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채정민 기자의 봉주르, 파리]'올림픽 치안 지원' 파리 파견 경찰관 황의열 경정

올림픽 기간 14명의 한국 경찰관이 파리 순찰
황 경정, "음식과 근무 환경 달라 어려움 있어"
12일로 한 달 근무 끝, 안전에 항상 주의 당부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황의열 경정. 근무 시작 전 잠시 짬을 내준 덕분에 숙소에서 멀지 않은 베르시 공원 앞 카페에서 만났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황의열 경정. 근무 시작 전 잠시 짬을 내준 덕분에 숙소에서 멀지 않은 베르시 공원 앞 카페에서 만났다. 채정민 기자

"멀리서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반겨주시니 더 미안하다. 지하철을 잘못 타 반대 방향으로 가다 보니 약속 시간보다 늦었다. 파리 도심에서 살짝 비켜 난 베르시 공원 입구 스타벅스에서 황의열 경정을 만났다. 여기서 구경하기 힘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건넨다. 황 경정의 얼굴만큼 반갑다. 한국인은 밥심과 커피(특히 아이스 아메리카노) 힘으로 일한다 하지 않던가.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 중인 황의열 경정(왼쪽)과 현지에서 함께 움직이는 외국인 동료들. 황 경정 제공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 중인 황의열 경정(왼쪽)과 현지에서 함께 움직이는 외국인 동료들. 황 경정 제공

황 경정은 평택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중견 경찰관. 프랑스 정부가 올림픽을 맞아 각국 정부에 안전 활동을 지원할 경찰력 파견을 공식 요청했고, 우리 경찰청이 그에 응했다. 황 경정은 "평택은 사건사고가 많은 지역이라 해외 파견에 지원하기가 망설여졌다. 러시아 주재관 출신인 서장님께서 좋은 경험이라며 허락해주셔서 올 수 있었다"고 했다.

현지에서 소통이 쉽지는 않다. 황 경정은 "함께 근무하는 칠레 경찰들은 친화력이 좋고 항상 웃는 친구들이지만 영어를 아예 못 한다"며 "그래도 다들 참 적극적이다. 휴대전화 번역기 등을 동원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성격들이 좋다"고 웃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 중인 한국인 경찰관이 우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 황 경정 제공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 중인 한국인 경찰관이 우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 황 경정 제공

언어보다 황 경정에게 더 신경 쓰이는 건 음식. 햇살을 쬐며 카페 앞 야외에 차려진 자리에서 예쁘게 차린 음식을 먹는 것? 낭만은 있을지 몰라도 실속은 없다. 음식 맛은 거기서 거긴데 비싸다. 황 경정 역시 "배불리 먹고 일하려면 20유로는 들여야 하는데 그러기엔 맛이 별로다. 돈이 아깝다. 보기에만 그럴싸하다"고 했다. 이렇게 또 공감대가 형성된다.

황 경정은 "국제도시다 보니 전 세계 음식이 모여 있긴 하다. 문제는 가격이다. 가성비가 좋은 케밥과 베트남 식당의 쌀국수를 애용 중"이라며 "한 번씩 생각날 때마다 챙겨온 라면, 김치 등을 먹으면서 버틴다. 숙소가 호텔이어서 주방이 없지만 여행용 인덕션과 코펠을 챙겨와 간단한 것은 해 먹을 수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 중인 한국인 경찰관이 현지를 찾은 한국인 여행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황 경정 제공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 중인 한국인 경찰관이 현지를 찾은 한국인 여행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황 경정 제공

