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58>한여름 4명의 청년 화가가 합작한 부채그림

미술사 연구자

김은호(1892-1979) 외 3명,
김은호(1892-1979) 외 3명,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1917년, 종이에 담채, 16.7×52㎝, 수원박물관 소장

1917년 한여름 4명이 합작해 오세창에게 드린 부채그림이다. 제화는 이도영이 썼고 그림은 김은호, 이한복, 오일영 등이 그렸다. 오세창이 54세, 이도영이 34세일 때고 그림을 그린 세 화가는 각각 26세, 21세, 28세인 젊은 시절이다. 정성들인 필치에서 대선배 오세창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진다.

어부와 나무꾼이 마주 앉은 그림 내용과 제화에서 중국 송나라 소옹의 철학적 담론에 나오는 인물을 그린 '어초문답도'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아래의 물 위에 이당(以堂) 호와 '은호(殷鎬)' 인장이 있어 김은호가 배를 탄 채 노를 잡고 있는 어부를, 뒷모습인 나무꾼과 중국식 멜대의 나뭇짐 아래에 태비생(菭扉生), '이한복인(李漢福印)'이 있어 이한복이 나무꾼을, 제일 왼쪽 바위 절벽에 '오일영(吳一英)', '정재(靜齋)' 인장이 있어 오일영이 배경을 맡았음을 알 수 있다.

이도영이 예서로 쓴 글은 중국 원말명초의 시인 양기(楊基)가 어초문답도를 보고 지은 제화시다.

군수륜(君收綸) 아정부(我停斧)/ 그대는 낚시 줄 거두고, 나는 도끼 멈추어

차향계두화금고(且向谿頭話今古)/ 시냇가에서 마주보며 고금을 이야기 하네

굴송문장찬하신(屈宋文章爨下薪)/ 굴원과 송옥의 문장은 아궁이의 불쏘시개요

한팽사업포중부(韓彭事業庖中鮒)/ 한신과 팽월의 사업은 부엌의 붕어라네

세상공명천여토(世上功名賤如土)/ 세상의 공명이란 흙처럼 천한 것이니

하수료료문겸무(何須了了文兼武)/ 어찌 하물며 쓸데없는 문무겸전이겠나

군관어(君貫魚) 아부추(我負芻)/ 그대의 물고기, 나의 땔나무

유주가환불가고(有酒可換不可沽)/ 술과 바꿀 수 있으니 사지 않을 수 없네

청산요안동일취(靑山溔眼同一醉)/ 청산이 눈에 가득하니 함께 한번 취하고

물론구구영여고(勿論區區榮與枯)/ 구구하게 영고성쇠를 말하지 말게나

정사(丁巳) 중경(中庚) 전일(前日) 제(題)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태비생(菭扉生) 이한복 (李漢福) 단경자(丹耕子) 오일영(吳一英) 삼인(三人) 묘작(妙作) 위(爲) 위창선생(葦滄先生) 법가(法家) 찬정(粲正) 면소(芇巢) 이도영(李道榮)

정사년(1917년) 중복 전날 이당 김은호, 태비생 이한복, 단경자 오일영 세 사람이 위창(오세 창)선생을 위해 그린 그림에 법가께서 바로잡아 주시기 바라며 쓰다. 면소 이도영

어초문답도는 조선,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공유된 주제다. 수집가이자 미술사학자인 오세창은 조선시대부터 애호된 어초문답도의 전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획으로 자신의 수집품에 부채그림으로 어초문답도를 추가했을 것 같다.

미술사 연구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