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성소수자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지난 3월 한 언론에서는 'Z세대 성소수자 비율급 등'이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갤럽이 발표한 통계를 분석했는데, Z세대 성인 5명 중 1명이 성소수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자의 분석은 심리적인 타격이 컸다. Z세대 세대인 (1997~2005년생)이 22, 3%로 2017년 10.5%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성인 1만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전국 성인 7.6%가 본인을 성 소수자로 정의 하고 있다. '동성애자' 단체는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사랑으로 이겼다'라며 환호했다. 일본 정치권은 트랜스젠더의 호적 성별 인정을 수술로 인한 판단 보다 성별 정체성에 대한 생활 기간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을 정치권에서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생률 저하로 인한 인구절벽 혼족 시대에 성 소수자는 늘어날 것이다. 연극, 뮤지컬 무대에도 고전적인 주인공들의 남성화는 전복되고 젠더프리 공연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게이, 호모, 트랜스젠더, 동성애자로 지칭되는 단어는 특정 타자를 지칭하는 혐오로 인식 되어왔다. 그동안 성 소수자들의 정체성과 삶은 장자와 장손을 통해 집안의 계보를 잇는 남아선호사상에 밀리고 한국판 가부장제와 유교 사상으로는 한국 사회 소수자의 비주류로 침묵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명인들의 커밍아웃과 사회가 진보적인 성평등으로 이동되면서 퀴어를 소재로 하는 연극도 다양화되고 있다. 동성혼인 입양가족을 통해 동성애자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는 <이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아웃팅, 커밍아웃, 결혼, 퀴어의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건널목 교차로> 등 다양한 창작 방식으로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혐오, 불평등한 사회 인식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작품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 인식들이 변화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23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한국 동성애자 연극 아카이브 베타'에는 <오르막길의 평화맨션>,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여성국극 × DRAG : 춘향전> <이반검열> <드랙나라의 앨리스> 등 10여편의 작품들을 '한국, 퀴어, 연극, 아카이빙 하기'로 기록해 놓고 있다. 앞으로 퀴어연극(공연, 배우) 협회가 등장해 제도적인 목소리도 높아질 수도 있다. 동성애자가 성 소수자들을 포괄하고 있는 만큼 소재들도 다양하다. 대체로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소외된 삶을 다루거나 경험 과정을 희곡으로 치환하는 방식, 성 소수자로 살아가는 정체성의 혼돈과 주체적 삶으로 극복해 가는 소재들이었다. 차별, 혐오, 성적자기결정권, 냉소적인 시선, 사회법 제도와 인권 문제 등이 렉처퍼포먼스, 다큐멘터리가 융합된 라이브방식, 희곡 중심으로 무대화 되어왔다. 성 소수자(성 소수자)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들로 채우게 된 것은 퀴어 연극을 표방하고 있는 극단 공놀이 클럽의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연출 강훈구 작 서동민, 아르코소극장) 때문이다.
◆강훈구의 공놀이 클럽 X 서동민 작가의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한국 사회 퀴어연극이 보여온 무대 형식을 전복한다. 전체 극 중 인물들의 '역활 전환'으로 삶을 교차시키는 메타적 연극 방식으로 표현형식에 접근하고 있다. 다양한 퀴어연극 작품 중에서도 무대 형식과 드라마의 구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면서도 한국 사회 퀴어에 대한 시각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공감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무대화했다는 점에서 연출성과 희곡작가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서울연극센터 PLAY-UP 아카데미 창작워크숍을 통해 희곡 초고를 발굴했고 2023년 국립극단[창작 공감:희곡] 낭독 공연과 희곡개발을 지속해서 해오며 공연을 준비해 왔다. 서동민 작가의 데뷔 작품은 대표작품이 됐다. 공놀이클럽의 연출은 <소년소녀 진화론>(2018, 서촌공간 서로)으로 알린 뒤 이듬해 독특한 무대를 보여준 <폰팔이>(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로 20대 후반에 91년생 강훈구를 알리게 된다. 독창적인 표현형식으로 30대 초반 연출가 강훈구의 등장도 기대감이 크다 할 수 있다. 김광보, 조광화, 최용훈 트로이카 시대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90년대 한국연극의 패러다임을 전환했으니 말이다.
