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금투세와 개미들의 분노

허현정 디지털국 기자
허현정 디지털국 기자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폐지를 요구하는 주식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애초 2023년 시행하기로 했던 금투세는 2022년 12월 소득세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내년으로 시행이 유예됐다. 그러다 올해 초 정부가 폐지 카드를 꺼내 들면서 정치권의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최근에는 미국발(發)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국내 증시가 큰 폭으로 요동치자 투자자들이 금투세를 폐지하라고 정치권을 강하게 압박하는 중이다.

금투세는 주식 등 금융 투자로 얻은 이익이 연 5천만원을 넘으면 초과분에 대해 세금 20%(3억원을 초과하면 25%)를 매기는 것을 골자(骨子)로 한다. 정부와 여당은 금투세 때문에 '큰손'들이 국내 주식 시장에서 빠지면 증시에 피해를 줄 수 있어 폐지해야 한다고 본다. 반면 금투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선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을 근거로 도입을 주장한다.

그런데 지금 금투세를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쪽은 정부나 여당이 아닌 개미 투자자들이다. 지난 광복절에는 개인 투자자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금투세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주요 선진국들만 시행 중인 금투세를 적용하려는 것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화약을 들고 불속으로 가라고 떠미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최근 야당에서도 금투세를 둘러싼 찬반이 갈리는 분위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얼마 전 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강행하기보다는 유예하거나 일시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개미 투자자들은 금투세 적용 대상자들과는 거리가 먼 부류일 것이다. 소액 투자자가 대부분일 이들은 주식으로 연 5천만원 수익은커녕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식은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부(富)의 사다리'로 통한다. 지난 몇 년간 자산 가격 폭등을 체감한 젊은 층에겐 더욱 그렇다. 주식은 사회 초년생에서부터 평범한 월급쟁이까지 비교적 낮은 장벽으로 시작할 수 있는 자산 증식 기회이기 때문이다. 자산 가격 폭등이 본격화된 코로나19 시기 이후 국내 주식 투자자가 급증한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개미들의 분노는 자신의 계층 사다리가 걷어차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도 닿아 있다. 시장 전반이 위축돼 그동안 주식으로 그나마 벌던 푼돈마저 못 벌게 될까 봐 우려한다. 한 야당 의원이 "금투세 적용 대상자는 전체 투자자의 1%에 불과하다"며 개미들의 분노를 잠재우려 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 이유다.

금투세 도입 시 증권거래세에 부과하는 농어촌특별세(0.15%)는 사라지지 않는 '이중과세' 논란, 부양가족이 주식 등으로 낸 수익이 연 100만원만 넘으면 인적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불합리함 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대로라면 '유예'나 '완화'로 결론 나더라도 투자자들의 불만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도입을 코앞에 둔 시점에 부랴부랴 논의에 불을 지핀 정치권도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적된 소액주주 홀대, 기업 정보 불투명성 등을 위한 대책 마련은 더디게 진행됐다. 금투세 시행이 한 차례 유예를 거쳤음에도 국내 증시 체질 개선에는 손을 놓았던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며 "국장(國場·한국 증시)은 안 하는 게 돈 버는 길"이라고 분노하는 이유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