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길거리 음식인 '튀김'. 떡볶이 친구라는 별명을 가진 우리나라 튀김과 달리 일본에서는 튀김을 스아게, 가라아게, 덴푸라, 카츠 등으로 튀김 종류를 세분화해 두었다. 그중에서도 고급 음식으로 분류되는 덴푸라는 얇은 반죽 속 식재료 자체의 수분을 이용해 튀겨내어 향과 맛을 살려내는 요리다.
재료마다 튀기는 방식과 온도가 달라 고급 스킬을 요해 튀김 장인은 스시 장인보다 한 수 위의 레벨로 여긴다. 일본에서는 1인당 50~80만원의 오마카세 업장이 있을 정도.
인터뷰를 위해 지난 1일에 찾은 대구 수성구 소재 '텐푸라 프로젝트'는 오픈을 앞두고 식자재 실험(테이스팅)이 한창이었다. 이날은 북해도에서 공수해 온 가리비가 매장에 도착한 날이었다. 가리비를 정성껏 튀긴 장창원 대표는 제충모 소믈리에에게 가리비 튀김을 건네며 기대에 찬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와! 너무 맛있는데?" 소믈리에의 말에 장 대표의 입꼬리가 그제야 올라갔다.
재료마다 원료의 맛이 극대화되는 온도와 시간이 있기 때문에 연구는 필수다. 소금에 곁들여 먹는 게 좋은지, 간장소스에 찍어 먹는 게 더 맛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 달려 온 재료라도 튀겼을 때 맛 없으면 전량 폐기하는 게 이곳의 원칙이다. 재료 연구와 조리법 연구는 두 대표가 매일 같이 하는 일이다.
◆덴푸라, 대구에 착륙하다
고추장, 된장 등 비슷한 양념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재료마다 조리법마다 다르게 접근한다. 일본을 '미식의 나라'라고 흔히들 부르는 것처럼 일식은 세밀하고 섬세하다. 일본 음식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장창원 대표와 제충모 소믈리에는 이러한 일식의 장점을 한국에 소개해 보고 싶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대구 유일 덴푸라 오마카세인 '텐푸라 프로젝트'다.
업장을 내기까지 일본에서 15년을 유학한 제 소믈리에의 역할이 컸다. 지인을 통해 일본 쉐프들을 소개받으면서 사업성 있는 일본 음식을 연구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일식을 전공한 전문 쉐프가 아니어서 자신의 주종목으로 업장을 연 게 아니라 일본 음식 문화를 소개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에 음식 종류를 정한 케이스"라며 "이를 위해 제충모 소믈리에와 일본에 직접 가서 각 요리에 정평이 난 쉐프들을 찾아나섰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해 오픈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계속 요식업에 몸담고 있었다. 장 대표는 대구에서 나고 자란 대구 토박이고 제 소믈리에는 부산에서 와인바를 운영하다가 대구로 거취를 옮긴 케이스다. 둘은 대구의 한 한우 오마카세 일식집에서 일을 하다가 만났다. 대화를 하다 보니 음식에 대한 생각, 사업에 대한 방향성도 비슷했다.
일식으로 요식업을 시작하고 싶었던 두 사람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라멘이었다. 레시피까지 정했었단다. 일본 유명 라멘 대회인 '라멘 오브 더 이어'에서 2등을 한 라멘 레시피였다. 스키야끼를 생각하기도 했다. 스키야끼도 굽는 방식의 관서식이 있고 삶는 방식의 관동식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희귀한 관서식 스키야끼를 들여오려고 시도했다.
덴푸라도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음식이다. 이곳은 덴푸라를 오마카세 형태로 내보이고 있지만 텐동 위에 올라가는 것도 덴푸라다. 장 대표는 텐동을 먹다가 위에 올라간 튀김을 먹고 '이거다' 싶어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이때까지 먹었던 튀김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너무 맛있어서 충격이었고 감동을 받았다. 무조건 이것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할까. 이후 일본에 가서 덴푸라 쉐프에게 조리법, 소스 만드는 법 등을 배웠다"고 했다.
◆'신발 튀겨도 맛있다'고?…오해!
신선한 재료로 기술적으로 잘 튀겨낸 튀김 요리는 재료의 맛을 극대화한다. 덴푸라는 튀김 요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찜 요리에 가깝다. 재료마다 저마다의 수분을 머금고 있는데, 조리하는 과정에서 이 수분이 최대한 빠져나가지 않도록 가두는 게 튀김의 역할이다.
