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이규원, 법(法) 악용해 법 정신 허무는 법비(法匪) 아닌가

현직 검사 신분으로 조국혁신당 대변인 활동을 하고 있는 이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 논란은 일부 법조인들이 법을 어떻게 악용(惡用)하고 있는지 잘 보여 준다. 이 부부장검사는 법무부의 업무 복귀 명령에도 "22대 국회 임기 종료 때까지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신분이 유지되므로 공직선거법에 따라 사직원 수리 간주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출근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대변인이 현직 검사 신분임에도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공무원법'과 '대법원 판례(황운하 판례)'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이 파면·해임 등에 해당하는 징계 사유가 있거나 비위(非違)와 관련해 기소된 경우 사표를 제출하더라도 퇴직을 제한하고 있다. '황운하 판례(判例)'란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기소돼 사직 처리가 되지 않은 황운하가 경찰 신분으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것에 대해 당시 김명수 대법원이 '공직선거법상 사퇴 시한인 90일 전에만 사표를 내면 수리 여부와 상관없이 사직서 접수 시점에 그만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한 것을 말한다. 공무원법이 비위로 기소된 공직자의 사퇴를 제한하는 것은 파면(罷免) 등 더 큰 징계를 내리기 위함인데, 사실상 '도망갈 길'을 열어 준 셈이다.

이 부부장검사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허위 출국금지 요청서 관련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개월에 선고유예를 받았다. 이 부부장검사 역시 총선에 앞서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당시 2심 진행 중이었고,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법무부는 수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황운하 판례'를 바탕으로 이 부부장검사는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대법원 판례가 있으니 황운하의 출마도, 이규원의 출마와 정당 활동도 문제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징계 사유가 있거나 기소된 공무원의 퇴직을 제한하는 공무원법과는 명백히 배치된다. 이런 식이라면 중죄(重罪)를 지어 징계가 불가피한 공무원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그날로 사직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큰 죄를 지어도 정상적으로 퇴직한 공무원들과 똑같이 연금도 받고, 다른 데 응시 자격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해석이 황당(荒唐)하다면, 김명수 대법원의 판결이 황당한 것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황운하가 경찰 공무원 신분으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것, 기소된 황운하에게 민주당이 공천을 준 것, 대법원이 그걸 허용한 것, 이규원이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정당 활동을 하는 것 등은 법을 집행하고, 법으로 정의 운운하며, 법으로 밥을 벌어먹던 자들이, 법을 이용해 법의 취지를 우롱(愚弄)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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