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미국 대선, 운칠기삼(運七技三)(?)

이창환 국제팀장
이창환 국제팀장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한다. 세상 일이 노력보다는 운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보면 운칠기삼이 새삼 와닿는다.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후보가 된 것은 '운(運)이 좋았다'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는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일생일대의 대결을 펼칠 조 바이든 대통령 옆에서 조연에 그칠 운명이었다.

억세게 운이 좋은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물러난 빈자리를 꿰차고 당당히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됐다. 별 볼 일 없던 부통령에서 대통령을 넘보는 위치에 올랐다. 부통령에서 대통령 후보가 된 사례는 많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 아무 노력도 필요치 않았던 경우는 해리스 부통령이 거의 유일하다. 감나무 밑에서 홍시 떨어지길 기다리는 수고조차 필요 없었다. 그럼에도 대통령 후보가 됐다. 운을 빼곤 설명할 도리가 없다.

돌이켜 보면 행운은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 TV 토론에서 깃들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 후보 교체론이 본격 불거질 때도 해리스 부통령은 여러 후보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부통령 재임 동안 존재감도 미미했고, 여론조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을 107일 앞두고 후보직을 전격 사퇴하면서 해리스 부통령의 운명도 요동쳤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대선 후보 공식 지명 절차만 남겨둔 시점이었다. 대선을 3개월여 앞두고 대통령이 후보직을 사퇴한 경우는 미국 역사상 처음이었다.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이 1968년 11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포기한 것은 경선 초기인 그해 3월이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대타로 지명을 받았고, 대선 일정이 급한 민주당은 논쟁할 여력도 없이 무경선으로 추대했다. 상원의원과 부통령을 거쳤지만 바이든 대통령에 비하면 정치 경력이 일천하다. 경쟁 상대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서도 '경량급' 후보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이 될 확률이 50%인 자리에 올랐다. 11월 5일 대선에서 이긴다면 그야말로 '운의 끝판왕'으로 등극할 것 같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해리스 부통령만큼 운이 좋다.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 현장만 봐도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 수 있다. 그는 유세 도중 차트를 보기 위해 머리를 돌렸다. 그 순간 '펑' 소리와 함께 총알(또는 파편)이 오른쪽 귀 윗부분을 관통했다. 자칫 머리를 관통할 뻔했다. 지지자들은 신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살렸다고 믿는다. 피격 사건 직후 공화당 압승으로 대선이 싱겁게 끝나는 분위기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살린 운이 정적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비수로 돌아갔다. 피격 사건 8일 뒤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을 사퇴한다. 총알마저 피해 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길 수 없다는 민주당 안팎의 사퇴 여론에 굴복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게 해리스 부통령에게는 엄청한 행운을 가져다줬다. 해리스 부통령을 대선 후보로 만든 1등 공신이 트럼프 전 대통령인 셈이다. 마치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을 보는 듯하다.

11월 5일 치러질 미국 대선까지 억세게 운이 좋은 두 사람 간 싸움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의외의 변수들이 계속 불거지는 탓에 결과를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운칠기삼으로 승부가 결정 날까? 끝까지 관심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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