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의 논리와 강대국들이 써내려간 역사 서사에 익숙한 우리는 흔히 가난한 국가들, 그리고 평생을 힘겹게 사는 이들을 보고 쉽게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가난하게 사는데는 이유가 있어."
하지만 이게 진짜 사실일까? 세상이 이렇게 극도로 왜곡되고 점점 부의 편중이 가중되는데는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이유가 있는건 아닐까. 그게 아니고서야 우리는 "매년 전 세계 인구의 70억명(2012년 기준)을 다 먹이고도 추가로 30억명을 더 먹일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최소한의 인간적 역량이 훼손될 정도의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인구는 더 늘어날" 수가 있는가.
아프리카 스와질랜드(현 에스와티니)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NGO단체인 월드비전에서 일했던 저자 제이슨 히켈은 왜 원조로 진행된 개발활동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지를 분석하는 업무를 맡았다가 그 속에 숨어있는 거대한 비밀의 실체를 감지하고는 경제인류학자로 이같은 부의 편중이 일어나는 근원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오랜 그의 연구결과를 담은 '격차(DIVIDE)'에서 그는 먼저 유엔 등 국제기구가 펴내는 각종 데이터의 허상부터 폭로한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펴내는 연례 보고서에는 '개발', '발전', '원조', '성장'이 낳은 긍정 결과를 각종 통계 데이터와 함께 발표하면서 "선진국의 개발 노력 덕분에 빈곤과 기아 인구가 줄어들며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이것은 '선진국이 만들어낸 가공된 신화'일 뿐이다. 유엔이 목표로 세웠던 빈곤 탈치는 실패했다.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준인 '빈곤선' 통계 기준을 바꿔가며 숫자 놀음을 했을 뿐, 오히려 빈곤 인구가 줄긴 커녕 10억명이 늘었다.
원조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선행을 강조하지만 이는 저발전 국가들이 더 나아질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정치·경제적 방법을 총동원해 발전을 가로막아온 선진국의 횡포를 가리기 위한 '언 발에 오줌누기'식 눈가림에 불과한 것이란 설명이다. 그 근거로 저자는 1500년대를 전후한 아시아 및 남미 등의 경제적 상황에서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관점에서 충분한 분석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스스로 진행하려는 개발과 발전이 외부의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꺾이고 무력화되는 데다 그나마 성취한 약간의 발전마저 강제로 되돌려지고 있는 것을 표현하려면 타동사의 형태를 써서 선진국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저개발시켰다'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부패와 반민주주의 사례로 우리는 더 큰 진실을 볼 수 있다"며 "탈성장의 해법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향상하면서도 더 정의로운 사회적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면서 대담하면서도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채무국의 부채 부담을 덜되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신자유주의 제도를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고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 등 국제 거버넌스 기관을 민주화 해 모든 나라에 모든 권한과 절차가 투명하게 열려 있어야 하며 ▷더 공정한 교육 시스템과 ▷글로벌 최저 임금제 도입 ▷글로벌 조세제도 개혁을 통한 조세 회피 차단 ▷화석 연료 타격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 전환 등이다.
제이슨 히켈은 한국어판 후기에서 "현 상태의 경제가 부과하는 제약과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생각해야 하고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를 그려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혁명에는 조직화와 투쟁의 힘든 노력 또한 반드시 필요합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464쪽, 2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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