제 소믈리에는 "스테이크도 굽기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겉면을 구우면서 고기 육즙을 가둔다. 입안에서 육즙이 터지는 맛으로 먹지 않나"라며 "덴푸라도 같은 방식이다. 덴푸라는 튀김의 상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튀김이 재료가 가진 수분을 얼마나 잘 가뒀나가 관건이다. 원료의 맛에 집중한다"고 강조했다.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데 여기 음식도 그냥 막 튀겨도 맛있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단호하게 'NO'를 외쳤다. 제 소믈리에는 "신발을 튀기면 당연히 맛은 없다. 음식도 튀기기만 한다고 맛있는 건 아니다. 튀김이라는 방식으로 조리했을 때 음식 맛이 살아나는 재료가 있다. 그 재료로 덴푸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바닷장어를 민물장어로 대체했다가 낭패본 일도 있었다. 지난해 태풍으로 바닷장어 품귀 현상이 일어나자 두 사람은 바닷장어를 메뉴에서 뺐지만 손님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탓에 다른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두 사람의 눈에 든 것은 매장 바로 옆에 있는 민물장어집. 그 즉시 민물장어집에 가서 민물장어를 공수해 튀기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실패.
장 대표는 "민물장어는 바다장어보다 껍질이 두껍다. 민물장어를 튀기니 두꺼운 껍질 때문에 튀김이 딱딱해지고 비린 맛이 올라오더라"며 "민물장어는 튀겨먹는 것보다 구워 먹는 것이 더 맛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장어가 같은 장어 같아도 튀겨야 맛있는 게 있고 구워야 맛있는 게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던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덴푸라는 정석이라는 것이 없는 음식이다. 재료와 소스마다 맛이 다르고 어떻게 튀기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기름 배합도 고려해야 한다. 기름의 성격도 알아야 한다. 참기름을 많이 쓰면 발화점이 낮아지고 기름 산화가 빨리 될 수도 있다. 기름의 온도는 오로지 셰프의 감으로 조절한다. 온도에 따라 튀김의 맛이 세심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시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이용해 기름의 적정 온도를 유지하며 튀겨낸다.
하나하나 손이 미치는 데다가 변수도 많아 다루기가 어려운 덴푸라를 소비자가 찾는 이유는 미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덴푸라의 장점은 식재료의 종류가 다양하고 퀄리티도 높다는 것이다. 덴푸라 오마카세는 채소, 해산물, 육류를 가리지 않는다. 활용할 수 있는 식재료 중에서도 가리비 관자, 캐비어, 잎새버섯,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등 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재료가 많다.
◆'덴푸라'에 그치지 않을 도전
현재 대구경북에 튀김 오마카세를 하는 업장으로는 텐푸라 프로젝트가 유일하다. 장 대표는 "대구는 아주 생소한 음식은 살아남기 힘들어서 운영하기가 까다롭다"며 "요식업을 하는 지인들에게 늘 듣는 말이 '대구에서 덴푸라 하면 힘들 텐데'하는 걱정들"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튀김은 떡볶이와 함께 먹는 분식 요리라는 선입견이 강해서 덴푸라 오마카세를 도전하기 어려워하는 영향도 있다.
요즘은 SNS가 발달했고 새로운 것을 찾는 수요가 늘어났다. 이미 서울에서는 덴푸라 오마카세 인기가 좋다. 1년 전부터 예약해야 먹을 수 있는 업장도 있다. 그런 흐름이 대구에도 미칠 것이라고 두 사람은 기대하고 있다. 두 대표는 그런 날을 위한 차별화 전략도 갖췄다고 자부했다. 바로 와인과의 페어링이다.
음(Drink)과 식(Food)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텐푸라 프로젝트에는 7년 경력의 제충모 소믈리에가 늘 상주한다. 덴푸라와 곁들이는 와인도 이곳의 주력 메뉴라는 뜻이다. 제 소믈리에는 "삼겹살 하면 소주, 피자를 먹을 땐 맥주를 마시는 게 공식인 것처럼 덴푸라는 와인과의 조합이 정석이다. 그날에 따라 다른 재료로 덴푸라를 제공하는데 거기에 맞는 와인을 곁들이면 풍미가 살아난다. 오픈에 앞서 재료를 미리 튀겨보고 먹는 테이스팅을 한 후 와인과 페어링이 되는지를 늘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그리는 목표는 덴푸라에 그치지 않는다. '프로젝트'라는 이름에 그 비전이 있다. 덴푸라 이외에도 한국에는 생소한 다양한 일식을 한국에 소개하는 것. 이를테면 '라멘 프로젝트', '스키야끼 프로젝트' 같이 말이다.
장 대표는 "일식을 전공한 전문 쉐프가 아니다. 일본의 미식 문화를 한국에도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며 "지금 당장은 덴푸라를 선택했지만 업장을 늘려 매장마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면서 그 음식에 특화된 담당 쉐프를 두고 사업을 확장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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