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김대현 대구시의회 의원

방위가 중요하던 때가 있었다. 지도나 위치를 표시하는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어느 곳의 위치를 말할 때면 어떤 기준점을 중심으로 그 동쪽, 서쪽과 같이 상대적인 위치로 나타내야 했다. 보통 관청을 중심으로 서쪽, 동쪽으로 지칭됐고, 그런 표현은 점차 그곳의 지명이 되었다.

대구 서구도 그랬다. 1963년 1월 1일, 「대구시 설치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대구시를 중앙과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각각 중구와 동구, 서구, 남구, 북구가 설치됐다. 물론 그때는 이런 이름이 편리했다. 하지만 소위 초연결사회인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지리적 위치 이상의 이름이 필요하다.

이름은 스토리를 함축한다. 팔공산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여덟 장군의 이야기가 있고, 대구는 과거 고려 중기에 '달구지(達求地)'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지명에는 그렇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가치와 관심을 만든다.

단지 서쪽에 있는 자치구라는 의미에 그치는 '서구'라는 명칭이 아쉬운 이유다. 누구도 자신의 소중한 터전을 어딘가의 서쪽에 있다고 지칭하고 싶지만은 않을 터지만, 서구, 남구처럼 방위식 행정구역 명칭은 여전하다. 일제의 잔재라는 비판도 있고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에도 지명을 바꾸려는 시도는 없었다.

하지만 서구는 변하고 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서구가 서대구역을 중심으로 달빛철도, 산업선, 신공항철도를 연결하는 철도교통의 허브가 돼야 함을 주장해 왔다. 지난 5월, 대구시의회 제308회 임시회에서는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서대구역세권의 교통허브화를 위한 순환선 사업의 단계적 추진을 촉구하며, 우선 인근 버스 노선의 확충과 셔틀버스형 DRT의 추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서구는 현재의 경부선까지 무려 4개의 철도선이 모이는 교통 허브가 될 것이다. 그러한 대구의 관문이자, 교통의 요지가 될 지역에 서쪽이라는 뜻의 '서구'는 조금 답답한 느낌이다. 사실 그 지역에 적절한 명칭을 갖자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인천 남구는 2018년 미추홀구로 명칭을 변경했는데 여기에는 물의 고을이라는 의미가 있고, 과거 미추홀국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담고 있다. 남구라는 명칭보다 미추홀구라는 특색 있는 이름은 초연결사회에서 좀 더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다.

대구에도 이미 이런 지명이 사용 중이다. 달서구나 수성구가 그렇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동, 서, 남, 북의 방위로 지역명을 남겨둔 지역은 이제 변화하지 않는 지역으로 인식돼 버릴지도 모른다. 변화를 선도하고 선점하는 자는 그 혜택을 누린다. 다만 그러한 변화는 주민을 중심으로, 주민의 뜻대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름 하나 바꾸었다고 해서 갑자기 큰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할 수는 없다. 그 변화한 이름에 걸맞은 정책이 정략적 이해득실을 넘어 오직 주민을 위한 목적으로 구성될 때, 바뀐 지명도 비로소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서구에는 꿈이 있다. 과거 염색산단을 중심으로 대구시를 먹여 살려 왔던 곳이 지금의 서구이고, 여전히 대구 도심이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 기반 시설의 상당수가 서구에 몰려 있다. 그리고 이제는 철도교통의 허브이자 대구시의 관문이 되려 한다. 이제는 변화하는 서구에 어울리는 적합한 이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서구 변화의 시작으로서 말이다. 서구의 꿈을 담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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