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앙(商鞅)은 한비자와 함께 법가 사상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 진(秦)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상앙은 진나라 군주 효공 때 남문 앞 저자에 3장(丈) 크기 나무를 세워 놓고 북문으로 옮기는 백성에게 거금 10금을 주겠다고 방을 붙였다. 사람들이 코웃음만 치자, 상금을 50금으로 크게 올렸다. 밑져도 본전이라고 생각한 어느 백성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겼다. 그러자 상앙은 그에게 큰돈을 상으로 줬다. 백성이 믿고 따르지 않으면 어떠한 개혁도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에 '나라에서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신뢰를 쌓으려는 의도였다. 백성의 믿음을 얻으면서 진나라는 강국이 되어 갔다.
신뢰를 바탕으로 천하를 통일한 제국은 신뢰가 깨지면서 바람 앞의 등불이 됐다. 시황제가 죽자 조고는 진시황의 서자 호해를 옹립하고자 승상 이사와 짜고 진시황의 유서를 날조, 적장자 부소가 자결토록 했다. 호해가 이세황제가 되자 조고는 이사를 배신해 옥에 가두고 스스로 승상에 올랐다.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던 조고는 신하들 앞에서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우기며 조롱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황제에게 사슴이라며 사실을 고한 신하를 하나하나 기억해 두었다가 숙청했다. 이후 조정에서 조고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 추방당한 신하들이 항우 편에 서며 이 사건은 진나라 멸망의 단초가 됐다.
8일 '서울 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은 국민을 참칭(僭稱)했다. 수도권의 기형적 확장으로 지방 소멸을 재촉하는 서울 개발사업은 인구 소멸 대책으로 둔갑했다.
20쪽에 달하는 정부의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 지방 미분양 관련 대책은 두 쪽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서울과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에 편중했다. 혈세로 빌라 등 서울의 비아파트를 무제한 사들여 전·월세로 공급한다거나 공공이 미분양 매입 확약을 제공한다는 식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파괴력 있는 내용은 서울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신규 택지에 8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안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인구 소멸 위기에 직면하는 상황에서 미래 세대를 위한 주택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말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국토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면적은 11.8%에 불과하지만, 2022년 말 기준 수도권 인구는 총인구의 50.5%에 달한다. 이 좁은 곳에서 살아남고자 악다구니를 펼치다 보니 청춘의 결혼·출산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서울 그린벨트에 아파트를 지으면 '지방 인구 이탈→수도권 과밀→수도권 교통난·주택난 심화→신도시 건설→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 악순환이 해소될까? 한국은행이 괜히 "수도권 집중 완화가 출생률을 높인다"는 보고서를 펴냈을까. 도리어 수도권 초집중, 지방 소멸, 비수도권과 주택 가격 양극화를 심화할 뿐이다.
이쯤 되면 윤석열 대통령 입에서 나온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진정한 지방시대로 저출생 극복"이라는 말에 진정성이 있나 싶다. 정부의 지록위마(指鹿爲馬)에 "지방 사람들은 이사하고 싶어도 거래가 안 돼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구축은 전세 내놔도 들어올 사람이 없어서 1년째 비어 있는 심각한 상황인데 모든 정책은 서울로만 집중되고 있다. 서울 사람만 대한민국 국민인지 묻고 싶다"며 분통을 터뜨린 주권자가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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