<망할극장>(2020, 서울 남산센터), <마더퍼커 오이디푸스>(2021,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 <로켓 캔디>(2022, 대학로예술극장),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 (2023, 대학로극장 쿼드) 정도가 강훈구 작품들이다. 청소년극으로는 <이상한 어린이연극-오감도>,<바다쓰기>를 아이들 극장에서 공연했다. 강훈구 연출의 특징은 극단이 '공놀이클럽'답게 구조적인 연극형식을 전복하고 무대에서 전환되는 장면과 상황, 인물의 캐릭터들은 시공간의 흐름으로 특정화하지 않으며 메타적 놀이성을 무기로 공의 방향을 짐작할 수 없는 속도감처럼 희곡의 재현성을 뒤집는 연극형식을 취한다. 강훈구의 무대는 즉흥성과 장면의 탄력성, 놀이성, 공놀이의 규칙을 지키는 드라마 구조, 배우들의 수행적인 표현들로 역할의 다양성을 수행하는 명수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만큼 강훈구 연출의 전작 작품들에서는 연극적인 형식을 파괴하는 즉흥성과 놀이성이 특징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연극적인 구조에서 연출의 특징을 부각하면서도 드라마를 몰고 가는 속도감과 배우의 역할수행, 독창적인 장면설정과 공간 활용. 발칙한 표현 방식까지 더해져 희곡은 살아났고 무대는 강훈구다움으로 채워졌다. 가족 이야기는 아들 때문에 균열이 생기고 성정체성의 혼돈을 보여온 아들이 여성(트랜스젠더)이 되어 가는 작가의 특수한 서사를 희곡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 재개발로 인한 가부장제의 균열성과 여성화의 욕망
은평구 수색동 재개발(뉴타운)을 앞둔 수정빌라 203호에서 살아가는 네 가족(딸, 아들, 며느리, 노모)의 이야기로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가족 관계의 특수성을 은유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남자아기를 출산하면 대문밖에 고추가 달린 금줄을 걸어두었다. 볏짚으로 새끼줄을 꼬아서 만든 금줄은 아이의 부정을 막아주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민간 풍습이었다. 그런데 '고추'도 아니고 말린 고추다. 한 빌라에서 살아가는 삶의 시간에서 말라버린 고추는 아들만이 집안 대를 이을 수 있는 유교적 가부장제 전통적인 질서로 살아온 집이다. 복숭아는 여성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복숭아(향) 립스틱이다. 고추가 말라가는 집안에서 남자로 출생해 성전환자로 온전한 여성이 되고 싶어 하는 스물네 살의 극중인물 남규빈의 이야기다.
연출은 말린 고추 냄새와 곰팡내가 재개발을 앞둔 집의 분위기를 금줄로 형상화한다. 재개발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레고로 조립한 집처럼 단상하나 올려놓고 집을 턱 하고 받치고 있는 것은 빨간 고추가 말라가고 있는 금줄이 달려있다. 테이핑으로 내부 구역을 설정해 마루, 부엌, 그리고 아들과 딸이 살아가도록 하고 있다. 무대 세트구조를 걷어내니 극 중 장면들은 연극적이면서도 인물들의 행동들이 스테레오로 전달된다. 재개발 빌라를 공간으로 은유하는 방식도 강훈구답다. 배경과 장면, 상황의 연속적인 전개 방식을 무대 전체로 이동해 파편적으로 활용되는데 30년 이상을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버텨온 수정빌라 203호 장손 남규빈 집의 균열과 소멸(消滅)을 드러내고 있다. 은평구 수색동 수정빌라 인근으로 설정된 동네는 특별한 공간 설정이 없어도 복덕방과 재개발 조합사무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결혼식장과 미팅 장소가 되고 길가와 특정 장면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등 퇴장도 개방적이다.
