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의대증원 발표 이후부터 줄곧 우울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의료붕괴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 보이는데 마땅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으니 매일매일 답답할 뿐이다. 하는 말과 쓰는 글 모두 정부를 성토하는 뾰족하고 신경질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왜 밝고 행복한 이야기는 쓰지 못하는 불평분자가 되었는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스스로 자아비판을 곰곰이 해보게 된다. 아무리 밝고 아름다운 주제를 떠올려보려 해도 삐뚤어진 정치판과 거기에서 나오는 정책의 여파가 사회 곳곳에 미치기 시작하고 있는 암울한 현실에서 필자 또한 우울한 세상의 틀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변명해 본다.
정치는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통합의 기술로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어울림이 요체다. 누가 옳은가 틀린가의 단순한 흑백 논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흑백 중간지대의 수많은 회색 스펙트럼을 수용하고 균형을 잡아 주는 중용의 감각을 잃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은 정치 권력의 힘은 아무리 좋게 포장하여도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합법적인 폭력에 불과하며 결국 국가와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의료 정책에서까지도 너무나 빤히 속이 드러나 보이는 정치적 의도의 정책에 의사들은 분노하고 저항하고 있다. 그렇다고 의사들의 주장과 행동이 전적으로 국민 건강을 위함이며 집단 이익에서 자유롭다고 강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정권도 정치인들의 집단이니 그들의 집단 이익을 위한 행동을 할 수 있고, 의사들 또한 스스로의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다만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투명했는지, 또 그 결과가 그들의 집단 이익을 넘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 것인지 하는 정당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였는가 하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현 정부는 힘을 바탕으로 정책 수행의 속도감을 중요시하여 균형과 통합을 소홀히했고, 내놓은 의료정책은 당사자인 의료계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목적 설정과 정책 균형에 실패한 전형을 보는 듯하다. 아집에 사로잡혀 바른 길을 못 찾고 헤메고 있는 상대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가야할 방향을 가늠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곤혹스러운 낭패이다. 환자의 고통과 생명의 소중함을 내세워 의사를 노예처럼 옥죄고 악마화하는 정부와 본질을 외면한 비난 일색의 여론 속에서 의술의 진정한 뜻을 제대로 헤아리기고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만은 않다.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전쟁터이다. 범죄와 부도덕이 활개치고 거짓말과 선전 선동이 가득한 세상이지만, 자신의 분야에 충실하고 본분을 다하는 삶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불이익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바른 미래를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전공의들과 의대생들, 환자의 진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들, 그들 모두가 의인이다.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곧게 서있는 이들을 보면 아직은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세상인 것 같다. 지금은 비난 일색이지만, 의사들이 무엇을 말하고 행동했는지 결국 온 세상이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녹음 푸르고 매미소리 시끄러운 생동의 계절의 한복판에서 무언가 희망차고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또 다시 우울한 제자리에 오고 말았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단지, 너무 많은 것을 잃기 전에 제자리를 찾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도 도돌이표 일상속에서 버티기 한판이다.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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