를 애써 부여하는 방정식도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대학로 연극무대를 지켜온 개성 있는 이영석, 박상종 두 배우의 존재감만으로도, <라스트 씨어터 맨>은 80분을 연기로 텍스트를 채우는 연극이다. 연출은 특별하게 극 중 장면을 가공하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려고 한 점이 좋았고, 용식과 서아의 장면도 날것의 힘이 있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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