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태형의 찰나의 순간 역사적 기록] <22> 1973년 낙동강 화원유원지 모래찜질

가마솥더위에도…쑤시고 아픈 온몸 모래 구덩이에 묻었다
"신경통·만성피로 도움 된다" 속설에…그늘 없는 땡볕 백사장 모인 사람들
달궈진 모래 끼얹고 종일 드러누워…병원이자 속 편한 쉼터 역할 하기도

1973년 8월 7일,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백사장을 찾은 시민들이 우산, 양산 아래 드러누워 모래찜질을 하고 있다. 당시 화원유원지는 금호강 백사장과 함께 모래찜질 명소로 알려져 여름철이면 하루 평균 100여 명이 찾았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3년 8월 7일,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백사장을 찾은 시민들이 우산, 양산 아래 드러누워 모래찜질을 하고 있다. 당시 화원유원지는 금호강 백사장과 함께 모래찜질 명소로 알려져 여름철이면 하루 평균 100여 명이 찾았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3년 8월 7일,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백사장에서 시민들이 우산과 양산을 받쳐들고 모래찜질을 하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3년 8월 7일,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백사장에서 시민들이 우산과 양산을 받쳐들고 모래찜질을 하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3년 8월 7일,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백사장에서 한 아낙네가 함께 온 가족에게 밀개로 모래를 끼 얹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3년 8월 7일,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백사장에서 한 아낙네가 함께 온 가족에게 밀개로 모래를 끼 얹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3년 8월 7일,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강변에 펼쳐진 드넓은 백사장에서 시민들이 우산과 양산을 받쳐들고 모래찜질을 하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3년 8월 7일,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강변에 펼쳐진 드넓은 백사장에서 시민들이 우산과 양산을 받쳐들고 모래찜질을 하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3년 8월 모래찜질이 한창이던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백사장(위)과 같은 장소에서 본 2024년 8월 화원유원지 낙동강변. 백사장은 사라지고 주차장과 운동장을 갖춘 공원이 조성됐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3년 8월 모래찜질이 한창이던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백사장(위)과 같은 장소에서 본 2024년 8월 화원유원지 낙동강변. 백사장은 사라지고 주차장과 운동장을 갖춘 공원이 조성됐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3년 8월 7일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폭우성 소나기도 잠시뿐, 35℃를 오르내리는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한 뼘 그늘도 없는 백사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발바닥은 후끈, 숨은 턱턱 막혀도 저마다 자리를 잡고는 우산 그늘에 쏙 드러누웠습니다.

이른바 모래찜질 피서객. 이날도 줄잡아 100여 명이 털털대는 버스에 짐짝처럼 몸을 싣고 이 먼 곳까지 왔습니다. 말이 좋아 이열치열(以熱治熱)이지 가마솥 더위에 모래밭을 찾은 건 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신경통, 류마티스, 관절염, 만성피로…. 또 누구는 부인병에 좋다고 무작정 따라왔습니다.(매일신문 1973년 8월 9일 자)

달궈진 모래는 너무 뜨거워 화상을 입을 정도. 한겹 옷을 걸치고는 모래 구덩이에 몸을 묻고 지긋이 눈을 감았습니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라치면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꼭두새벽부터 장사한다고, 논밭을 일군다고, 휴일도 모르고 날품을 판다고 사시사철 그리도 설쳤으니 팔 무릎 어깨 허리 어디 하나 성할 틈이 없었습니다.

말동무와 같이 온 아낙네들은 시집 흉, 남편 흉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이곳저곳 쑤시고 아픈 것도 억울한데 시집살이 생각하면 울컥 화가 또 치밀었습니다. 부질없는 한숨에 먼산을 쳐다보니 미루나무 높은 데서 찢어질 듯 울어대는 한여름 매미 소리…. 무더위에 이 무슨 고생이냐 했는데 한참 수다를 떨고 나니 후련했습니다.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모래찜질은 독소가 되는 몸속 노폐물을 땀으로 빼내는 자연 건강요법. 혈을 돌리고 염증도 없애고 아픔도 멎게 한다고, 옛날부터 선조들이 해오던 여름철 연례행사였습니다. 에어컨은 무슨, 선풍기도 귀해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나던 그 시절, 서민들은 아파도 병원을 몰랐습니다. 폭염도 땡볕도 대수가 아니었습니다. 모래를 끼얹고 온종일 드러누워도 돈 한 푼 안드니, 낙동강 모래밭은 이들의 병원이자 속 편한 쉼터였습니다.

'어정 7월 건들 8월'. 바쁜 모내기를 끝낸 7월은 발걸음도 어정어정 한결 가볍고, 농작물이 알아서 여무는 8월은 할 일도 없어 건들건들 그늘을 찾아, 또 이렇게 모래찜질로 몸을 달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화원유원지 모래찜질은 1970년대를 지나오면서 점차 자취를 감췄습니다.

1976년 10월 낙동강에 안동댐이 들어선 뒤 강물에 실려오던 모래도 줄고, 도시화로 건축붐이 일면서 강바닥 모래는 귀한 몸값으로 팔려나갔습니다. 드넓던 화원유원지 백사장도 점차 볼품을 잃었습니다. 미루나무, 버드나무, 이태리포플러가 늘어섰던 그때 화원유원지 강변숲은 이제 주차장으로, 운동장으로, 공원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가 끝도 없어서 엄마랑 누나랑 강변 살자던, 곱디 고운 백사장은 더는 볼 수 없습니다. 모래 섞인 계란을 도란도란 까먹으며 모래에 몸을 묻던 추억도 다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1977년 7월,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백사장 곳곳에 자리를 잡은 시민들이 양산과 우산을 쓰고 모래찜질을 하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7년 7월, 달성군 낙동강 화원유원지 백사장 곳곳에 자리를 잡은 시민들이 양산과 우산을 쓰고 모래찜질을 하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0년대 달성군 화원동산에서 고령군 다산면 방향으로 내려다 본 낙동강.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 진 가운데 뱃사공이 나룻배에 사람들을 태워 강을 건너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70년대 달성군 화원동산에서 고령군 다산면 방향으로 내려다 본 낙동강.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 진 가운데 뱃사공이 나룻배에 사람들을 태워 강을 건너고 있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55년 여름날 경북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 주민들이 낙동강 화원유원지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다리 삼아 강을 건너고 있다. 백사장 너머 화원동산 오른쪽에 사문진 나루터 주막이 보인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1955년 여름날 경북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 주민들이 낙동강 화원유원지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다리 삼아 강을 건너고 있다. 백사장 너머 화원동산 오른쪽에 사문진 나루터 주막이 보인다. 사진=매일아카이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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