등장인물은 이렇다. 17평의 수정빌라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 관계도에 작가는 극 중 인물에게 다양한 캐릭터를 부착한다. 룸살롱에서 술 마시다 화재로 죽게 된 남편과 사별한 후 꼬장꼬장한 노모를 모시고 화장품 방문 판매를 하며 살아가는 며느리. 재개발로 아파트 두 채가 되어도 며느리한테는 줄 수 없다고 완강히 버티고 장손한테 집안 대를 잇게 하려는 여든네 살의 강복자 할머니. 서울대 사범대(국어교육과)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만큼은 잘하면서도 복숭아 립스틱 향이 나는 아들, 오빠한테 기죽어 살면서도 주말에는 예식장으로 아르바이트하고 주중에는 학원에 다니면서도 당당한 (남은 빈)이 극 중 인물이다. 군 제대 후에도 복학하지 않고 머리를 기르며 점차 여성이 되어 가는 남규빈과 택배로 배달된 오빠의 여성 속옷을 자신의 옷으로 말하는 오빠의 고백을 지지하는 동생이다.
재개발로 조합아파트를 물려줄 수 없다며 사수하면서도 손자만큼은 끔찍이 위하는 할머니는 "가족이 붙어 살서 살아야지. 하늘이 두 쪽 나도 한 채로 갈 거라며" 아파트 두 채보다는 큰 평수 한 채에 가족들과 살고 싶어 하고 미용실 출입도 남녀를 따지는 강복자 할머니다. 장손 몫으로 두 채를 받아 25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며느리는 재개발로 독립을 완강히 요구하고 여성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싶은 장손 남규빈의 여성화의 욕망은 현실이되어간다. 택배로 여성용 속옷과 화장용품들이 배달되고, 동생한테만큼은 트렌스젠더라고 당당히 밝히고 규빈이다. 복숭아향 립스틱을 발라주며 화장부터 코디까지 알뜰히 챙겨주며 남성들과 미팅을 주선할 정도로 오빠의 성향을 지지하면서도 커밍아웃만큼은 막으려는 동생이다.
◆ 연출 강훈구의 놀이성과 기발함으로 환유(換) 되는 '성 소수자의 사회적 인식과 공감'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고 싶은 규빈을 중심으로 가족들의 갈등과 재개발로 인한 고부의 대립, 성소자 규빈이 장손으로 전통적으로 집안의 대를 이어가려는 할머니의 완강함에도 여성으로 성립되어 가는 과정까지의 결말이 충분히 예측될 수 있는 서사구조이다. 그동안 퀴어(성소수자) 연극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은 대체로 한국 사회 퀴어에 대한 문제, 성소수자들의 삶과 젠더의 주체, 사회적인 공감과 인식의 현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무대화를 해왔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연출은 희곡의 드라마는 살리고 표현 방식은 서사의 미학적인 재현성을 전복해 한국 사회 성소수자의 사회적 인식과 공감의 문제를 브레히트적이면서도 포스트 드라마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연출 특유의 연극적인 놀이성으로 서사의 맥락을 유지하면서도 진행 방식을 극 중 인물들의 갈등과 대립, 상황과 장소를 일정한 시간 흐름으로 공간과 무대로 배열하는 것에서 전환해 탈감정화하고 객관적으로 작품을 유도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 만큼 관객은 극 중 장면에서 발화되는 인물의 감정과 드라마 서사에 몰입되기보다 극의 진행 과정을 연극적인 놀이로 인지하게 된다.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남 규빈이라는 특정한 한 사람의 인생에서 성 소수자를 두고 있는 가족, 남아선호사상, 가부장제도, 퀴어를 바라보는 계층과 세대의 갈등, 사회적인 연대와 공감 문제를 강훈구 특유의 연극적 놀이성과 영리한 연출성으로 등장인물들 전체 역할 바꾸기를 시도하면서 퀴어의 사회문제를 담론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정된 배역 없이 극중인물 전체가 다역을 수행하는 바꾸기는 '나'에서 '너'가 되는 1차원적 역할 치환이 아닌 변화되는 극 중 인물로 연속된다. 아들이 다음 장면에서는 딸로 분하고 노모가 며느리로, 딸이 퀴어 오빠가 되는 식이다. 극 중 인물들 전체가 삶을 전체 살아보는 것으로 설정하면서 특정화되어 있는 고정된 젠더와 인물의 연령을 물화시켜 배우들은 다역을 수행하는 퍼포모로 등장하는 놀이성을 유지한다. 관객은 극적인 체험보다 배우들과 무대에서 변주되는 특정 서사를 함께 공놀이를 하듯 체험하는 연극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 연극적 허구성을 의도적으로 들어내는 연출성과 배우들의 수행성
