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에 푹 빠져 미국서 대구까지 왔죠”

美 시카고대 미술사학 전공 잭아리아 사닥 씨
이인성 논문 자료 수집 차 대구 직접 찾아 눈길
"연구할 가치 풍부…한국 근대미술사학자 꿈 꿔"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 중인 잭아리아 사닥 씨가 지난 12일 이인성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화가와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의 뒤로 이인성의 생전 사진들이 걸려있다. 사닥 씨는 석·박사과정까지 진학해 한국 근대 미술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이연정 기자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 중인 잭아리아 사닥 씨가 지난 12일 이인성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화가와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의 뒤로 이인성의 생전 사진들이 걸려있다. 사닥 씨는 석·박사과정까지 진학해 한국 근대 미술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이연정 기자

"이인성의 작품은 한국의 근대 예술을 대표합니다. 대구의 분지 지형과 이인성이 한때 벗어나고 싶었다는 악명 높은 대구의 더위까지, 지난 몇 년 간 글로만 읽어왔던 것들을 직접 경험해보니 즐겁습니다."

미국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대구가 낳은 천재 화가' 이인성을 연구하고자 직접 대구를 방문해 눈길을 끈다.

지난 12일 찾은 대구 중구 이인성기념사업회 사무실에는 한 외국인이 노트북 앞에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1930년대 작품 목록' 등이 쓰여진 수십개의 파일이 쌓였고, 벽에는 한 인물의 생애를 연대별로 정리한 종이들이 가지런히 붙어있었다.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있는 잭아리아 사닥(22) 씨가 이곳을 찾은 것은 지난달 말. 그는 20여 일간 매일 같이 이인성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출근'했다. 대학 장학금을 받아 연구 중인 논문의 주제가 바로 이인성의 삶과 작품이기 때문.

그는 "미국에서는 이인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어렵다. 구글 등 포털사이트를 제외하고 공개적으로 디지털화된 자료가 부족해, 내 글과 생각이 타당한지 확신하기 어려웠다"며 "연구를 위해 한국에 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대구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대구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이인성이 살았던 환경과 감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계산성당 앞을 걸어보고 '이인성 감나무'를 보고, 청라언덕에 올라 계산성당을 그렸던 당시의 도시 구조를 머릿속에 재현해보기도 했다. 그가 그림을 그렸던 장소를 직접 다니며 그의 시선에서 대구를 볼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웃어보였다.

잭아리아 사닥 씨가 이인성의 연대별 작품과 서명 등을 정리한 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연정 기자
잭아리아 사닥 씨가 이인성의 연대별 작품과 서명 등을 정리한 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연정 기자

연구 주제로 왜 이인성을 택했을까. 그는 2022년 연세대학교 교환학생으로 4개월간 머물 당시, 미술사 수업을 통해 이인성에 관한 얘기를 처음 접했다.

"그 수업을 통해 이인성이 일제 강점기 시절 그린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의 다작(多作) 활동은 연구할 가치가 풍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을 공부하는 것이 앞으로 한국 근대미술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죠. 무엇보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감성과 미학성이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그의 작품을 좋아하기에, 연구하는 것이 더 보람찹니다."

사닥 씨는 대구를 찾기 전인 지난해에도 이인성이 1931~35년 그린 '가을 어느 날', '여름 실내에서', '경주의 산곡에서' 작품에서 드러난 그의 표현 방식과 한국의 향토성 등을 연구해 논문을 썼다. 하지만 미국에서 접할 수 있던 이인성의 작품은 더 이상 없었다. 연구에 한계를 느낀 그는 지난 5월 직접 이인성기념사업회에 이메일을 보내 방문 의사를 밝혔다.

그는 "대구에 온 이후, 이 사무실을 매일 찾아 방대한 양의 자료를 직접 보며 공부하고 있다"며 "작품 자료와 문서들이 잘 정리돼있었다. 주변만 맴맴 돌다 고생만 하고 연구 결과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늘의 도움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60GB(기가바이트)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구글시트로 분류하며 들여다보고 있다. 그가 남긴 수백 점의 그림, 삽화, 스케치를 보고 에세이를 읽게 됐다. 그간 이인성에 대한 나의 인식이 크게 제한적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이인성이 '가난한 고학생'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사실 엄청난 후원금을 받고 작품 활동을 하던 우수한 장학생이라는 것 등 잘못 알려진 부분들도 새롭게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사닥 씨는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미국 학부생 학술지에 게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과정까지 밟아나가며 한국 근대미술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한국어를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인성 화가의 아들인 이채원 이인성기념사업회 회장은 "그간 우리 민족의 감성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활동한 그를 연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닥 씨의 경우 모든 이데올로기를 배제하고 제3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그의 작품세계와 미학성을 살펴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세계가 한국 현대미술을 주목하는 지금, 근대미술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이러한 연구가 지속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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