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옛 대구형무소 터 이대로 둘 것인가?

우대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

우대현
우대현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은 우리 민족의 큰 기쁨이요 자랑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쁨 뒤에 숨은 숱한 애국 선열들의 국권 회복을 위한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희생의 현장이 바로 3대 형무소로 불렸던 서대문형무소와 대구형무소 그리고 평양형무소였다. 역사관으로 변신한 서대문형무소와 달리 수많은 선열이 순국했고 수감됐던 대구형무소는 사라지고 없다.

대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된 곳이다. 대구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1910년대 가장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한 단체인 '대한광복회'가 대구 달성 토성에서 결성되었다.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이 출범한 곳도 대구 앞산 안일사였다. 독립유공자 수가 인구 비례로 볼 때 가장 많은 도시가 대구이다. 서울의 1.6배이고 부산의 3배, 인천의 5배에 이른다. 독립운동의 순국 역사를 간직한 형무소가 있었고, 독립운동 역사 자산이 넘쳐 독립운동의 성지와 같은 대구에는 독립기념관도 없다.

후손들에게 역사교육과 체험학습을 시킬 만한 시설이 없다. 이에 대구의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2017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초대 상임대표 배한동)를 창립하고,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과 대구형무소 역사관 재현을 중요 사업으로 내걸었다. 2020년 7월 20일에는 대구를 비롯한 전국의 뜻있는 인사 300여 명이 대구에 모여 대구독립운동기념관건립추진 발기인대회를 열고 김능진 제9대 독립기념관 관장을 추진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이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과 대구형무소역사관 재현 등을 주요 사업으로 내걸고 달려왔다.

사업회는 또 2020년 매일신문사 정인열 논설위원(대구가톨릭대 교수)의 '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 발간을 통해 대구형무소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대구형무소에서 희생된 순국열사를 밝히는 작업을 펼쳤다. 2021년에 책을 개정해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서훈 독립운동가(202명)가 서대문형무소(175명)보다 27명이 더 많은 사실도 밝혔다. 추가 자료 발굴과 새로운 연구 내용을 담아 8월 중 다시 책을 낼 예정인데, 대구형무소 순국 선열 216명(서대문형무소 순국 애국지사 195명) 등의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대구형무소의 순국 애국지사 희생과 대구의 독립운동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후손의 역사교육은 물론 일제강점기 선열의 애국정신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현장으로 재현하여야 할 것이다. 이미 서대문형무소는 해마다 70만 명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국민이 방문하여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학생들의 현장 교육 장소로 활용되는 모범적 사례로 자리를 잡고 있다.

대구형무소는 1971년까지 교도소로서 기능을 하다가 화원교도소로 자리를 옮기고 난 뒤 옛 형무소 터는 매각되었다. 삼덕교회가 들어서고 형무소는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다행히 교회에서 옛 형무소를 알리는 노력을 했다. 사형장 터(교회 로비)에 이육사 기념 공간을 만들고, 교회 안에 대구형무소 벽돌 수십 장을 쌓고 벽돌에 독립운동 순국자와 수감자 이름을 새겨 추모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시설 부족 등으로 찾는 발길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대구형무소는 그 역사적 가치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또 대구형무소에 깃든 역사적 사실의 활용 근거도 충분하다고 본다. 이런 중요한 역사적 유산을 묻어 두지 말고 재현해 대구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는 역사 공간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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