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 꿈꾸는 시] 권미련 '하루에 두 번 수국에 대해 들었다'

1958년 경북 봉화 출생, 2020년 '시문학' 등단

권미련 시인의
권미련 시인의 '하루에 두 번 수국에 대해 들었다' 관련 이미지

〈하루에 두 번 수국에 대해 들었다〉

소문처럼 방치 해두거나

멀리 잊기로 한 결심 너머를 짐작하는데

산성의 신맛과

알칼리의 칼칼함을 단정 짓는 습관에 마음을 쓰는데

연못가에 수국이 한창이더라고

내려다보기 좋은 수국이 붉은빛에 가깝더라고

아침에 들은 얘기는 길었다

무엇의 끝 같기도 하고 시작 같기도 한

밤에 들었다

길이 끝나고 산이 시작하는 곳에

엎지른 잉크처럼 푸른 끝을 보여주는 수국꽃이 폈더라고

흘려보낼 수도 없는 짙은 색은 또 무엇과 무엇이 뭉친 것인지

장마 들기도 전

꽃에 대해 먼저 말 꺼내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겠지

그러니, 언제 한 번 가요

그 말을 삼키고

어디쯤

산성의 집을 빌려 푸르게, 한 며칠 살다가는 장마에 대해

그래서 수국인가

하지 무렵

혼자 머리 끄덕이게 되는 이야기를, 연거푸 들었다

권미련 시인
권미련 시인

< 시작 노트 >

토질에 따라 꽃 색이 달라진다는 수국에 대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꽃을 보려는데 자꾸 뿌리가 움켜쥔 땅을 생각하게 된다.

붉은 꽃 속에는 눈웃음이 푸른 꽃 속에는 멍든 고요가 살 것 같다.

아주 가끔,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게 있다.

하지 무렵 꽃의 반경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세상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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