순찰 요원으로 구성된 현장 안전지원팀은 28명. 그 중 14명이 황 경정과 함께 7월 14일부터 파견 근무 중이다. 나머지 14명은 패럴림픽(28~9월 8일)에 맞춰 20일 들어온다. 선참인 황 경정은 일행의 일상을 챙긴다. 휴일 행선지도 보고하게 하고, 밤늦게 다니지 못하게 한다. 잘 해내더라도 작은 문제 하나가 전체 평가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파견 경찰관들은 낮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하는 게 기본. 대부분 주요 기차역과 그 인근을 순찰한다. 다만 관광객이 많은 몽마르뜨 언덕과 샤크레 쾨르 대성당 인근은 오후 2시부터 10까지 근무한다. 여름이면 오후 9시가 돼도 해가 있는 곳이 파리여서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은 까닭이다. 3명씩 2교대로 6명의 한국 경찰관이 그곳에 있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뜨 언덕과 샤크레 쾨르 대성당 인근을 순찰하고 있는 다국적 경찰관들. 맨 오른쪽이 한국인 경찰관이다. 그 옆은 등 뒤 국기를 보니 스페인 출신 경찰관. 프랑스 당국의 취재 허가를 얻지 못해 뒷모습만 찍었다. 채정민 기자
프랑스 파리 몽마르뜨 언덕과 샤크레 쾨르 대성당 인근을 순찰하고 있는 다국적 경찰관들. 맨 오른쪽이 한국인 경찰관이다. 그 옆은 등 뒤 국기를 보니 스페인 출신 경찰관. 프랑스 당국의 취재 허가를 얻지 못해 뒷모습만 찍었다. 채정민 기자

황 경정은 순찰을 하면서 파리가 한국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란 걸 실감한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많은 데다 CCTV도 잘 보이지 않고, 경찰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어 더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테러에 대한 우려 탓에 방치된 가방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을 때 주변을 통제한 뒤 폭발물 제거 인력이 투입되는 모습도 몇 차례 겪었다.

한국과 달리 여긴 여전히 도보 순찰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어려운 점. 근무 내내 서 있거나 걷는다. 더군다나 위험 요소가 많은 탓에 방탄복과 총 등으로 항상 완전 무장한 채 있어야 하기에 몸도 무겁다.

황 경정은 "하루에 최소 2만보는 걷는다. 나야 신참 때 도보 순찰을 경험해본 적이 있지만 함께 온 후배들은 힘들 것이다. 안타깝다"며 "근무가 끝난 뒤 방탄복을 벗으면 옷이 흠뻑 젖어있을 정도"라고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 중인 한국과 각국 경찰관들. 황 경정 제공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 중인 한국과 각국 경찰관들. 황 경정 제공

문화가 다르니 일하는 모습도 같지 않다. 프랑스에선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단다. 권위적이고 시민들과 거리감도 있다고 했다. 황 경정도 불심 검문 때 현지 여성 경찰이 여성 행인을 붙잡고 브래지어 속에 손을 넣어 마구 뒤져도 뭐라 못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자기가 맡은 일만 하고 손을 터는 것도 우리와는 다르다.

황 경정은 "위험한 곳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인지 경찰을 그리 좋게 보지 않는 듯하다. 여행 온 한국 청소년들이 우리와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걸 보고 프랑스 경찰들이 부러워했다"며 "우린 시민들이 이런저런 도움 청할 경우 나서지만 여기선 자기가 맡은 일만 한다. 공무원은 시민이 필요해 생긴 조직인데 그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황의열 경정(왼쪽에서 세 번째)이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 중 만난 한국 청소년 여행객들과 환한 표정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평소 시민들과 거리감이 있는 탓인지 한국, 칠레 경찰관들(오른쪽 2명)과 달리 프랑스 경찰들(가운데)의 살짝 어색해하는 표정이 눈에 띈다. 황 경정 제공
황의열 경정(왼쪽에서 세 번째)이 프랑스 파리에서 파견 근무 중 만난 한국 청소년 여행객들과 환한 표정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평소 시민들과 거리감이 있는 탓인지 한국, 칠레 경찰관들(오른쪽 2명)과 달리 프랑스 경찰들(가운데)의 살짝 어색해하는 표정이 눈에 띈다. 황 경정 제공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항상 강조하는 건 안전. 어렵게 만난 자리를 뜨기 아쉬워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하자 역시 또 그 얘기다. 천상 경찰관인 모양이다. "해가 떠 있다 해도 들뜬 마음에 밤늦도록 돌아다니진 마세요. 보기보단 위험합니다. 한국과는 달라요." 파리에서 채정민 기자 cwolf@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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