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신탁은 불안을 자양분으로 실현된다

신탁 콤플렉스
조현설 지음 / 이학사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노이로제와 히스테리 또는 공포증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포함하여 프로이트와 융이 활용하기 시작한 심리학적 개념, 콤플렉스. 소수 관점에서 신화를 연구해온 신화학자 조현설의 '신탁 콤플렉스'는 동서양에 광범위하게 걸친 신탁과 불안의 상관관계를 탐색한 후 이를 '신탁 콤플렉스(神託 complex)'로 개념화한 흥미로운 저작이다.

저자는 고등학교 2학년 교회 부흥집회에서 부흥사가 던진 "여자 조심해!"라는 말을 신탁으로 받고 불안해한다. 반면 대학원 시절 무당에게 들은 말은 불안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 두 차례의 경험은 신탁과 불안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싹틔웠다. 조현설은 16세기 유학자 묵개 이문건이 손자를 온전히 양육하기 위해 무당에 의존하며 신탁을 받은 사실을 언급하면서, "다소 과장하면 우리 민속사회는 귀신과 신탁 문화를 빼면 남는 게 없다."고 주장한다.

신탁의 이야기가 형태를 가지고 불안 심리와 만날 때 그것은 예언이 아닌 명령이 된다. "신탁은 신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신탁은 의뢰자의 마음에 따라 실재가 된다."(37쪽)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신탁 케이스. 오이디푸스가 등장하는 3장은 이 책에서 가장 익숙한 장면이다. "아들을 낳으면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리라."는 무시무시한 신탁. 테바이 왕 라이오스가 오이디푸스를 낳았을 때 죽이려 들지 않았던들 신탁은 이루어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회생한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의 왕자가 되어 받은 신탁 즉 "네 조국으로 돌아가면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동침하리라."는 말에 코린토스를 떠나고, 길목에서 시비 끝에 전령과 친부 라이오스를 죽인다. 라이오스는 테바이에 역병이 돌아 델포이 신탁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러니까 아들은 신탁을 피해서 갔고 아버지는 신탁을 받으러 가는 길목에서 신탁이 실현된 것이다.

이렇듯 신탁은 예언이 아니라 명령으로 둔갑하고 기어이 실현된다. 저자는 두 부자를 사로잡은 불안과 신탁 강박에 혐의를 둔다. 게다가 1900년 꿈의 해석으로 정신분석학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은 미셸 옹프레에 의해 처절하게 추락하는데(자신이 경험하고 자기경험을 일반화한 프로이트의 유아적 소원에 불과하다.) 저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폐기되어야 하는 이론이라고 보충설명하면서 오이디푸스 부자는 성욕이 아니라 신탁이 초래한 불안 때문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만능열쇠로부터 구출해야 한다."(78쪽)는 주장도 이 때문일 터다.

책 후반 심청의 인신공양 대목에 이르면 심봉사가 화주승 말에 매혹되어 즉 큰 시주를 하면 눈을 뜰 거라는 계시형 신탁에 부응함으로서 신탁은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 되고 약속은 신의 명령으로 전환 된다. 신탁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움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맺는말에서 저자는 오늘 한국사회를 질타한다. 연산군을 비롯해 광해군과 명성황후 등 시대마다 최고 권력자의 비호를 받은 인물들이 신탁 콤플렉스를 이용해 사익을 취해왔다면서, 그러나 "제액초복을 얻으려는 점복과 주술이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데 이르면 곤란하지 않겠는가?"라고 일갈한다. 그리하여 신탁에 저항하고 신탁으로부터 탈주한 인물들에게서 답을 얻자는 요청으로 끝나는 '신탁 콤플렉스'. 명쾌하고 직관적이다.

"새로운 만남을 통해, 우리 모두 심봉사가 눈을 뜨듯 신탁 콤플렉스라는 맹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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