프롤로그부터 남은빈은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이 연극임을 주지시키고 가족의 장점과 특징이 나열된 인물들의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고, 희곡의 지문을 나레이션화고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가족을 소개하면서 은빈은 등장한 인물들의 특징화된 의상으로 동일하게 갈아입는다. 연출은 인물 소개부터 은빈을 딸에서 젠더와 연령을 파괴하는 가족구성원 전체 인물로 변주시켜 성 소수자들의 사회 인식을 계층과 세대를 통합해 주체적인 성별의 결정권과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인식개선과 공감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특정 장면에서는 상황과 인물들의 내면 변화를 인물로 전달하는 방식을 배우들의 다 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유지된다.
대체로 희곡의 지문과 인물의 정보, 해설은 희곡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배우와 연출이 희곡을 무대화할 수 있는 정보로 활용되는 방식에서 강훈구는 상황, 인물 감정의 유동적인 정보를 무대와 공간, 배우들의 등 퇴장으로 연극화시키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배우는 극중인물로 분해 역할자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서 장면의 상황과 서사를 전달하는 인물로서가 아닌 역할의 수행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런 만큼 배우 인물화가 되는 감정 몰입은 파괴되고, 다 역을 수행해 장면과 상황별로 인물로 분하는 배우들은 인물로 살아가며 재현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연극의 허구성을 의도적으로 들어내는 브레히트의 소외적 놀이성으로 인물을 표현하게 된다.
연출이 돋보였던 점은 장면 전환과정에서 역활 바꾸기로 산만할 수 있는데, 그 존재들로 극과 인물을 이탈하지 않고 극이 드라마 구조로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강훈구 연출 작품에서 무대 형식과 전통적인 구조를 깨려고 하는 재기발랄한 연출성만 돋보였고(폰팔이), 쿼드에서 공연한 작품(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에서는 연출 스타일의 파격적인 놀이성이 아쉬웠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연출과 희곡의 장점인 두 가지가 모아졌고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전체 등장인물 역할 바꾸기로 퀴어의 사회적인 메시지도 명확했다. 배우들도 연출의 신호를 지키면서도 박은경, 김솔지, 남재국, 류세일 배우는 무대에서 역량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세일러문 주제가로 규빈의 삶과 성소자의 인권과 메시지를 타격하는 힘, 말린 고추를 노모가 자르는 장면, 홈쇼핑 장면으로 성소자들이 사회적 활동이 늘어나고 있는 장면과 퀴어에 대한 정보, 간소화된 무대에 빌라 집 구조를 테이프로 공간화하면서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은빈이 집 구조로 부착된 테이프를 탈거(脫去)한다. 비로소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유교적 전통에서 해방되면서 비로소 여성이 되는 장면, 아들의 머리를 자르는 장면 등, 이 작품이 말하고 자는 지점들을 연출로 의미 부여를 맥락 화하면서도 연출의 장난과 놀이적인 무대로 웃음이 쉴 새 없이 터트리는 장면의 구성력도 탁월하다. 작가의 의미는 살아있고 연출은 당돌하면서도 무대로 타격하는 힘이 크다. 퀴어연극은 강훈구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이번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특히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에게 추천하는 연극이 올해 상반기 공연 작품 중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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